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시

이정록 시 모음

에세이향기 2026. 4. 18. 10:16

<나비 수건_이정록>

고추밭에 다녀오다

매운 눈 닦으려고 냇가에 쪼그려 앉았는데

몸체 보신한 나비 날개, 그 하얀 꽃잎이 살랑살랑 떠내려가더라.

물속에 그늘 한 점 너울너울 춤추며 가더라.

졸졸졸 상엿소리도 아름답더라.

맵게 살아봐야겄다고 싸돌아다니지 마라.

그늘 한 점이 꽃잎이고 꽃잎 한 점이 날개려니

그럭저럭, 물 밖 햇살이나 우러르며 흘러가거라.

땀에 전 마릿수건 냇물에 띄으니 이만한 꽃그늘이 없지 싶더라.

그늘 한 점 데리고 가는 게 인생이지 싶더라.

<시_이정록>

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업은 애기를 왜 삼 년이나 찾는지

아냐? 세 살은 돼야 엄마를 똑바로 찾거든.

농사도 삼 년은 부쳐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며

이 빠진 옥수수 잠꼬대 소리가 들리지.

시 깜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너를 엄마! 하고 부를 때까지

그냥 모르쇠하며 같이 사는 겨.

세쌍둥이 네쌍둥이 한꺼번에 둘러업고

젖 준 놈 또 주고 굶긴 놈 또 굶기지 말고.

시답잖았던 녀석이 엄마! 잇몸 내보이면

웃을 때까지.

 

 

<그믐달_이정록>

가로등 밑 들깨는

올해도 뿍정이란다.

쉴 틈이 없었던 거지.

너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여.

지나고 봐라. 사람도

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

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

그믐 없었던 보름달 없지.

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

어떤 세상이 맨날

보름달만 있겄냐?

몸만 성하면 쓴다.

<한숨의 크기_이정록>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냇물 흐린다지만,

그 미꾸라지를 억수로 키우면 돈다발이 되는 법이여.

근심이니 상심이니 하는 것도 한두 가지일 때는 흙탕물이일지만

이런 게 인생이다 다잡으면, 마음 어둑어둑해지는 게 편해야.

한숨도 힘 있을 때 푹푹 내뱉어라.

한숨의 크기가 마음이란 거여.

<눈_이정록>

똑바로 줄 맞춰!

이 말은 하지 마세요.

앞사람 뒤통수만 보여요.

 

구연동화 들을 때처럼

엉덩이 당겨 눈을 맞출래요.

똑바로 눈망울을 맞출래요.

말의 향기를 맡을래요.

마음속 꿀통을 넘치게 채울래요.

똑바로 마음 맞출래요.

 

 
 
 
 

 

<지네 축구단_이정록>

첫 번째 운동화를 신고

끈을 조이고 묶는 데

10분이 걸렸어요.

손발이 41개 남았어요.

신발을 신을 때마다

손이 하나씩 줄어들어요.

손발이었다가 발이 되니까요.

오늘은 축구 시합이 있거든요.

다섯 시간째 축구화를 신고 있어요.

축구화를 신으면서 밥 먹고

끈을 묶으면서 똥을 싸요.

나는 손발이 42개나 있는

지네예요. 그만 운동장에 나가야겠어요.

이번엔 15켤레를 신었군요.

손이 12개나 남았어요.

핸들링을 조심해야겠어요.

신발이 무겁지 않냐고요?

가벼워요. 개미 알껍데기로 만든 신발이거든요.

축구공은 도룡뇽알을 말린 거예요.

도룡뇽한데는 참 미안해요.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앉은 알은 없지만

알 몇 개는 꼭 숨을 안 쉬지요.

맞아요. 숨 안 쉬는 알을 말려서 만들었어요.

달랑 축구화 한 켤레만 신고 나오는

저 친구가 지네 축구단 골키퍼

이기네랍니다.

수비수들은 손이 하나도 없어요.

손발 모두 축구화를 신었군요.

저는 공격수예요.

오늘 겨루는 팀은 쇠똥구리 축구단이에요.

물구나무서서 공을 몰지요.

엉덩이로 패스를 해요.

웃다가 질지도 몰라요.

헤딩을 너무 많이 해서 똥꼬가 뚱뚱 부은

쇠똥구리도 있으니까요.

오늘은 우리가 7 대 3으로 이겼어요.

내가 세 골이나 넣었지요.

지네! 지네! 지네!

지네가 이겼네!

다음에는,

젖소 축구단이란 겨룰 게에요.

며칠 전에 손발이 170쌍인 외국 선수가 왔어요.

머리숱 많다고 공부 잘하는 건 아니지만,

외국 선수가 운동복에 팔다리를 꿰고

축구화를 다 신을 때까지 쉴 수 있어요.

젖소, 이겨라! 젖소, 져라!

지네, 이겨라! 지네, 져라!

궁금해요. 어디가 이길까요?

 

 
 
 
 

가장/ 칠순 천사/ 눈물 비누/ 어느새

<눈사람_이정록>

눈은

구름의 배꼽이다.

웃다가 빠진 구름의 하얀 배꼽이다.

배꼽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든다.

웃음을 커다랗게 뭉쳐서 눈웃음을 쌓아 올린다.

눈사람은

온몸이 배꼽이라서 배꼽이 없다.

 

눈사람같이

웃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신나게 배꼽 빠진 눈사람을 만든다.

<꾸중_이정록>

혀는

세 치.

말은

자그마치.

아픔을 주는 말은

작은 망치.

 

 
 
 
 

 

<하루살이_이정록>

막내가 가르쳐중 건데

하루살이는 애벌레 때부터

스무 번도 넘게 허물을 벗는다더라.

그러니께 우리가 보는 하루살이는

마지막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거지.

수의에 주머니가 없다는데

알주머니 하나를 온전하게 채우고

비우려고, 필사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거여.

필사적이란 말이 이렇듯 장한 거다.

어미 아비만이 할 수 있는

거룩한 춤사위여.

<일생_이정록>

알로 한 번,

알에서 애벌레로 또 한 번,

다시 번데기로 한번,

또다시 배추흰나비로 한 번.

난 생일이 네 번이야.

너처럼 음력 양력 다 따지면

여덟 번이나 되지.

난 나를 낳고

나를 떠나보내지.

 

마지막은 아예

상복을 입고 태어나지.

 
 

<꽃살문-이정록>

꽃에는 정작 방년이란 말이 없다네

그래, 천년만년 꽃다운 얼굴 보여주겠다고

누군가 칼과 붓으로 나를 피워놓았네만

그 붓끝 떨림이며 칼자국, 바람에 다 삭혀내야

꽃잎에 나이테 서려 무는 방년 아니겠나?

꽃이란 게, 향과 꿀을 퍼내는 출문이자 열매로 가는 입문이라

나도 고개 돌려 법당 마루에 오체투지하고 싶네만

마른 주둥이 훔치는 햇살 바람 천년,

법당 마당의 싸리비질 자국만 돈을새김하고 있네

그렇다네, 이 문짝에 염화 없다면

어찌 어둔 법당에 미소 있겠는가?

풍경소리며 목탁소리에도 나이테가 있는 법,

날 쓰다듬고 가는 저 달빛 구름 그림자처럼

씨앗 쪽으로 잘 바래어 가시게나

<눈심지_이정록>

눈에 불을 켜려면

가슴부터 타올라야 해요.

온몸이 기름등잔이 되어야 해요.

세상은 겹겹 어둠을 옻칠하는데

몸안의 불빛은 옴짝달싹 못해요.

마른침을 만 번쯤 삼키다보면

하얀 심지가 눈망울 쪽으로 용트림하지요.

이제 불이 붙을 때까지 눈에 힘을 주어요.

아, 당신이 어둠 속에서 꽃대를 올리셨군요.

꽃은 지구의 불 가슴에서 핀 눈심지니요.

꽃에서는 모두 불내음이 나요.

불내음은 까만 씨앗만 남기고 구름이 되지요.

한 다발 꽃구름으로 피어나지요.

 

 
 
 

 

<아프니까 그댑니다_이정록>

암에 걸린 쥐 앞에 열두 씨앗 놓아둡니다

성한 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씨알 쪽으로

병든 쥐가 시름시름 다가가 그러모읍니다

오물오물 독경하듯 앞발로 받듭니다

병든 어미 소를 방목합니다

건강한 소들은 혀도 디밀지 않는 독풀

젖통 출렁이며 허연 혀로 감아챕니다

젖은 눈망울로 뿌리째 뽑아먹습니다

그대 향한 내 병은 얼마나 깊은지요

그대 먼 눈빛에서 낟알을 거둡니다

그대 마음의 북쪽에 고삐를 매고

살얼음 잡힌 독풀을 새김질합니다

내가 아프니까 비로서 그댑니다

 

 

<닮은꼴_이정록>

별은 뿔로 치받으며 싸운다.

뿔이 자꾸만 반짝인다.

 

염소도 뿔을 치받으며 자란다.

눈망울과 머릿속에 별이 뜬다.

 

짐승의 눈은 작은 우주 같다.

성날수록 은하가 타오른다.

 

네 가슴속 불길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뿔이다

땅속 불가마다.

풀뿌리 나무뿌리도 뿔이다.

구름 가장자리에 별꽃이 피어 있다.

성깔을 사랑해라

뿔날 때마다 별이 뜬다

우주와 닮은꼴로 넓어진다.

 

참 별꼴이야.

자신의 별난 가시를 사랑해라.

<돼지꿈_이정록>

사람들은

돼지꿈을 좋아한다.

똥 묻은 돼지가 집안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꿈을 좋아한다.

하지만 돼지는 돼지꿈을 좋아한다.

그리운 아기 돼지를 꿈꾸며 눈물 흘린다.

별은 별꿈을 꿀 때 더 반짝인다.

은하수는 서로를 꿈꾸며 밤새 흐른다.

똥은 똥꿈을 꾸면서 행기 나는 거름이 된다.

나무는 나무꿈을 꾸며 꽃을 피우고

흙은 흙꿈을 꾸며 씨앗을 틔운다.

눈에 밟히는 사람을 갖고 나서야

사람은 사람꿈을 간절히 기다린다.

사랑만이 사람을 꿈꾸게 한다.

 

 
 
 
 

<되새김질>

내 것을 토해내야만

되새김질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일단 가득 채워야 한다.

먼저 저 바깥을 들여앉히고

속앓이부터 해야 한다.

지는 해가 긴 혀로 솔숲을 곱씹듯

밤바다가 끝없이 트림을 하며

물방울별 하나하나를 새김질하듯.

너만을 생각할 때처럼,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혀의 춤사위만 미끄러질 때까지.

<땅거미_이정록>

땅굴 속처럼

어두워지는 때를 땅거미라고 말하지.

땅거미가 밀려온다는 말은

시나부로 땅덩어리만한 검은 거미가 쳐들어와서

긴 다리털로 밤을 덮어줄 것만 같지.

무시무시한 이 거미가 무섭지 않을까?

땅거미는, 콧구멍으로 밥 짓는 연기를 내뿜으며

일 나가신 엄마 아빠를 모시고 오지.

때론 새 운동화도 사오고

생일 케이크와 꽃다발을 선물하지.

엊그제는 제대하는 삼촌이 땅거미를 몰고 오는데

난 그만 탱크인 줄 알고 경례를 올렸지 뭐야.

태극기라도 있었으면 마구 흔들었겠지.

모두 땅거미를 기다리는 까닭은

땅거미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오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어둑어둑해질 때에는 이별하지 마.

땅거미가 콱 덮쳐서 삼켜버릴지도 모르니까.

<땅끝마을_이정록>

땅끝은 없다.

땅은 둥글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자도, 떠나는 사람도

끝에서 처음으로 가는 것이다.

태초라는 말도 처음이란 말이다.

처음에서 처음으로 가는 것이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지만

빛은 언제나 처음이다.

처음을 향할 뿐, 빛의 끝자리는 없다.

땅끝마을에 가면, 거기에 땅처음마을이 있다.

우리는 처음에서 처음으로 간다.

터벅터벅 태초에서 태초로 간다.

첫사랑에서 첫사랑으로 간다.

 
 

 

막 오줌을 가리기 시작한 돌배기 사내애가 바싹 마른 빈 우유갑에 작은 고추를 디밀어 넣고는 핏발 선 얼굴로 오줌을 갈기는데, 천지간에 그리도 유쾌하고 장대한 폭포소리라니, 새끼들 밥숟가락 부딪는 소리와 책 읽는 소리와 가문 논에 물 잡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는데, 여기에다 이 오줌발 한자락을 더하니 드디어 완창이라 우유갑속에 숨어 있던 그 어린 소리꾼의 새끼손가락만한 목젖을 한 번만이라도 볼 양인면 두 눈 두 귀가 확 터져서 세상 잡것들 모두 귀명창이 되는 것이렷다

<마음가짐_이정록>

나무라면,

어떤 열매를 씨로 삼을까.

크고 단단한 것, 때깔 좋고 맛좋은 것,

높이 매달려 바람을 견딘 것, 벌래 먹지 않은 것,

다 좋은 씨지만, 끝내 품고 있어야 할 열매는

땅바닥에 깊이 처박힐 놈이지.

싹이 날 때까지 어둠과 노닐어야지.

추위를 감싸안아야지.

그걸 꿈이라고 하지.

자좀심이라고 하지.

상자에 담겨 창고에 갈무리되기 전에

제 가지를 구름판 삼아 훌쩍 뛰어내리겠다는

단단한 믿음이 뿌리를 내리지.

다들 거기서 온 거지.

<먹장가슴_이정록>

비닐하우스 귤 껍질에는

바람의 문장이 없습니다.

곳감의 얼굴에는 상처의 무늬가 없습니다.

흉터가 깎여나갔기 때문입니다.

감꽃 목걸이의 설렘도 아득합니다.

유채꽃 노랑 저고리를 사랑하던 마음도 잊었습니다.

하지만, 새콤한 귤 속에 어찌 땀과 눈물이 없겠습니까?

귤나무의 안타까움과 귤 따는 이의 괴로움이 없겠습니까?

곳감의 백분 속에 어찌 달콤한만 있겠습니까?

처마 밑 곳감이 발간 꽃그늘 같다 하여서

어찌 토방에 쭈그려앉은 한숨 소리를 모르겠습니까?

푸른 하늘이 설움의 깊이라는 것.

끝까지 억장가슴을 노래하겠습니다.

새살이 돋을 때까지 붕대를 펼치겠습니다.

별빛 돋보기를 우러르겠습니다.

 
 

<햇살의 경문>

날고 싶은 것들이 죽어 흙이 되면 기왓장으로 태어난다

절 마당 가득한 저 기왓장들은 곧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새를 꿈꾸던 영혼의 가족 이름과 골목길 복잡한 주소들이 적혀 있다 커다란 새 한 마리가 갈비뼈 뒤편에 업장을 서려 물고 있는 것이다

날고 싶던 것들의 극락왕생에 낙서하지 마라 목어처럼 텅 빈 새의 뱃속에 알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법당 문이나 환하게 얼어젖혀라 그리하여 그 새 똥구멍으로 들이치는 찬란한 햇살에 눈이나 부비거라

[의자:이정록]

<가갸날>

한글날의

처음 이름이지요.

한글을 `기갸거겨` 하면서 배우니까요.

한글 생일날이지요.

오리는 깩꽥날이 있겠지요.

강아지는 멍멍날이 있겠지요.

날 때부터 말하는 것을 보면

호랑이 뱃속에도 학교가 있겠지요.

야옹야옹 짹짹, 즐겁게 익혀요.

우리의 으뜸 자랑거리,

한글이잖아요.

[동심언어사전:이정록]

<가로쓰기>

땅바닥에 애호박 하나씩 놓고 가는

호박넝쿨의 가로쓰기가 좋다.

바다를 건너는 배의 하얀 물띠가 좋다.

대륙을 잇는 철길의 가로 쓰기가 좋다.

네게서 건너오는 따스한 눈길이 좋다.

풀밭을 찾아가는 누떼의 삐뚤빼뚤한 밑줄이 좋다.

강까지 달려온 얼룩말들의 천리길 흙먼지가 좋다.

강남에서 날아온 지친 제비를 앉히려고

겨우내 흐헝흐헝 울던 전기줄의 가로쓰기가 좋다.

네가 고개를 끄덕일 때보다는

가로저을 때, 더 어여쁘다.

[동심언어사전:이정록]

<가위표>

가위, 바위, 보는

서로 자기가 힘이 세다고 우겼습니다.

말싸움 하다가 날이 저물었습니다.

다음날에 한마디씩만 더 하기로 했습니다.

바위와 보는 밤새 사전을 뒤적였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보가 먼저 외쳤습니다.

"보자보자 하니, 보자기로 보는 거야."

다음은 주먹이 말했습니다.

"주먹맛 좀 볼래? 한주먹감도 안 되는 것들아!"

마지막으로 가위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니들 걱정에 밤새 가위눌리는 꿈만 꿨어."

가위는 가슴을 열어 가위표를 보여줬습니다.

보는 부끄러워 가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바위는 할말을 아예 잊었습니다.

가위바위보, 가위는 셋 중에서

맨 앞자리에 불리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침묵입니다.

[동심언어사전:이정록]

<가을귀>

가을이 되면

귀가 밝아져요.

낙엽은 잘 마르면서

귓바퀴처럼 동그래져요.

메뚜기 튀어오르는 소리에

덩달아 콩꼬투리가 터져요.

새우 수염 한마디 자랄 때마다

파도가 물방울을 높이 던져올려요.

아람 밤송이 떨어질 때마다

다람쥐는 두 발로 오뚝 서지요.

두 손을 꼭 쥐고

귀를 마이산처럼 세워요.

기러기 날개 치는 소리에

하늘이 멀이 달아나요.

[동심언어사전:이정록]

 

 
 

<개미허리>

개미허리가

아무리 잘룩한 잔허리라도

맛있는 건 다 지나간다

누나 허리가

아무리 개미허리여도

변비 때문에 똥이 한 자루다.

[동심언어사전:이정록]

<걱정꾸러기>

밤새 개구리들이

한 애기 또 하고,

처음 하는 애기라며 또 한다.

학생은 올챙이들 몇뿐인데

다리만 나오면 다 교장선생님이 돼서

올챙이들 걱정에 밤을 새운다.

올챙이가 어찌

개구리의 큰 뜻을 알리?

군복으로 갈아입고

시끄럽게 걱정하는 교장선생님들.

[동심언어사전:이정록]

<개밥바라기>

바라기는 작은 그릇,

가장 빛나는 저녁별 이름이

찌그러진 개밥그릇이라니.

개밥바라기는 개밥을 꼭 챙겨주는

따뜻한 마음에 손뼉 치는 별이지.

개밥그릇이 밤새 동쪽으로 걸어가면

아침을 깨우는 샛별이 되지.

개밥바라기의 마음으로 살아라.

샛별의 부지런함으로 빛나라.

낮에도 보일락 말락 굽어보지.

[동심언어사전:이정록]

<개똥장마>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지만

개똥으로 무슨 약을 만들겠니?

그렇다고 쓸모가 없던 건 아니었단다.

개똥은 작지만 귀한 거름이었지.

개똥 하나도 보약처럼 소중했단다.

집에서 키우는 개 돼지 소 고양이 염소

오리 닭들은 똥을 한곳에 누는 버릇이 있지.

제 똥이 약으로 쓰인다는 걸 아는 거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건

개똥 거름으로 살자는 애기지.

아프고 파이고 모자란 곳에

약처럼 스미자는 말이지.

오뉴월 작물이 잘 자라려면

개똥장마가 와야 하듯.

[동심언어사전:이정록]

 

 
 
 

 

<유모차는 힘이 세다>

새벽에는 생수통을

아침 먹은 다음엔 공병과 종이박스를

가득 채우며 할머니의 유모차가 간다

새로이 태어난다 믿는 한, 저것은 슬픔의 보행이 아니다

유모차를 타기만 하면 껍데기도 알맹이도 될 수 있다

믿는 한, 저 광경은 욕된 노동이 아니다

하지만 유모차를 끌 때가 생의 꽃이라고

할머니의 팔뚝 속 고래심줄에게

껍데기를 뱉어낸 빈 병과 종이박스에게 말할 수 있겠나

빈 박스에 파묻혀 앞이 안 보여도

밤눈 밝은 할머니의 유모차는 골목길을 쓸고 간다

맨 처음 유모차에 앉았던 아기가

구름을 열고 나오는 저 보름달이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생수통처럼 철벅거리는 보름달, 아

유모차의 전조등이 먼 하늘에 밝다

[의자:이정록]

<구른돌>

동그란 몽돌이 될 때까지

물은 얼마나 해졌을까.

조약돌을 보면

하나씩 호주머니에 챙기려 하지

어머니의 마음을 모셔가려 하지

[동심언어사전:이정록]

 

 
 
 

 

<길모퉁이>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는 건

마음속 잔돌로 모퉁이를 쌓았다는 것,

모퉁이로 떠난 사람은

모퉁이에서 가슴 치며 돌아오지.

한쪽 모퉁이 무너뜨려

온몸을 모퉁이로 만든 사람아.

그늘이 없는 모퉁이가 어디 있을까.

햇살도 구름 모퉁이에서 더 눈부시지.

모퉁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

모퉁이 없이 어찌 숨어 눈물 흘릴까.

담장 모퉁이로 고갤 내미는 해바라기.

모퉁이에 피는 꽃이 더 예쁘지.

모퉁이 없는 길에 그리움이 있을까.

[동심언어사전:이정록]

 
 

 

<나무도 가슴이 시리다>

남쪽으로

가지를 몰아놓은 저 졸참나무

북쪽 그늘진 둥치에만

이끼가 무성하다

아가야

아가야

미끄러지지 마라

포대기 끈을 동여매듯

댕댕이덩굴이

푸른 이끼를 휘감고 있다

저 포대기 끈을 풀어보면

안다, 나무의 남쪽이

더 깊게 파여 있다

햇살만 그득했지

이끼도 없던 허허벌판의 앞가슴

제가 더 힘들었던 것이다

덩굴이 지나간 자리가

갈비뼈를 도려낸 듯 오목하다

[의자:이정록]

<나무거울>

겉모양은 그럴듯하나

쓸모없는 물건이나 사람을

나무거울이라고 하죠.

나무는 되비침도 얼비침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나무는 나무를 보고 크죠.

소나무가 무성해지면 잣나무가 기뻐하죠.

목이 아플 때까지 마무를 우러르면

가슴앓이 냉가슴에도 샛별이 뜬다지요

나무불상과 나무십자가도 멋진 나무거울이지요.

삐걱대는 나무다리도 참 좋은 나무거울이지요.

내 그림자 속 뼈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옹이는 나무의 상처지요.

옹이가 빠져나간 마룻장의 까만 눈동자가

처마 끝 푸른 하늘을 보아요.

그대는, 아름드리나무가 되라고

나무라는 사람을 갖고 있나요.

나무랄 데 없을 때까지 나무라는

나무거울을 모시고 있나요.

[동심언어사전:이정록]

<나이떡>

식구들 나이 수만큼

숟가락으로 쌀을 떠서 떡을 만들지.

정월대보름에 액땜하기 위해 먹는 떡이지.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모두 살아 계시면 떡시루가 절구통만하겠지.

나이 많은 머슴도 그날만큼은 대접받겠지.

오래오래 사시라고 큰절 받겠지.

오손도손 오물오물 웃음꽃 피는 집에

어찌 나쁜 액운이 찾아들겠니?

도깨비도 키들키들 콩고물 입에 묻힌 채

성황당 너머로 달아나겠지.

[동심언어사전:이정록]

<나잇값>

어쩌다 한번

나잇값을 하면

철이 들었다고 한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긋남이 없어야 철이 든 거지.

언제나 나잇값을 하면

그분을 성인으로 모신단다.

나잇값 꼴값 하기가 정말 어렵단다.

이름값은 두렵고 어른값은 힘에 부치지.

나이를 먹어도 어린아이로 머물고 싶단다.

가시내는 시냇가에 내놓은 듯 걱정이고

사나이는 평생 네 살 철부지로 살지.

겨우 네 살, 아빠도 사나이란다.

엄마도 물너울 들여다보는 가시내란다.

잘할게, 아들딸들아.

그만 좀 혼내렴.

[동심언어사전:이정록]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곶감/강경주  (0) 2026.04.18
빙어 시 모음  (1) 2026.04.18
쑥국 - 아내에게/최영철  (0) 2026.04.17
묵은지 사랑/정용국  (2) 2026.04.17
안골 그 살구나무집 /최길하  (0) 2026.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