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평론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을!

에세이향기 2025. 4. 17. 09:53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을!

 이승하 ・ 2024. 11. 12. 8:20

시인들이 차린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시의 밥상

76명의 주요 시인들이 시로 쓴 한국 대표 음식 76선

 

한국시문학사상 현역시인들이 처음으로 음식 한 종류씩 맡아서 시로 쓰고 묶은 이 음식 시집은 김종길, 이어령, 정진규, 김후란, 허영자, 이근배, 김종해, 유안진, 오세영, 신달자, 이수익, 이건청, 김광규, 김용택, 도종환, 박주택, 이승하, 장석남, 문인수, 박형준, 이병률 등 우리나라 주요시인 76명이 참가했다. 이 음식시집은 시로 차려낸 다채로운 한국 전통음식들을 주제로 독자들의 마음속 미각과 추억을 한껏 자극할 뿐 아니라 한식의 맛과 정신사를 되살려낸다. 음식 사진 촬영은 이기와 시인이 했다.

 

이 책은 한국시인협회에서 2013년에 냈는데 2015년에 일본어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된다. 일본어 번역본에는 음식의 재료와 상세한 조리법이 나온다. 이 책만 있으면 한식 요리 수십 가지를 만들어볼 수 있다. 일본인들의 상술이 놀랍다.

 

맛으로 멋을 낼 줄 알았던 우리 조상님들. 된장, 고추장, 김치 등 발효음식을 만들 줄 알았고, 잔치 때는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이 작은 한반도에 산과 강이, 숲과 들이, 논과 밭이 있었다. 3면이 바다다. 할머니의 경험과 어머니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음식들. 음식문화야말로 우리가 지켜내야 될 국보가 아닌가. 요즈음 아이들은 햄버거와 피자, 스파게티, 마라탕, 컵라면 같은 것을 좋아하지만 우리 체질에 좋은 것은 오곡밥, 바지락 칼국수, 잔치국수, 각종 전, 감자떡, 송편, 찐빵, 비빔밥, 빈대떡, 쑥개떡……. 아아, 우리 조상은 말도 참 희한하게 만들어 썼다. 둘이 먹다가 한 명이 죽어도 모를 맛이라고.

목차

 

오곡밥 · 김정인

칼국수 · 김종길

잔치국수 · 김종해

전煎 · 김지헌

감자떡 · 맹문재

송편 · 문효치

찐빵 · 박형준

비빔밥 · 오세영

빈대떡 · 오탁번

쑥개떡 · 유안진

쌀밥 · 이건청

김밥 · 이병률

수제비 · 이재무

따로국밥 · 이하석

메밀냉면 · 장옥관

메밀전병 · 전윤호

곤드레나물밥 · 최영규

묵 · 한영옥

 

추어탕 · 감태준

순두부찌개 · 공광규

비지찌개 · 권택명

매생이국 · 김 윤

선지해장국 · 신달자

육개장 · 신중신

북엇국 · 유자효

미역국 · 이규리

떡국 · 이근배

어죽 · 이기와

청국장 · 이승하

삼계탕 · 이은봉

김치찌개 · 장태평

설렁탕 · 정진규

된장찌개 · 최동호

신선로 · 최문자

콩나물국 · 한분순

도다리 쑥국 · 허영자

 

막걸리 · 김왕노

구절판 · 김유선

총각김치 · 김종철

배추김치 · 김후란

오이장아찌 · 노향림

시래기 · 도종환

보쌈김치 · 서안나

고들빼기 · 서정춘

고추장 · 오정국

한과 · 윤성택

동치미 · 윤후명

수정과 · 이길원

잡채 · 이상호

깍두기 · 이수익

김자반 · 이어령

미나리강회 · 이인원

산나물 · 이화은

개두릅나물 · 장석남

상추쌈 · 홍성란

삼합 · 곽효환

 

도다리회 · 김광규

돼지갈비 · 김병호

꼬막조개 · 김용택

멸치볶음 · 김형영

장조림 · 나태주

과메기 · 문인수

육회 · 문현미

순대 · 박종국

어리굴젓 · 박주택

북어찜 · 박희진

꼬막 · 송수권

삼겹살 · 원구식

불고기 · 이가림

객주리 조림 · 이명수

안동 찜닭 · 이영광

간장게장 · 이정록

산낙지 · 정호승

굴비 · 조창환

낙지볶음 · 허형만

족발 · 황학주

 

출판사 리뷰

 

아름답고 맛있는 시로 탄생한 한식韓食 시집

전 세계에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 떠오르는 한식, 시의 향香을 더하다!

 

1. 76명의 시인들이 시로 쓴 맛깔스러운 우리 음식

시인에게 음식은 단순한 미각의 대상이 아니다. 거기에는 지난 시간들의 추억이 있으며, 끊임없이 현재화되는 삶이 있고, 미래에 대한 풍요와 희망이 있다. 음식을 통해 육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불려나온 이 모든 것들은 단절된 삶의 시간을 이어주며 모든 감각의 문을 열어주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먹는 것과 사는 것이 결국 같은 일일 때 음식은 그대로 우리의 삶이 되고, 살과 피가 된다. 그 삶을 반죽하고 새롭게 빚어내는 시인들에게 음식은 보다 각별한 시의 재료가 된다. 한국시인협회 신달자 회장 이 이번에 엮은 한식시집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문학세계사)은 시인들이 차린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시의 밥상이다. 시로 차려낸 음식들에 버무려진 눈물과 그리움과 추억을 시인들은 각기 시에 담아내고 있다.

 

백석은 그의 시 속에 시인으로서 가장 많은 종류의 음식을 소개하면서 고향이라는 생명의 태반胎盤을 맛깔스럽게 빚어내고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의 허기진 사랑을 조리해 내기도 하였다. 이 음식시집은 시로 차려낸 다채로운 한국 전통음식들을 주제로 독자들의 마음 속 미각과 추억을 한껏 자극할 뿐 아니라 한식의 맛과 정신사精神史를 되살린다.

 

더구나 76명의 국내 주요시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자국自國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을 주제별로 시로 쓰고 한 권의 시집으로 출간한 예는 세계의 어떤 나라, 어떤 문화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은 보쌈김치, 비빔밥, 추어탕, 떡국, 삼합, 동치미, 잔치국수, 구절판, 신선로 등 76가지의 대표적인 한국 전통음식에 시인들의 경험을 하나하나 녹이고 추억이 배어 있는 시로 형상화하여 한 편의 아름답고 맛있는 시를 탄생시킨 작업 결과이다. 갖가지 음식시 속에 시인들은 고향 물맛이며 고향 햇살, 어머니의 손길과 어머니의 목소리를 담았다. 한식은 향수며 사랑이며 창조이다. 어머니가 손수 캐내어 버무린 자연 그것이 한식이 아니겠는가. 한국 음식의 장점과 우수성은 물론, 시인들의 개인적 삶이 무르녹은 음식시는 독자들 누구에게나 감미로운 맛으로 전해질 것이며, 한국 음식에 대한 자긍심을 간직하게 할 것이다.

 

시인들의 시어는 깊은 맛이며 맛의 풍광이다. 그 맛의 즐거움을 시의 입맛으로 발화하여 입 속의 혀를 넘어선 상상의 입맛으로 시인들의 고유 경험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 시집을 묶게 된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한국 음식을 문화적 콘텐츠의 핵심인 시로 옮기는 것은 새로운 감수성과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며, 그 어떤 내용의 시보다 공감과 위로와 상생의 힘을 키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 과거의 따스하고 평온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음식의 추억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음식에 관해서라면 가장 앞자리에 서야 하는 백석은 「북관」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명태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女眞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 백성의 향수鄕愁도 맛본다

― 「북관北關」 전문

 

백석의 시에서는 무어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투박한 음식이 고독하고 쓸쓸한 현실의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따스하고 평온한 시간 속으로 다시금 이르게 하는 촉매가 된다. 생애 처음 맛보는 낯선 음식이 무의식의 가장 깊숙한 구석에나 있을 법한 기억을 불러낸다. 백석의 시뿐만 아니라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은 흔히 과거의 기억으로 향한다.

 

이번 시집에서 김종길 시인은 「칼국수」라는 시를 통해 “지금 칼국수가 내게 각별한 그리움을 자아내는 것은/ 옛 시골집 안마루에서 그것을 만들던 안어른들 때문./ 지금은 그 옛집도 그 안어른들도 찾을 길 없기 때문.”이라고 회상한다. 안동이 고향인 김종길 시인은 안반 위에서 방망이에 말려 종잇장처럼 엷어진 국수를 썰면 나오던 ‘국시꼬리’를 화롯불에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가난한 어린 시절 어머니 손맛이 밴 ‘잔치국수’의 맛을 기억하는 김종해 시인은 “굶어본 사람은 안다/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 잔칫집보다 넉넉하고 든든하다/ 잔치국수 한 그릇은 세상을 행복하게 한다”(「잔치국수」)고 잔치국수가 전하는 행복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뜨거운 멸치육수 속에 함께 담아낸다.

 

겨울에 도시로 이사를 온 뒤 처음 새로운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린 박형준 시인은 저녁이 되도록 집을 찾지 못하고 비슷한 골목길을 헤매 다녔다. 거의 울음이 터질 듯한 그때 어린 시인의 눈앞에 보인 것은 찐방집에서 피어 나오는 하얀 김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래 시에서처럼 추억의 온도로 새겨진다.

 

찐빵집 앞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을 바라보았다

겨울 저녁 찐빵집 앞을 지나가다 보면 그때처럼

추억의 온도로 부연 찐빵의 김에 내 자신을 맡기고 싶어진다

팥소 가득한 찐빵을 뜨겁게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으며

하얀 김 속에서 그렇게,

집에 가다 말고 잠시 서 있고 싶어진다

― 「찐빵」 부분

 

무엇보다 한국 사람에게 음식의 기본은 밥이다. 모든 맛의 기본도 밥맛이다. 인간의 기본도 밥이고 삶의 기본도 밥이다. 밥만 먹고는 못 살지만, 밥 없이는 살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밥은 시작이자 끝이고, 불멸이다.

 

이건청 시인은 「쌀밥」에서 “아버님, 어머님 평생 흘리신 땀,/ 그 땀, 논바닥에 쌓이고 쌓여/ 벼 포기를 밀어 올리셨으니/ (…) /지순한 마음이 마음을 불러/ 상머리에 둘러앉게 만드는 저것이/ 그냥 쌀일 순 없지, 쌀밥일 순 없지”라고 말하며, 밥은 땀이며 사랑이라고 역설한다.

 

오세영 시인은 한국의 비빔밥을 통해 더불어 함께 사는 민주주의를 바라본다. 비빔밥이 민주국가가 되는 이유는 “콩나물과 시금치와 당근과 버섯과 고사리와 도라지와/ 소고기와 달걀―이 똑같이 평등하다./ 육류肉類 위에 채소 없고/ 채소 위에 육류 없는” (「비빔밥」) 식자재食資材의 조화 때문이라고 설파한다.

 

이병률 시인은 굴리고 굴려서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김밥’에 대해, “김에서는 바람의 냄새/ 단무지에선 어제의 냄새/ 밥에서는 살 냄새/ 당근에선 땅의 냄새/ (…) / 아이야/ 모든 것을 곱게 펴서 말아서 굴리게 되면/ 좋은 날은 온단다”(「김밥」)고 노래한다.

 

3. 인공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맑고 순수한 시인의 손맛

 

푸른 무청을 새끼에 엮어 겨우내 말려 나물이나 국, 찌개 등을 만들어 먹는 ‘시래기’에 대해 도종환 시인은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 /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 서리에 젖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시래기」)이라고 표현한다.

 

이제는 손이 많이 간다고 집에서 쉽게 만들지 않는 어머니표 음식이 된 ‘김자반’에 대해 전 문화부장관은 “어느 날 어머니가 김 한 장 한 장/ 양념간장을 발라 미각의 켜를 만들 때/ 하얀 손길을 따라 빛과 바람이 칠해진다네./ (…) / 빈 장독대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산간 뜰인데도 파도소리가 나고/ 채반만큼 둥근 태양의 네모난 광채/ 고향 들판이 덩달아 익어간다네”(「김자반」)라고 노래한다.

 

김용택 시인이 어릴 적 살았던 동네 사람들은 재첩을 꼬막조개라고 불렀는데, 아이들 엄지손톱만 한 것에서 어른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꼬막조개가 하동에서는 재첩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을 순수한 동심에 담아 시로 형상화하여 미소짓게 만든다.

 

어느 해부턴가

꼬막조개가 앞강에서 사라졌다.

어른이 되어 하동에 갔더니

온통 재첩국 집이었다.

나는 재첩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다.

우리 동네에서 사라진

꼬막조개가 하동에서

재첩이 되어 있었다.

시원하고 맛있었다.

― 「꼬막조개」 부분

 

음식은 사람들에게 행복의 문으로 향하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세계가 동시간대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마당이 된 오늘의 디지털 시대에 한국 음식은 세계인들의 미각과 시각을 매료시키고,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음식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미국 뉴욕의 식당가에서 요즘 최대 화제는 한식韓食의 급부상이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유명 미국 식당들이 앞다투어 김치와 불고기, 비빔밥 등을 메뉴에 올리고 있다. 실제로 세계적인 레스토랑 컨설팅 그룹 바움 화이트먼은 '2012 음식 트렌드 보고서'에서 한식을 최신 유행 트렌드로 선정했다. 보고서는 “김치, 불고기, 갈비, 비빔밥 등 한식은 이미 미국 식당가에 주류(mainstream)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국 음식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우수한 한국 먹거리와 음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한국 음식을 한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정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음식의 종류를 나열하고 요리법을 체계화한다고 해서 한식의 개념이 또렷해지는 것도 아니다. 한식을 상품이 아닌 문화로 알리기 위해서는 음식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먹어왔던 혀와 목구멍의 언어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식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은 각종 요리서의 저자들이 아니다. 거기에는 혀와 목구멍의 언어들 대신에 숫자와 단위기호들만이 즐비하다. 음식을 음식답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혀와 목구멍의 언어들이다. 그런 언어들을 복원해내지 못한다면 한식에 대한 적절한 정의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들렌’이라는 과자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린 것은 프랑스 정부나 일류 요리사가 아니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이었다. 그처럼 이번 시집에 소개된 76편의 시들을 해외에 번역 소개한다면 한국 음식을 세계에 알릴 수 있음은 물론 그 맛 뒤에 놓인 문화적 향기까지 전해질 것이다. 한국의 맛과 미를 알리기 위해 문학세계사는 이번 한식시집을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 지원을 거쳐 국내 에이전시를 통해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할 계획이다.

 

<서평>

 

음식이 주는 행복감을 시로 쓰다

로얄 w*******i

 

낙조도 시인의 마음으로 읽으면 석양주가 된다. 햇살은 또 어떠한가, 허락된 과식이 되어 넉넉하게 광주리를 채워준다. 미처 느끼지 못하는 저 너머의 것들에 대해 흔들어 주는 시인들이 좋아 시를 찾아 읽는다.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 출간 소식이 반가운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음식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분명 있을 것이란 기대를 안고 시집을 읽기 시작한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

서리에 젖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도종환, 「시래기」 전문

 

전문기를 맛있게 먹으면서 한 번도 시래기가 시래기가 되기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혹자는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라고 물어볼지도 모르겠지만, 매 순간 밥상에 올라 오는 모든 음식에 대해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을 지닌다면, 헌신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고마워해야 하는 마음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음식'을 주제로 한 시 속에서 내가 제일 많이 발견(?) 한 것은 음식에 대한 추억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지만 음식을 통해 시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

 

음식 나라에선

비빔밥이 복지국가다

각자 식자재가 조금씩 양보하고

각자 조미료가 조금씩 희생하여

다섯 가지 색과 향과 맛으로 우러내는

그 속 깊은 영양가

이 나라에선 어느 누구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오세영, 「비빔밥」 부분

 

잘 볶이고 섞인 잡채처럼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우리들의 어울 한마당

알기는 알는지 몰라!

―이상호, 「잡채」 부분

 

입 안에 넣고 씹으면

남의 살이지만 오돌오돌 고소한 맛

돼지에게 소에게 미안한 일이다만

짤깃짤깃한 육질의 감촉

어차피 우리네 목숨은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 서는

허무한 사탑이 아니던가!

힘내어 좋은 일 하며 살아야겠다

―나태주, 「장조림」 부분

 

싼 게 비지떡 신세에서

섬유질 단백질에

한 많던 세월 밤새워 두부 만드시던

아아 이미 지상에는 없는 어머니,

고향의 그리움까지 섞이어

웰빙 건강식 대접받는다고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지글지글

힘차게 끓어 넘친다

―권택명, 「비지찌개」 부분

 

장조림에서 다른 생명의 희생을 우린 알아야 하지 않을까? 비빔밥에서의 양보와 희생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거대하고 화려한 이념들로 넘치는 사랑보다 왠지 더 알아듣기 쉽고 바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음식에 대한 추억을 따라 곱씹어 보리라 생각했던 내게 이 시집은 더 큰 무언가를 주었다. 음식으로 만나는 추억도 정도 소중하지만 음식을 통해 또 다른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것 참 고맙다.

 

6월에 갑오징어를 먹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안도현 시인의 칼럼 덕분에 서해로 여행을 떠났었다. 시집을 읽다, 갑오징어는 핑계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맛있는 음식을 앞세워 추억 하나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설악의 친구가 끓여주던 북엇국

고단한 살림살이

맺힌 울분도

어루만져 풀어주던

그 한 몸 말리고 말려

뼈까지 발라내져

마침내는 살점 점점이 뜯겨지고 끓여져

우리네 시름 달래주다니

우리네 아픔 만져주다니

그것은 음식이 아니라 약

그것은 음식이 아니라 도道

―유자효, 「북엇국」 부분

 

시인처럼 도道까지는 아니었었도, 음식의 또 다른 이름은 추억일 게다. 군침을 삼켜가며 읽어야 하는 고생스러움은 있었지만, 보여지는 음식으로만 보기를 거부하게 만들어 주는 시인들의 마음을 오롯하게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그 자체로 하나의 '음식'일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