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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기행문과 기행수필(여행수필)/여세주

에세이향기 2026. 4. 30. 22:02
기행문과 기행수필(여행수필)
여세주


기행문과 기행수필은 구별해야 하는가, 구별한다면 어떻게 다른가,


근대에는 기행문을 수필이라는 장르에 종속된 양식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기행문과 수필은 다른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하여 기행수필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고 이 둘의 차이점을 규정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행수필은 기행문의 문학성을 강조하기 위해 생겨난 용어인 듯하다. 그러다 보니 기행문을 여행보고서 정도의 글로 폄하한다. 기행문은 실용적인 글쓰기이고 기행수필은 문학적인 글쓰기라고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여행 일정에 따라 보고 들은 사실이나 지식을 단순히 기록한 글은 여행보고서이지 기행문이라 할 수 없다. 기행문은 여정에 따른 견문이나 깨달은 지식을 감흥과 함께 표현하므로 여행보고서와 달리 문학성을 갖춘 글이다. 기행문이든 기행수필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문학성을 갖추고 있고, 있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여정도 드러나 있어야 한다. 문학성과 여정은 기행문이나 기행수필의 필요조건이다.


기행문은 일반적으로 여정에 따라 여행지의 자세한 풍경과 그때그때의 감상을 드러냄으로써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감상을 공유하는 글쓰기이다. 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절에는 상세한 일정에 따라 여행지의 이색적인 풍물에 대한 친절한 소개를 필수요건으로 삼았다. 여행이 보편화되고 디지털 영상 촬영이 손쉬워진 시대에는 여행지의 풍물을 재현해 내는 다큐멘터리식의 기행문은 의미가 없어졌다. 여행안내서나 웹사이트 블로그에 올려놓은 영상물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여행지의 정보를 더 생생하게 보고 듣고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부한 형태의 기행문을 뛰어넘어 새로운 방식의 기행수필을 개척해야 한다. 이색적인 풍물을 나열하면서 그때그때의 감상을 늘어놓는 글쓰기 방식을 뛰어넘어야 한다. 수많은 것들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지각하고 개념화할 필요가 있다. 과감히 생략하고 절제하여 초점화 하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포착된 대상을 지각하고 삶의 진실을 인식해 나가는 사유 과정을 보여주되, 인식의 과정에는 직관적 감성보다는 인문학적 지식을 동원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여정에 따른 견문이나 감흥을 나열하는 분산 방식의 글쓰기와 여정에서 깨달은 지식이나 느낀 감동을 유기적으로 조직하는 집약 방식의 글쓰기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구성과 주제 구현 방식이 다른 이 두 가지 형태의 여행문학을 굳이 구분하여 부를 용어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전자를 기행문 또는 여행기라 하고 후자를 기행수필 또는 여행수필이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행문은 연쇄적인 구성과 분산된 부분의 주제를, 기행수필은 유기적인 구성과 집약된 전체의 주제를 갖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정비석의 <산정무한> 같은 작품은 기행문이고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와 같은 작품은 기행수필(여행수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