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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광음을 휘젓는 촌철살인의 디카시학 『연잎의 기술』/김왕노

에세이향기 2026. 6. 17. 09:05

광음을 휘젓는 촌철살인의 디카시학 『연잎의 기술』

김왕노(웹진 시인광장 주간)

 

 

소하 이은솔 시인의 『연잎의 기술』 을 살펴보면 먼저 왁왁했다. ‘왁왁’은 제주도 말로 먹먹하다는 뜻인 것을 디카시집 『연잎의 기술』에서 배웠다. 그만큼 충격적인 시집이 나왔다는 것이다. 명상에 잠긴 사물에 톡톡 떨어뜨리는 빗방울 같은 감정이입으로 길어낸 정갈하지만 큰 울림을 가져오는 시로 엮어낸 『연잎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요즘 건축학에서 동양의 전통 공간미를 추구하는 오리엔탈리즘과 서양의 미니멀리즘이 만나 중성적인 선과 명상을 요지로 하는 젠 스타일이 탄생했고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뉴트로의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 문학에서는 난해하고 긴 시로 관심이 떠났던 독자들이 디카시로 다시 시에 관심을 돌리는 터닝 포인트가 마련되었다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디카시에서 피사체의 중심을 에워싼 공간은 동양화의 여백과 같다. 피사체의 축과 여백으로 쓴 디카시는 대우주의 본체인 브라만(Brahman:梵)과 개인의 본질인 아트만(Atman:我)을 일체라고 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에 닿아있다 할 수 있다. 물질문명의 상징인 스마트 폰으로 찍은 사진과 어우러진 짧은 시로 쓰진 디카시를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과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잎 기술』은 동양화의 화첩 같이 고풍스러우며 모더니즘하고 현대적이어 읽는 재미와 품격을 더 갖게 하는 것이다. 클로즈업된 피사체에 한 마디‘왈’을 던지는 소하 이은솔 시인의 『연잎의 기술』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디카시를 보여준다. 이은솔 시인이 『연잎의 기술』로 디카시의 지평을 더 활짝 열어준 주역이란 점에 먼저 갈채를 보낸다. 최근에 한국디카시학과 시와 편견의 발행인인 이어산 시인이 디카시에 주력하고 있어 내심 고마웠다.

4월 5일 식목일 퇴근하여 배송된 『한국디카시학』을 펼쳐보고 놀랐다. 그간 디카시의 관심이 열풍처럼 불어 디카시 인구가 확산되는 가운데 좋은 디카시가 많이 나오리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으나 『한국디카시학』을 보고 정말 ‘왁왁’했다. 좋은 작품이 많아 횡재한 기분으로 『한국디카시학』을 즐겁게 읽었다. 그간 디카시에 열정이란 마중물을 끝없이 내려 보낸 이어산 시인이 마련한 『한국디카시학』 전시관에 양질의 디카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4월 7일 ‘사물을 품고 진주를 빚어낸 듯한 디카시를 잘 쓰는 소하 이은솔 시인’이란 말과 함께 평을 부탁하며 보내준 『연잎의 기술』은 한마디로 기쁨이었다. 디카시의 결정판이자 디카시를 이루는 사진의 기술, 디카시를 이루는 언어의 기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시집 전반에 흐르는 존재와 존재가 밀접해 이루는 공생관계를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연잎의 기술』이 블랙홀처럼 독자의 시선을 흡입하는 조용한 혁명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음에 놀랐다. 경남고성에서 이상옥 시인으로 발현된 디카시가 이상옥 시인, 김종회 한국 디카시인협회 회장, 최광임, 이기영, 천융희 시인과 본인이 신문예사조이자 신모더니즘시인 디카시에 전력을 기울이는 과정에 디카시 신춘문예 한국디카시학이란 문학지를 만들고 시와 편견을 통해 디카시문학상을 만든 이어산 시인이 거듭 고맙다. 아울러 『연잎의 기술』 디카시집으로 문학의 기술, 디카시의 기술을 보여준 소하 이은솔 시인에게도 끝없는 갈채를 보낸다.

1. 피사체와 짧은 시로 이룬 공감의 미학

시詩

 

서늘한 삶의 바다에서 나를 건져

따뜻한 별이 되게 하는

봄날의 햇살

 

『시詩 전문』

죽은 불가사리를 불멸의 별로 탄생시키는 매개가 봄날의 햇살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회색 바탕과 붉은 불가사리가 이룬 피사체의 명시도는 높다. 이와 어우러진 『시詩』 『서늘한 삶의 바다에서 나를 건져/따뜻한 별이 되게 하는/ 봄날의 햇살』 은 흠 하나 없는 피사체와 완전체의 활자다. 피사체와 짧은 시가 어우러져 감정을 증폭 시키는 힘이 됨을 역설하고 있다. 이미지의 피라미드를 쌓는다. 이것이 바로 디카시의 롤 모델인 『시詩』다. 라고 정의를 내린다. 세심하게 선택한 피사체와 피사체에서 발화되는 이미지를 버무려 만들어지는 것이 디카시 임을 이 한편의 『시詩』가 잘 나타내고 있다. 시를 더 시답게 불가사리와 햇살이 해주고 불가사리를 더 불가사리답게 시와 봄날의 햇살이 해준다. 이것이 피사체와 짧은 언어가 소통해 디카시를 이루고 피사체와 짧은 언어가 시의 알레고리와 메타포가 되어 디카시를 이룬다. 짧은 시가 육화된 피사체가 더욱 울림이 큰 피사체가 되는 상호보완관계가 그 어떤 문학 장르에서 그 어떤 사진예술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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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시간

우리가 함께 아름다울 수 있도록

호흡을 참아내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수련의 시간 전문』

아름다운 피사체에 언어를 덧붙이는 것은 사족 같으나 피사체에 언어를 붙여 단명의 피사체에 더 큰 생명을 불어넣었다. 피사체를 더 피사체답게 하는 후광이 바로 디카시와 어우러진 시다. 시를 횃불처럼 타오르게 힘을 가해주는 것이 피사체다. 수련은 수련(修鍊)으로 수련(睡蓮)으로 중의적이어서 『수련의 시간』은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수련의 시간』은 공존을 위하여 누군가의 인내가 필요한 것을 암시하며 미의 탄생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어울림이라 말하고 있다. 『수련의 시간』에서 피사체를 담아내며 피사체의 아름다움이 호흡을 참아낸 바람에서 왔다고 보는 시인의 직관이 대단하다. 이 작은 피사체와 짧은 언어가 이룬 디카시가 거대한 필을 던지는 동양화 한 폭 같다. 호흡이란 생명의 시간이 선으로 피사체 전반에 흐른다. 『수련의 시간』이 다키시 修鍊을 위한 디카시 교본의 한 페이지와 같은 이유다.

봄의 전령

 

아무도 봄이라고 하지 않을 때

시린 바람 끝에 향기를 매달고

흰 눈 속에도 꽃물을 들이는 중

『봄의 전령 전문』

피사체를 보고 메시지를 포착해내는 탁월한 능력이 돋보이는 시다. 선구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 한 편의 디카시가 잘 보여준다. 아무도 봄이라고 하지 않을 때/ 시린 바람 끝에 향기를 매달고/ 흰 눈 속에도 꽃물을 들이는 중 이란 이 짧은 시로 세상을 우주를 우리를 환기시킨다. 복수초가 시린 바람 끝에 향기를 매다는 행위, 흰 눈에 꽃 물 들이는 행위가 무 개념의 세상에 개념을 심어준다. 동사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로 끝없이 생명을 펌프질하여 봄 공작소가 된 작은 꽃의 위대함에 비로소 시 한편의 위대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얀 여백에 꽃 한 송이와 시가 어우러져 응축된 세상을 봄으로 풀어내는 멋과 맛이 있는 시다.

 

2. 젠(선)이 흐르는 디카시

 

연잎의 기술

 

툭툭 던져지는 것을 공손하게 받으면

바늘 같은 빗방울도 둥글둥글 해진다

톡톡 쏘아대는 말을 가슴으로 받던 당신

송곳 같은 나도 보석이 되어 간다

 

『연잎의 기술 전문』

녹색 시간 속에 앉은 물방울이 우주의 본성이자 세상 모든 뭇별이 추구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둥글다는 것은 모가 없다는 것, 감정의 날을 갉아 어디 있더라도 가해도 피해도 없이 어우러진다는 것, 공생의 자리에 못 같이 쾅쾅 내린 뿌리가 아니라 조용히 스며든 시간의 뿌리로 자리 잡았다는 것, 연잎이 찰나로 생겼다 찰나로 사라지는 물의 존재를 돋보기처럼 확산시켜주며 물방울을 품는 것, 우주의 사랑을 실천하는 연잎, 물방울이 별 하나의 무게일 수 있고 깃털 같을 수 있으며 연잎의 정수리에 박힌 못 같을 수 있으나 진주조개가 진주를 빚어내듯 물방울을 빚어내는 것이 연잎의 기술이자 사랑의 기술인 것. 여기서 이은솔 시인은 연잎을 공손이란 도구로 바늘 같은 빗방울을 둥글둥글 만들고 송곳 같은 나를 받아준 당신 때문에 나는 보석이 된다고 말한다. 연잎 한 장으로 삶의 역경이 어떻게 극복되는지, 생의 기성전결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작지만 장엄한 디카시 한편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진 선의 시간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시인이 『연잎의 기술』을 왜 표제작으로 세웠는지 알 것 같다.

천천히 가는 길

세월이 모난 곳을 다듬어 주듯이

느리게 담는 빛이 풍경을 부드럽게 한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나에게

조급함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다

 

『천천히 가는 길 전문』

디카시의 오묘함을 보여준다. 새하얀 시간 속에 호흡하는 녹색 돌은 생명의 피날레와 단단함을 함께 보여준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나에게/조급함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다』 말을 돌로 환치한 시인은 조급한 현대인이 가져야 할 느림의 미학을 설파하고 있다. 시이든 디카시이든 어떤 문학이든 결국 작가가 걸어온 길을 역설하듯 이 또한 걸어가야 할 길을 말하고 길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끼 낀 푸른 돌의 여백인 새하얀 해무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데 시와 어우러진 피사체에 젠의 시간이 흐른다. 새로운 문화사조의 물꼬를 튼 디카시 사이로 선의 정신이 흐른다. 동양 사상과 어우러졌지만 가장 현대적인 물질문명으로 탄생한 디카시가 한국문학의 위상을 알린다.

 

꿈의 씨앗을 품은

땀방울

눈물방울

보석이 되는

『 삶 전문』

클로즈업된 강아지풀 뒤로는 실루엣 같은 생명의 시간이 흐른다. 송하관수도 같은 유유자적이 흐른다. 선의 시간이 흐르고 강아지풀과 생명의 시간이 연두로 물아일체를 이루고 있다. 삶이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역경을 이겨내야 비로소 꿈이 발효되고 숙성되어 최고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삶』이 잘 보여준다. 나도 노옹처럼 강물을 바라보듯 『삶』을 오래 바라보고 있다. 동양화 한 폭을 연출해내며 왈 하는 디카시를 보고 있다. 『꿈의 씨앗을 품은//땀방울//눈물방울//보석이 되는』 이라는 짧은 시를 읽고 있다. 나를 잠깐 잊고 있다. 이것이 내가 보석이 되어가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3. 역설과 해학의 변주

 

V

V는 수많은 V를 낳아요

언제든 꺼낼 수 있는 V를 준비해요

사랑해요 V

손에 V를 하나씩 선물할게요

도깨비바늘처럼 행복을 꽈악 잡아요

 

『 V 전문』

시는 삶과 맥락을 같이하거나 끝이 세상에 닿아있어야 감동이 있고 거부감 없이 시로 접목이 된다. 시에서 삶의 질곡에서 길어 올린 웃음이랄까 깨달음이 있으면 시와 독자는 육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삶에서 풍겨나는 해학이나 유머 풍자 등이 빠지면 읽은 시를 기억하는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도깨비바늘에서 V를 찾아냈다는 것은 쉬운 것 같으나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다. 시인의 밝은 눈은 거뜬히 V를 찾아냈고 V는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 가슴에 달라붙고 ‘너 행복하지 않으면 죽어’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아 이 시를 보면 행복해진다. 이것이 디카시의 힘이다. 시인의 힘이다. 도깨비바늘과 인간이 공존해야 할 이유다. 달라붙는 도깨비바늘은 나에게 붙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가 새 생명을 탄생시키므로 V 가 연속성을 가진다. 푸른 목숨을 가지게 된다. 작은 피사체 한 컷과 몇 줄 시가 조명해내는 삶에서 우러나는 온정을 느낀다. 심지어 가족애마저 느낀다. 한 컷 사진과 작은 시로 해학과 반어와 유머와 풍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디카시다. 압축된 문학의 정수와 놀라운 시의 발전을 디카시집 『연잎 기술임』이 잘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역설법

차 막히는데 뭐하러 오냐

나이 들면 누가 오는 것도 싫어야

바빠서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르는데

보고 싶긴 뭣이 보고 싶다고

『 엄마의 역설법 전문』

꽃보다는 자식이란 말이 맞다. 꽃을 등지고 아찔한 곳에 올라 먼 구름을 보거나 아득한 수평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래를 보며 등이 휘어지고 있다. 이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자식이 보고 싶지만 자식에게 누가 될까 보고 싶음을 내색하지 않는 엄마다. 『엄마의 역설법』 으로 세월 앞에 풍전등화 엄마는 왜 꺼지지 않는 등불인지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역설법』 한 편으로 어떠한 말로 어머니 사랑을 말한다는 것은 사족임을 보여준다. 누구의 엄마라도 엄마와 고향을 떠난 자식을 백척간두 같은 곳에 올라 아슬아슬 자식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중유골이듯 사진유골임을 보여준다.

3. 어울림과 공존과 상생의 노래

 

사랑을 위하여

주차관리 아저씨가 자리를 비우자

바다지빠귀 한 마리 걸음이 바쁘다

주차선 좀 지켜주세요

작은 새의 말을 들을 리 없건마는

그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 거다

 

『사랑을 위하여 전문』

발달된 물질문명 속에서 야생은 소외받기 싶다. 반려라는 말로 인간 가까이 다가간 것은 사랑 받으나 그렇지 않는 것은 경우 무시당하기 일쑤다. 옛날에는 평화의 상징으로 사랑받았지만 배설물 때문에 사람이 만들어준 집에서 쫓겨난 비둘기를 아침조깅 때 자주 마주친다. 옛날 사람과 어울렸던 기억 때문인지 비둘기 사이로 뛰어가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가끔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발가락이 잘린 비둘기, 속살까지 파고든 비둘기 발목의 감긴 나일론 줄을 볼 때 내가 비둘기에게 충분히 무시당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위하여』 의 한 장의 사진과 시로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어울려 살아가야한다는 것,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인간의 바른 본성을 찾자는 의미이지만 어울림으로 공존과 상생의 노래를 부르자는 것, 『사랑을 위하여』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던지는 동시에 구호다.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바로 찾자는 구호다. 『 작은 새의 말을 들을 리 없건마는/ 그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 거다』

 

행복을 찾는 사람들

너무 가까이

때론

너무 멀리 보면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 전문』

『행복을 찾는 사람들』 이란 디카시를 보면 시인이 가진 눈썰미에 놀라단. 시인의 직관력에 놀란다.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공존이고 어울림이라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가진 영역, 노루가 가진 영역으로 동선이 겹치나 서로 인정한다는 것, 모르는 체 하는 것은 외면이 아니라 이미 공존을 인정해버리므로 무관심 안에서 익숙해 졌다는 것, 서로의 세상을 터치 안한다는 것, 우리 모두 아나키스트를 꿈꾸지만 저들이 이룬 세상이 우리가 추구해 갈 나라라는 것, 찾아온 노루의 행복이 사람이고 사람의 행복은 곁에 다가온 노루라는 것, 하여 이 순간의 포착, 짧은 시가 큰 파장을 주므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을 대하자 전율이 오고 시의 절정을 맛보는 것이다.

4. 함축된 사진, 응축된 시어를 통해 이르는 빅뱅

응원

 

세상을 밝히는

작은 꽃등 하나

『응원 전문』

상징은 아름다우나 거두절미란 과정을 거친다. 사족이 필요 없다. 문장의 사지가 잘리고 몸통만 남아 상징화되므로 오히려 의미가 증폭되는 탁월한 시가 디카시다. 디카시는 의미의 빅뱅으로 가슴에 우레가 치듯 절명의 순간이듯 읽는 사람을 까무러치게 한다. 호접몽이듯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응원이란 시제 아래 세상을 밝히는 꽃 한 송이가 나를 밝히는지 어둠 속의 꽃 한 송이를 내가 비추는지 애매함이 오히려 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다의적 디카시로 다가온다. 단순한 디카시가 아니라 함의의 디카시임을 알 수 있다. 꽃이 어둠을 밝히는지 어둠이 꽃을 떠받드는지 알 수 없으나 서로의 존재를 확실히 하므로 공존의 시, 음양오행의 질서가 있는 시가 된다. 결국 나는 흑백의 조화로 하는 디카시의 『응원』에 힘을 얻는다. 꽃등 하나의 『응원』으로 코로나시대로 시들고 고개 숙였던 내가 직립의 노래를 부른다.

 

노을

거침없이 날아오를

그대의 꿈을 향해 보내는

뜨거운 환호

『노을 전문』

절실함이 묻어난다. 떠나보내면 이별이란 흔적이 남는데 이별을 의연하게 대하는 초연의 아름다움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세상에 너무 많은 이별, 너무 많은 만남의 연속이므로 이별과 만남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자의 노래가 붉게 번지는 것 같은 피사체다. 저 피사를 찍으며 뭔가 쿵 무너져 내렸을 것만 같은데 그것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다. 이별과 만남은 그래서 어디서나 장엄하고 숭고할 수밖에 없다. 끝내 이별이란 슬픔을 뜨거운 환호로 승화시키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선하고 착한 본성을 가졌음을 말한다. 이별을 아름다운 빅뱅으로 펼치는 대지 같은 마음의 소유자임을 저 한 편의 디카시가 말해 주고 있다. 일몰의 시간인지 일출시간인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이별을 남기고 떠나는 비행기인데 『거침없이 날아오를/ 그대의 꿈을 향해 보내는/ 뜨거운 환호』 란 시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피사체와 결합해 감동의 빅뱅을 가져 온다. 한 마디로 좋다.

눈물

피할 수 없다면 기꺼이 젖겠습니다.

나의 눈을 더욱 맑게 하소서!

『 눈물 전문』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면 마주치겠다는 결연함이 완강한 손 같은 피사체가 잘 보여주고 있다. 슬픔마저 한 줌 힘껏 쥐어보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다. 사족이 없는 시다. 『피할 수 없다면 기꺼이 젖겠습니다./나의 눈을 더욱 맑게 하소서!』 로 꽃잎에 맺힌 눈물을 극복한다. 고난을 긍정적으로 자기화하는 것이 눈물로 눈이 맑아진다는 사실,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법이 『눈물』 에 함의되어 있다. 피사체와 2 행의 시가 어우러져 폭발적으로 내뿜는 여운과 울림이 큰 『눈물』 이다. 아울러 피사체인 꽃을 담아내며 얻은 메시지와 이미지로 시를 길러내는 정갈한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피할 수 없다면 기꺼이 젖겠습니다./나의 눈을 더욱 맑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며 마인드컨트롤 하는 독자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5. 꽃과 자연 친화의 시

풍화

비뚤어진 나에게

평생을 기대선 당신이 있어

낡은 세월에 꽃이 핍니다

『풍화 전문』

풍화란 사진에 꽃이 없다. 녹슨 못이 풍화인지 바람꽃인지 녹슨 못을 만든 것이 풍화인지 풍화작용으로 녹 슨 꽃인지 알 수 없으나 시에서는 꽃이란 시어가 나온다. 『비뚤어진 나에게/ 평생을 기대선 당신이 있어/ 낡은 세월에 꽃이 핍니다』 로 의지를 받아주고 의지하므로 낡은 날에 꽃이 핀다는 말, 생의 화양연화가 한 사람으로 인해 오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합일과 합심으로 온다는 따뜻한 전언이 시 전반에 흐르고 있다. 꽃이 생을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매개체이자 낡은 세월을 환기시키는 최고 가치임을 알리고 있다. 꽃은 심중에 피어나고 힘든 세월을 초월했을 때 피는 초월의 꽃으로 인간의 사랑과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져주는 것이다.

빅뱅

또 하나의 우주가 시작되기까지

가장 깊고 어두운 곳으로부터

고요는 끝없이 불덩이를 다듬었던 것

이때다 싶을 때 마침내 쏟아내는

 

『빅뱅 전문』

 

꽃의 실체는 고요다. 아득한 지층에 쌓인 질 좋은 잠을 자는 불같은 꽃이다. 고요란 겹겹이 쌓인 침묵이고 어둠의 횡포가 엄밀히 진행되는 시련의 시간이고 함구의 시간이고 죽음의 시간이고 그러나 그리움이 발효되는 시간이다. 짓누를수록 압축되는 고요는 핵분열과 같은 힘을 축적하게 된다. 강철 같은 저항의지와 불의 기질을 가진다. 어디에도 굽히지 않는 고요가 된다. 그러나 고요란 본질을 깨뜨리지 않으며 더 큰 고요의 빅뱅이 된다. 누가 뇌관을 터뜨리듯이 고요가 고요로 터져 오르니 이것이 침묵의 빅뱅인 꽃이다. 꽃이 고요의 본체이자 드러난 몸체이다. 고요의 파편이다. 고요의 무수한 편린이다. 개화를 빅뱅으로 이끌어낸 시력의 시인이 시력 있는 디카시 시인임을 느끼게 한다. 『고요는 끝없이 불덩이를 다듬었던 것// 이때다 싶을 때 마침내 쏟아내는』

 

단비

먼지 묻은 거울을 씻어낼 만큼

딱 그만큼

마음을 적셔주고 갑니다

『단비 전문』

부레옥잠이나 물배추는 물의 정화식물이다. 그런데 꽃은 혼탁한 우리 영혼을 정화시키는 영혼의 정화식물임을 보여준다. 그만큼, 살짝, 모자를 듯 말듯이, 젖는 둥 마는 둥, 갈증이 해소 될 듯 말 듯 한 것이 단비가 가진 속성이다. 과하면 포만으로 죽고 부족하면 결핍으로 죽는 다는 말이 떠오르게 하는 시다. 『먼지 묻은 거울을 씻어낼 만큼/딱 그만큼/마음을 적셔주고 갑니다』 딱 그만큼이라는 말의 아름다움이 적재적소에 쓰임으로 말이 절창임을, 말 절경임을 보여준다. 『 단비 』 가 꽃을 꽃답게 하여 단비와 꽃이 빚어낸 세상에 단비가 꽃의 요염함을 돋보이게 해 더 애절한 『 단비 』 , 사랑의 흔적 같아 가슴에 단비처럼 젖어드는 디카시가 된다.

6. 순간의 포착과 이미지 확장의 시학

매듭 풀기

우리는 수많은 경계를 만들어

이쪽과 저쪽은 다르다 믿어 버렸다

매듭은 풀리기 위해 있는 것

그래, 풀기 위해

『매듭풀기 전문』

 

디카시의 즐거움은 순간 포착에 있다. 우연히 조우한 절묘한 피사체를 찍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상이 취하는 찰나의 포즈를 순간적으로 얻어 짧은 시로 독창적인 디카시를 써낸다는 것은 디카시란 문학이 가진 유일한 특징이며 호사스러움이다. 저도 아침에 조깅을 하다가 개울물 밖으로 솟아난 바위에 앉은 가마우지가 날개를 활짝 펴 말리는 순간을 포착해 비상이란 디카시를 얻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에서 의인법이 대상을 사람처럼 생각하듯이 디카시에서도 대상에 감정이입을 해 대상이 작가를 대신해 작가의 말을 전하고 작가의 의식을 표출하고 작가의 사상을 펼치는 것이다. 위의 디카시 『매듭 풀기』 는 금기를 깨며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고 꼬인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풀고 싶은 시인의 의지를 순간 포착한 까치 한 마리의 행위로 풀어내고 있다. 『매듭은 풀리기 위해 있는 것// 그래, 풀기 위해』 결자해지이듯 누구나 풀고 가야 할 매듭이 있는 세상이란 것을 아울러 암시하고 있다.

마음

 

하나를 열면

전부가 열리는 열쇠

『마음 전문』

디카시 『마음』은 갇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확장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햇살이 들어옴으로 햇살이 가득 찬 세상으로 반동처럼 뛰어나가려는 충동을 일으킨다. 디카시의 절묘함을 느낀다. 이 『마음』을 보면 감김이란 수축된 마음이 풀림이란 이완의 마음으로 이동해 간다. 응축된 것이 풀려나가며 우주로 확장되어가는 것이 『마음』의 시와 사진의 융화가 이뤄내는 힘인 것이다.

명상

 

나를 벗어 놓으면 더 분명해지는

내 안의 우주를 만나는 시간'

『명상 전문』

갈색 톤이 풍기는 고풍스러운 풍경 속에 절구통에 앉은 참새는 사진으로만 봐도 걸작이다. 여기에 『나를 벗어 놓으면 더 분명해지는/ 내 안의 우주를 만나는 시간』 이란 시어로 참새는 명상을 통해 나를 명상으로 이끌며 개인이 우주고, 우주가 나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느끼게 한다. 포착과 이미지 확장이 공존하는 수작이다. 『연잎의 기술』이란 디카시집이 왜 성공한 시집인지를 잘 보여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셜 매클루언 쿨 미디어와 롤랑 바트로 그 후

롤랑 바르트가 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사진의 미학적인 측면에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이란 개념을 제시한 후 오늘 한국에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 이란 개념으로 스마트폰으로 찍은 스투디움인 상태의 사진에 푼크툼이란 개인의 필을 피력해 디카시가 탄생될 것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념이나 물질문명과 문학은 진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 그 현장이 우리나라 문학의 현주소라는 자긍심을 가진다. 그러한 가운데 부지런한 발품으로 얻어진 『연잎의 기술』은 더욱 가치가 있는 시집이다. 사물 친화적으로 클로즈업시키고 클로즈업된 사물에 작가자신을 이입해 사물이란 대상을 통해 자신을 기술해내는 탁월한 『연잎의 기술』 이다. 그리고 디카시의 출발점에서 가지는 디카시는 어떻게 써져야 하는가? 물음에 좋은 해답을 던져주는 것이 『연잎 기술』이다. 디카시에서 김주환은 “사물의 의미는 스스로 인간에게 가 닿을 수 없다. 해석자(전달자)와 수용자(독자)를 찾아야 한다. 물적 존재들(사물-인간)이 서로 의미적 존재로서의 관계를 맺으려면 해석자의 의지(대상의 의미를 포착하는)가 대상을 향해 있어야 한다. 하나의 사물이나 풍경이 시적 대상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전달하려는 전달자(시인)와, 또 그것을 수용하려는 독자들 간의 상호욕망 때문이다.” 라고 했다. 문자 시는 '활자' 에 의존하는 반면, '디카시'는 '활자'와 피사체 ''라는 두 개의 대상을 하나의 텍스트로 표현된다. 활자와 피사체는 둘 다 시각에 의존하여 감각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활자로 2차적 연상(논리적 상상)으로 시의 온전한 의미 전달이 이루어지는 것이 문자시면, 디카시는 2차적 연상 이전에 이미지를 통해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포착해내는 것이 우선이다. 따라서 시인은 사물이 담고 있는 순간적인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 늘 예민한 감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사물이 지닌 순간순간의 변화무쌍한 메시지들에 곧바로 '반응'하는 것(이미지 포착 →의미 생성)이 디카시 창작태도이다, 디카시는 마셜 매클루언이 구분에 의하면 핫 미디어와 쿨미디어의 두 유형 가운데 '반응'에 무게 중심이 더 실리는 '쿨 미디어'로서의 속성을 가졌다. 아울러 좋은 피사체로 메시지를 포착하는 이미지의 사냥꾼이어야 좋은 디카시를 쓸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디카시는 앉아 쓸 수 없고 현실에 발을 담그고 건져 올린 구체적인 피사체란 사진에서 얻어낸 시다. 현실과 맞닿아 있어 친근감과 접근성이 좋아 일반화되기 쉬운 장점을 가진 것이 디카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하 이은솔 시인의 『연잎의 기술』은 주위의 체취가 물씬 묻어있는 시공을 초월한 명품이 되었다.

k 김왕노 주간의 디카시 평론 【2】

 

 

 

김왕노(시인, 웹진 『시인광장』 편집주간)

 

 

경북 포항에서 출생.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꿈의 체인점〉으로 당선. 시집으로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 『그리운 파란만장』,『사진속의 바다』,『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게릴라』 등이 있음. 2003년 제8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년 제7회 박인환 문학상, 2008년 제3회 지리산 문학상, 2016년 제2회 디카시 작품상 2016년 수원문학대상, 2017년 제 11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 수상 등 수상.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금 등 5 회 수혜. 현재 웹진 『시인광장』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