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문장, 이것만이라도 알고 쓰자
/강돈묵
흔히 작가라고 하면 문장에 있어서는 일정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모든 작가들을 이렇게 인식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때가 있다. 특히 수필 장르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음에 적지 않은 책임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내 자신 수필가들의 문장 다듬는 일에 조언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작가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는 것은 내용에 치중하여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았다 하여도 그것을 표현한 문장이 되어 있지 않으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가 없다. 이런 차원에서 작가에게 문장은 필수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접근해 오지만 개중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문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작가의 엉성한 문장이 개선되지 않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오류 문장에 관한 지적에 자신은 열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문장이 허술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독자가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문장인데도 자신만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개선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또 하나는 어찌하여 알았다 하여도 그 개선 방법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는 지적을 무시하고 모르는 체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포기는 작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니, 문단에 누를 끼치게 된다. 진정한 작가라면 올바른 문장을 쓰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다.
수필가가 한 편의 수필을 얻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된다. 우선 자신이 생각한 바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어찌 하면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전달의 효과를 위해 구상한 바를 순서도 정하고 얼개도 짜야 한다.
설혹 좋은 문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여러 차례의 퇴고 과정을 거치야 한다. 원고 마감일에 쫓겨 미흡한 글을 내놓게 되면 여지없이 후회하게 된다. 어색한 문장은 독자들의 시각에 가시처럼 드러난다. 늘 완전한 문장을 독자 앞에 내놓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작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문장은 그 작품에서 요구하는 것에 충실히 응해야 한다. 하나 같이 짧은 문장이 좋다, 긴 문장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긴 문장도 써야 하고, 짧은 문장도 써야 한다. 글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면 그 글에서 요구하는 문장의 길이는 저절로 판명된다. 위급하고 다급한 상황에서는 짧은 문장을 선택해야 하고, 지루하고 힘든 시간의 기록일 때에는 긴 문장이 효과적이다.
여하튼 문장은 글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데에 최선의 것이어야 한다. 충분한 문장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순간의 착각으로 독자들에게 정확한 전달을 하지 못하는 문장도 있을 수 있다. 그 예를 잡지에 발표된 수필에서 찾아 열거하며 미흡했던 점을 찾아보고 수정의 단계도 거쳐 보기로 한다.
1. 한국어의 기본 특질
우선 문장을 익히기 전에 한국어의 특질부터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어는 다른 언어와 다르게 수동형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대개의 경우 문장의 주체는 ‘인간’이고 목적어는 객어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말하는 사람이 마주하고 있으면 굳이 주어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한국어의 특질은 외국인으로 하여금 한국어 습득에 엄청난 장애로 작용한다. 외국인이 한국어 배우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 주어가 숨어 버리기에 말문이 터지지 않는다.
작가의 고백문학인 수필이 한국어로 표현될 때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서양의 수필문장과 한국의 문장은 현저한 차이가 있다. 서양의 것은 수동형이 있어서 여간하여서는 주어를 생략하지 않지만, 한국의 수필문장에서는 최대한 주어를 생략해야 문장이 매끄럽다. 결국 한국의 수필문장의 주어는 ‘나’라는 것을 작가와 독자가 약속한 셈이 된다. 그래서 굳이 주어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2. 어휘의 선택
어휘의 선택은 정확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이라도 그 말의 뜻에 자신이 없으면 확실하게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작가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어휘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독자들은 글 속에 들어 있는 심오한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수필의 어휘는 제한을 받는다. 다른 어느 장르에서도 쓰는 어휘가 제한받지 않는데, 수필에서만은 어휘가 제한된다. 그만큼 수필에서는 한편의 작품을 쓰면서 어휘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 문학이다. 작가 자신이 드러나는 고백의 문학이기 때문에 그렇다.
또 수필에서는 지나친 고풍의 부드럽지 못한 어휘의 사용도 꺼려하고, 유행어나 은어의 사용도 거부한다. 된소리나 거센소리의 말에도 너그럽지 못하고, 속된 말 상스러운 말의 사용도 용납하지 않는다.
반드시 문장 안에서 요구하는 어휘를 찾아 써야 한다. 수식어가 여럿 동원되는 것은 적확한 말을 찾지 못한 까닭도 있다. 그리고 한 문장 안에서는 하나의 어휘가 두 번 이상 사용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자칫 작가가 어휘 능력이 부족하다는 불평을 들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문맥의 파악에 혼란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3. 한 문장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만
한 문장에는 하나의 이야기만을 해야 한다. 여러 내용을 한 문장 안에다 집어넣으려는 욕심을 가진 작가는 미련한 사람이다. 여러 문장으로 갈라서 작성하면 독자들에게 부담도 주지 않아서 좋다. 욕심이 많으면 문장은 자연스레 길어진다. 문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의미는 축소된다. 문장에 참여한 어휘들은 제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려 하기 때문에 그렇다. 작아진 의미 위에서 이어지는 문장은 진행에 문이 협소하여 엄청난 제한을 받게 된다. 결국 긴 문장은 다음 문장의 진로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
4. 수식어는 한 문장에 하나만
지나친 수식어가 붙으면 문장은 지저분하게 변한다. 문장 성분마다 수식어를 붙이면 의미 전달에 커다란 장애가 발생한다. 주어에도 수식어, 목적어에도 수식어, 서술어에도 수식어를 붙이면 부분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의미 전달은 정확하지 못하다. 그래서 수식어는 그 문장에서 가장 강조해야 할 성분에만 붙여야 한다.
5. 글의 전개는 연상 작용에 의해
글을 전개해 나갈 때에는 앞뒤 문장의 전개에 무리가 없어야 한다. 모든 문장은 앞의 문장의 테두리 안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앞에서 기술한 내용을 토대로 다음 이야기가 이어져야 순조롭다. 이미지는 연상 작용에 따라 진행되면 부드럽다. 문장 사이의 거리가 발생하면 독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앞의 문장 내용과 동떨어진 문장 전개는 독자들의 순조로운 이미지 정리에 커다란 부담으로 남는다.
6. 글의 흐름은 분위기에 맞게
글의 흐름은 진행 분위기에 정확히 맞아야 한다. 분위기상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달에 지장을 초래한다. 글의 흐름을 직시하고,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주체가 무엇인가를 찾아 정확히 제자리에 앉힘으로써 독자들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주체는 ‘갑’인데, 그 글에서 주어가 ‘을’로 나타났다면 독자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 뻔하다. 이런 문장은 독자들에게 부담을 줄 뿐 아니라, 주제의 표출에도 커다란 장애가 된다.
7. 제목은 독자를 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제목은 독자를 자신의 수필 앞에 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독자를 내 독자로 만드는 최초의 역할은 제목이 한다. 독자를 잡는 데는 어느 감각 활동을 동원하든 괜찮다. 그 선택은 작가가 하여야 할 일이며, 특권이다. 다만 수필의 제목이 너무 감각에만 치우쳐서 독자들에게 가벼운 느낌을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제목은 글의 내용을 읽지 않아도 되도록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바쁜 독자들을 이내 잃게 된다. 글 속의 깊은 의미를 찾기 이전에 조그만 의미 섭취로 만족하고 떠날 것이 뻔하다. 예를 들어 ‘나의 잊지 못할 여고시절’이란 제목을 보고 그 글을 끝까지 읽고 앉아 있을 독자는 하나도 없다. 가능한 제목은 상징적이도록 하되 주제를 의식하여 만들어야 한다. 수필에서는 굳이 내용을 요약할 일이 아니다. 제목은 독자들을 잡아두는 역할이 더 크다.
제목은 집필 전에 정하든, 집필 완료 후에 정하든 상관이 없다. 다만 글을 다 쓴 후에 타당한 제목인지를 점검하는 기회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8. 주술관계에 어긋남이 없도록
주어와 서술어는 정확히 맞아야 한다. 누구나 글을 쓰면서 이런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의외로 틀리는 경우가 많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긴 문장을 쓰기 때문에 빚어진다. 하나의 문장에 여러 이야기를 넣으려는 욕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 한 문장에 하나의 이야기만 한다면 절대 이런 모순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생각은 많이 진행되었는데 문장이 따라잡지를 못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앞 문장에서 나온 주어가 반복될 때에는 생략이 가능하다. 그러나 앞뒤 문장의 주어가 다를 때에는 문맥에 혼란을 주어 생략해서는 안 된다.
9. 정확한 시제
문장의 시제는 맞아야 한다. 대부분 수필 문장에서 묘사의 경우는 현재형으로 해도 무방하나 지난 세월의 사실 기록은 과거형을 사용하는 것이 무난하다. 한 문장 안에서 이 시제가 어긋나면 독자들에게는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정확한 의미 파악을 위해서도 문장 안에서의 시제 파악은 정확해야 하고, 올바르게 사용해야 혼란이 없다.
10. 정확한 시점의 사용
수필은 작가의 고백 문학이므로 대부분 일인칭 주인공 시점을 선택한다. 그러나 수필의 시점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만으로 한정하여 족쇄를 채울 일은 아니다. 얼마든지 다양한 시점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시점의 다양화를 위해 변화를 주는 시점 시도는 지양해야 한다. 반드시 글의 내용과 주제에 따라 요구되는 시점을 선택해 사용해야 한다. 모든 문장의 조건은 글의 주제 전달을 위해 시도되는 모험인 것이다.
11. 열거에도 순서가 있다.
열거하는 어휘들의 신분은 같은 것이어야 한다. 통사론적으로도 같은 것이어야 하지만, 성질도 열거하는 범주 안에서는 그 속성이 같아야 한다. 명사를 열거하다가 동사를 열거할 수 없고, 물건을 열거하다가 사람을 열거할 수 없다.
또 수식어가 붙을 때에는 열거가 훨씬 복잡하게 된다. 앞에 붙어 있는 수식어는 뒤의 어휘에까지 수식의 영향이 미침을 알아야 한다. 가령 ‘뾰쪽한 코와 입’이라면 코는 가능해도 입은 뾰쪽할 수가 없다.
열거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다. 정원에 있는 화초를 열거할 때에도 눈에 보이는 대로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를 하여야 열거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가르고, 초본과 목본을 가르고, 그것도 꽃의 피는 순서나 크기에 따라 질서 있게 기술하여야 한다.
12. 부사의 남용에 주의
부사의 남발은 주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부사는 강조의 개념이 있다. 부사가 들어감으로써 의미가 강해지고 다급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초조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부사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문장에서 부사를 사용하면 그 순간은 의미가 강하게 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자주 써서 모든 문장이 부사를 공히 끌어안고 있게 되면 강조한 말이 너무 많아 괜히 분위기만 경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되도록 부사를 적게 사용해 원만한 작품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접속부사의 과다 사용은 독자들에게 식상함을 준다. 물론 문맥을 맞추는 데는 접속부사만큼 용이한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접속부사를 자주 사용하면 문장의 묘미를 살릴 수 없다. 접속부사를 덜 시용하면서 문맥을 이어나가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문장력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 만약 사용할 때는 그 기능에 대해 정확히 알고 사용해야 한다.
13. 형용사보다는 동사를 많이 사용해야
서술어에는 동사와 형용사가 있다. 문장의 주체가 되는 말의 움직임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말이 동사이고, 사람이나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 또는 존재를 나타내는 말이 형용사이다. 두 품사의 말은 모두 서술어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그 성질은 조금 다르다. 동사는 움직임을 나타냄으로 동적이라면, 형용사는 상태를 그려줌으로 정적이다. 그래서 동사를 많이 사용한 문장은 힘차고 역동적인데 반해 형용사를 많이 사용한 문장은 정적이고 나약하다. 문장을 씀에 형용사를 많이 써서 힘이 약한 문장을 만들 필요는 없다. 동사를 많이 사용하여 힘이 넘치는 문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더구나 전 세계 언어 중 형용사가 가장 많이 발달한 한국어에서는 강력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동사를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14. 조사의 사용은 정확해야
조사가 정확하지 않으면 문맥은 혼란에 빠진다. 조사의 수는 무수히 많고, 그 기능도 천차만별하다. 그토록 예민한 조사를 정확한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그렇겠지 하며 막연히 알고 있는 지식을 토대로 사용하게 되면 큰 실수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것은 사전을 찾는 습관을 몸에 배도록 하여야 한다.
15. 지시어의 사용은 정확하게
확실한 근거 없이 지시어가 모호하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더러 작가에 따라서는 습관적으로 지시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각별히 자신의 집필 습관을 점검해 보면서 바로 잡아줄 필요가 있다.
적어도 작가라면 훌륭한 문장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써 놓은 글에 엉터리 문장이 끼어 있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문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침이 없다.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에 허물이 있다면 치료해야 한다. 이러한 과감한 치료는 자신의 문학세계를 보다 넓게 잡아주는 기능을 할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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