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木瓜) / 선 화
우리 집 마당에 우람한 모과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다. 독특한 향기를 바람에 날리며 열매가 노랗게 익어갈 무렵이면, 담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행인의 낌새가 느껴진다. 목을 뒤로 꺾은 채 시각의 촉수를 높이며, 손이 닿지 않는 곳을 탐하는 눈길. 높은 곳을 향한 사람의 시선과 묵묵히 굽어보는 모과의 시선에선 갈망과 측은지심의 대비가 느껴진다.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며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고 있지만, 곁만 보고 폄하하는 비방 따위에 모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기만 하다. 사람을 연거푸 세 번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음 나와 보라는 듯 거침없는 표정이다. 우선 너무 못 생긴 외양에 놀라고, 맛을 보고 너무 맛없어 놀라고, 향기가 기막히게 뛰어나 다시 놀라게 하는 바로 이 정체. 누군들 팔방미인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만 모과는 현명한 선택을 한 듯싶다.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비장의 무기! 무르익은 향기의 절정 앞에선 제아무리 위력 있는 시각, 미각의 기능조차도 주눅 들어 버리게 하고 마는 마력. 도대체 그것의 발원은 무엇이기에…. 모과는 한자(漢字), 목과(木瓜)에서 나온 이름인즉 참외를 닮아 나무 참외라는 뜻이다. 낮은 땅을 피해 높은 나무 가지에 자리한 것을 보면 출처부터 격을 달리 하고 싶었던 것일까? 5월이면 눈웃음치듯 피기 시작하는 연분홍빛의 작은 꽃잎들은 배꽃처럼 아름다웠다. 그 고운 꽃잎이 진 바로 그 자리에 그토록 투박하고 험상궂은 과일이 열리리라고 누군들 짐작을 했겠는가. 옹기장이 손에서 잘못 빚어진 질그릇처럼 우스꽝스런 맵시. 지상의 모든 것이 신의 창조물이라면 옹기장이의 손은 신의 손인 셈.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의 얼 속에 신의 뜻이 숨어 있듯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어떤 의도를 모과는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일까? 결코 ‘나 일 수 없는’ 것은 기꺼이 내려놓고 ‘나 다운’ 고유성을 찾아 가는 여정이 자못 진지하다. 사과나 감, 귤 같은 것들은 저희끼리 모이면 서로 잚은 동족임이 완연한데, 모과는 이방인끼리 모인 다국적 백성처럼 각양각색이다. 시각보다 후각 쪽이 모과의 개성을 찾는 지름길인 듯싶다. 유연한 곡선으로 흐르는듯하다가 급커브로 탈선해 일그러진 형상. 균형감각은 어디로 팽개치고 불쑥불쑥, 하나같이 뿔난 표정들이다. 무엇에 그리도 화가 나고 노여운건지…. 할 말이 많을 것 같아 귀 기울여 보지만 침묵으로 일관할 뿐 반응이 없다. 어리고 순한 열매조차도 불쑥불쑥 징조를 보이니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저희들이 세상을 얼마나 살았다고. 그뿐인가. 여느 과일 나무들과는 달리, 모과는 유독 꽃자루도 없이 가지에 바싹 달라붙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한 치의 틈새도 허락하지 않은 채 잔뜩 옹그린 자세는 우직해 보이면서 웬지 불안하다. 자일 없이 절벽을 타고 있는 사람의 형상 같기도 하고 허공에 매달린 곡마단 소년을 떠오르게도 하니 팽팽한 긴장감이 전하여 온다. 예기치 않은 풍우라도 만나 언제 추락해 버릴지도 모를 익명의 낙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섬뜩해진다. 한치 앞을 알 수없는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를 바 없거늘. 무엇인가를 혹은 누구인가를 줄곧 긴장하며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리라. 모과는 무엇을 기다리기에 시종일관 불안정한 자세를 고수하며 저토록 진을 빼고 있는 것일까? 긴장의 시간이 흐를수록 진이 빠져 나가는 과정에서 묘한 것은 모과의 피부에 더욱 윤이 나고 빛이 돈다는 사실이다. 한 얼굴에 드러난 피부색도 다채로워 설익은 내 젊은 날 같은 풋대추 빛인가 하면, 먼 인도사막에 하염없이 펼쳐져 나를 몽환에 빠지게 한 유채꽃 색깔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손수 물들인 모시한복의 연 치자 빛이기도 하다. 그리움이란 그리움을 모두 불러 모으는 모과 빛. 이상하게도 벌레 먹은 부위가 숯처럼 새까만 것일수록 더욱 끈끈한 정유 성분이 샛노란 외피에 축적되는데 바로 이것이 뛰어난 향기의 발원이자 약효 성분이라니! 놀랍고 신비할 따름이다. 특히 기관지와 목 질환에 특효라고 일러준다. 세상사 말 많으니 목부터 상하기 쉬운 법, 말 수를 줄이고 귀를 부지런히 부리라는 듯. 어느새 모과는 명의 겸 엄한 훈장까지 겸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그토록 뿔난 모습이던 숱한 화는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삭혀 버린 것 일까? 알 수 없는 의구심속에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무심히 현관을 들어서다 스친 기이한 직감에 문득 뒤돌아보니 모과나무가 제 몸의 껍질을 벗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제 허물을 벗고 있는 행위. 마치 고해성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묵은 때를 벗겨내는 정화의 순간, 나는 운 좋은 목격자인 셈이다. 칙칙한 빛깔의 수피 한 조각이 소리 없이 땅위에 내려앉는 순간, 한 마리 얼룩나비가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나비는 간 데 없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은 수피 한 조각. 찰나에 스친 나의 환각이었을까? 아니면 숨김없이 고백한 자기심경을 서둘러 전하고 싶었던 것인가? 홀가분한 마음이 나비처럼 날 것 같다고. 조각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연한 연두 빛의 해맑은 속살이 들어나 있었다. 거듭 태어남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랴. 미처 허물을 벗지 못한 다른 부위로 눈을 돌리니 얼룩진 추상화가 갈등의 모호한 형상이다.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기라도 하듯. 명색이 가톨릭 신자인 나 역시 마음에서 출발해 고해소까지 도달하는데 얼마나 멀고도 긴 시간이 걸리던지…. 두렵고 부담스러워 회피하고 싶은 유혹이 앞섰기 때문이다. 성사표를 건네지 않아도 스스로 때를 알아차려 고해성사를 하는 모과나무 앞에서, 부끄러워 고개가 숙여졌다. 결국 자신의 허물은 자기 스스로 벗겨내야 한다는 것을 모과는 내게 일깨워주려 했던 것일까? 자신이 빚은 외형뿐 아니라 그 안에 생생한 영혼까지 빚어 넣은 옹기장이의 깊은 뜻을 다시금 헤아려보게 된다. 해마다 변하는 계절 속에서 모과나무를 지켜보는 것은 다름 아닌 나를 지켜보는 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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