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의 사려니숲 그리고 순수와 역린의 시
ㅡ문설 시집 『어쿠스틱 기타』 2024, 시인광장

김왕노(시인, 평론가, 시인광장 발행인)
시인광장 문학상 제1권으로 문설 시인의 시집을 택했다. 많은 시집이 들어 왔으나 선택된 이유는 아직 때 묻지 않는 신선함이 있고 첫 시집이기 때문이다. 시인광장에서의 첫 시집이라는 의미도 있다. 지금은 시집이 안 팔리는 시대다. 시에서 독자의 발길을 멀게 한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생활양식이 달라지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사실 시인 자체의 반성도 필요한 시기다. 팬데믹이란 전대미문의 시절에 독거형 생활패턴이라 많은 사람이 시를 접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였으나 오히려 시는 외면을 당하고 대형서점에 가면 그렇게 넓게 차지했던 시집 코너가 사라지고 있다. 시가 외면받는 시기라 시인들도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며 서정시를 쓰고 짧은 시도 쓰고 디카시도 쓰고 나름대로 극복하고자 하는 현상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좋은 시집이 발간되고 있다. 시의 혼란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와중에 신선하고 명징한 시를 쓰는 문설 시인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한 마디로 문설의 시인의 시를 보고는 놀랐다. 첫 시집의 원고라는데 시에는 욕심이 없고 고요한 강물 같이 흘러가나 윤슬 같은 이미지가 있고 시에는 명검의 날을 숨기고 있다. 무엇보다 쉽게 읽힌다는 점이다. 쉽게 읽힌다 해서 시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쉽게 읽히면서 감동을 점층적으로 높여가는 시의 마력, 매력이 숨어있었다. 시의 질감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나 실은 그 부드러움이 부드러운 이미지를 씨줄과 날줄로 잘 직조한 시라 한번 읽으면 오랜 맥놀이 현상처럼 시의 기억이 뇌리에 남는다. 시로 시인의 명성을 얻으나 시집으로 명성을 얻는 경우가 있는데 문설 시인은 후자로 적합한 시인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시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으나 섬세함이 하나의 조직이 되어 강한 시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의 시 초입도 사실에서 출발하므로 시 읽기도 편하다. 시에 들어가면 트롯의 꺾기처럼 시의 꺾기가 있고 반전이 있고 해체가 있어 시 읽는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하는 장점도 가졌다. 시의 모티브도 현실이고 구체적인 것에서 얻어 왔기에 친근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순한 그의 시에서 반추할 수밖에 없는 기억의 폭력을 거슬러 잠재우는 역린 같은 힘이 시집 여기저기서 나타나므로 남성적 힘마저 느끼게 한다.
장미 향기가 나면 괜찮을까
분명 호불호가 있을 거야 똥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고
믿음과 의심 사이, 아무도 모르지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나는
어느 수면을 파닥거리다 여기 숨죽여 침묵하고 있나
말미잘과 흰동가리가 파놓은 터널을 통과한 기억 눅눅한데
누군가의 만남과 이별을 감지한 최초의 순간
머리를 감겨 주었을 때의 그 끈적한 촉감
흘러가는 방향을 생각하다 마주한 꽃잎들의 무덤
내가 절묘하게 떨어져 스미는 동안 눈빛은 투명에 가까워졌지
나무와 계곡의 산을 품은 바다의 성지(聖地)는 어디일까
출렁이는 나를 위해 불과 얼음의 존재를 묵인하며
언젠가는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북극의 빙하나
사막의 모래 폭풍을 따라 소금 눈송이를 따러 갈 것이다
억만년을 품은 협곡이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이유는
한 번만 태어나는 뱃속의 기억 때문이다 나는
항상 돌아와 다시 불의 암석 위를 걸을 것이다
- 「물의 고백」 전문
그의 시는 물처럼 유려하게 흐른다. ‘어느 수면을 파닥거리다가 여기 숨죽여 침묵하고 있나’를 통해 물이란 존재에 대해 역동성과 순응을 한 문장에서 엮어내므로 이미지와 이미지가 만나 스파크를 일으키며 물의 생명력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이처럼 물을 다시 일깨우고 물의 고백이자 물의 자화상을 그려가고 있다. ‘내가 절묘하게 떨어져 스미는 동안 눈빛은 투명에 가까워졌지’ 물도 물의 욕망을 가져 절묘하게 하나 결국 정화의 길, 자정의 길을 가므로 물 본연의 자세인 투명으로 간다는 것을 그려내고 있다.
‘억만년을 품은 협곡이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이유는//한 번만 태어나는 뱃속의 기억 때문이다 나는//항상 돌아와 다시 불의 암석 위를 걸을 것이다.’ 본성을 거역할 수 없음을 인정하나 끝내 항상 돌아와 다시 불의 암석 위를 걸을 것이다. 라는 단호함은 지금껏 여성성 속에 감춰둔 남성성을 나타내기에 이 시가 유려하나 끝내 강할 수밖에 없는 시의 구조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시의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물의 고백이기보다 물의 존재에 대한 선언이고 물에 대한 자화상이다. 물의 자긍심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지는 꽃 옆을 왜 기웃거리는지
이제 막 싹 틔우는 씨앗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자작나무의 흰빛은 하늘에 닿는지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는지
바닷속 오랜 유물들이 숨을 쉬는지
해바라기가 가을에 고개 숙이는 이유를
가마 속 옹기가 잘 익고 있는지
종일 내리는 비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
향나무를 꺾어 머리 위에서 태우는 유목민들의 기도를
얼지 않는 호수가 누군가의 마음을 비추는 이유를
붉은발슴새가 그 섬에 온기를 두고 온 까닭을
나를 빼닮은 계곡이 속살을 보여주는 이유를
뜨거운 입술에 스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건들건들 청보리밭을 흔드는
신을 섬기다 신의 성지가 되어버린 너는
얼마나 순결한지
- 「묻는다」 전문
그리스에는 산파법이란 문답법이 있다. 방법은 술 취해 한번 하고 술 깨서 한번 문답을 하는 것이다. 술을 취해서는 솔직하고 술이 깼을 때 거짓이 나올 수 있다 했으나 나는 이성에 의해 진실이 나왔을 거라 추론하고 싶다. 하여튼 묻는다는 것에 철학의 뿌리가 있고 모든 문학의 뿌리가 있고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본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물음에는 타인에게 묻는 경우가 있고 자신을 다잡기 위해 자신에게 묻는 경우가 있다. 해답을 찾아 묻는다는 것은 반사체를 찾아 빛을 비추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해답이 다르지만 실은 물음은 자기의 의도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고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어디 있냐를 물음을 통해 역으로 알 수 있다. 물음은 지는 꽃, 싹 틔우는 씨앗, 하늘, 바닷속 오랜 유물들, 해바라기, 가마 속 옹기, 종일 내리는 비, 유목민들의 기도, 얼지 않는 호수, 섬에 온기, 계곡, 사랑, 청보리밭, 신의 성지, 순결 등을 동반한 질문의 형태가 계속되고 다양하므로 시가 재미가 있다. 절대자라 할 수 있는 신의 맞닥뜨림에서 ‘신을 섬기다 신의 성지가 되어버린 너는 얼마나 순결한지’ 신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한 섭리로 여기나 신의 성지가 된 너는 신에게 순결을 뺏기지 않았느냐며 신의 폭력성을 은근히 피력함으로 시의 피날레를 이루므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것을 디딤돌로 딛고 가던 시가 신의 문제까지 이르러 시가 지루하지 않고 가장 우리가 당면한 문제까지 가므로 ‘묻는다’는 좋은 시일 수밖에 없다.
얼음에 입술 데인 적 있다
얼음에도 불이 숨어 있었다니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불꽃은 북극에도 적도에도 있고
녹지 않는 사막에서 여우가 빙하를 주유한다
여우의 꼬리는 혀를 닮아
얼음의 둘레를 살살 더듬기도 하지만
얼음은 깨물어 먹는 동안의 즐거움
사각의 시원함 대신 사막의 서걱임을 동경한다
처음부터 즐거워지려는 속내는 아니었다
원시는 차갑고도 차가워 혀에서 뿔이 자란다
그것도 한때 불이었다 그 불에 데인 적 있다
모래 같은 믿음은 뒤통수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말은 말을 낳고 화인(火印)이 깊게 박힌다
폭염이 지상에 오래 머물고 있다
불을 다스리는 건 남겨진 자의 몫이다
사물은 같은 형태로 오래 지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깨물어 먹은 건 얼음이 아니라
불이었다 입 안 가득 얼음을 돌리며 간신히
숨을 참는다
- 「얼음의 불」 전문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가장 뜨거운 것이 가장 차가울 수 있다는 말은 가정이 아니라 사실일 수 있다. 얼음 불이라는 제목이 일단 시선을 끈다. 얼음이 불인지 얼음과 불인지 시를 읽다 보면 얼음 불의 실체가 드러나기에 시를 읽으며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 같은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시다. 독립체냐 복합체냐 따지다 보면 본질은 하나로 통한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얼음에 입술 데인 적 있다/얼음에도 불이 숨어 있었다니’ 입술이 데었기에 얼음 속의 불의 존재를 입술로 찾은 것이다. 얼음과 불은 소위 상극이다. 불과 얼음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과 같아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나 어울려야 서로의 존재가 가능하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나 불은 얼음을 녹일 수밖에 없고 녹은 얼음은 물이 되어 불을 꺼뜨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나 실은 서로 죽이는 관계가 아니라 소위 상생의 관계가 될 수 있다. 얼음이 녹지 않을 만큼의 불, 불이 꺼지지 않을 만큼의 물 그래야 불이냐 얼음이냐 혼란에 빠지지 않고 불이 얼음이고 얼음이 불 일수 관계가 형성된다. ‘그동안 내가 깨물어 먹은 건 얼음이 아니라/불이었다 입 안 가득 얼음을 돌리며 간신히/숨을 참는다’란 말은 흔히들 우리가 먹은 것이 음식이 아니라 독이었다는 말과도 통하는 것 같아 더욱 피부에 와 닿은 시가 된다. 그리고 불이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불길에 휩싸여 연소되고 있다. 시간도 차갑지 않는 불, 누구나 시간의 불에 휩싸여 한 줌 재로 돌아가기 위해 다비식을 하듯 연소되고 있는 것이다. 하여 불은 시간으로 어디나 존재하고 있다. 시인의 혜안으로 얼음의 불을 갈파하고 있다. 영원할 수 없는 우리 존재를 은연중에 나타내고 것이다.
손에 깍지를 껴자 음악이 흐른다//완성되지 못한 문장들이 혀끝에서 흩어지고//내 마음의 오류는 어디서부터였을까//비스듬히 벽에 서 있는 너를 보면//아무도 모르게 밤새도록 안고 싶었지//오직 너 때문에//밤을 새운 것은 아니었지만//우리의 이야기로 꽃이 피고지고//진흙을 구워 만든 줄 하나가 허공에서 춤을 춘다//춤은 불투명하지만 아무도 버리지 않는다//누군가 저 소리를 멈춰버리면//지독한 너의 흔적이 사라질까//시간 속에 남겨진 바닥의 힘을 꺼내먹는다//눈을 감으면//외딴 절벽 어딘가,//네가 우는 자리에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 「어쿠스틱 기타」 전문
어쿠스틱 기타란 한 마디로 울림통이 있는 통기타를 이르는 말이다. 어쿠스틱 기타란 시도 울림통이 있어 시를 탄주 하는 시인의 손끝에서 아름다운 시가 피어나는 것이다. 표제작인 이 시는 좋은 음악 같은 시를 향한 시인의 고뇌가 있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이 혀끝에서 흩어지고//내 마음의 오류는 어디서부터였을까’에서 음악 같은 시를 찾아가는 일이 평탄치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와 서로 육화되어 ‘우리의 이야기로 꽃이 피고지고’ 싶은 시인의 열망이 시인의 시를 향한 열정적인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시인이 어쿠스틱 기타로 음악이 아니라 시를 연주하는 모습이 얼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 속에 남겨진 바닥의 힘을 꺼내먹는다//눈을 감으면//외딴 절벽 어딘가,//네가 우는 자리에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라면서 음악으로 소통할 수 없는 단절의 세상이 있음을 알 수 있으나 포기하지 않고 음악으로 시로 단절된 세상과의 소통을 끝없이 꾀하는 시인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스쳐간다. 어쿠스틱 기타란 시의 울림통에서 음악 같은 시가 끝없이 피어나기를 어쿠스틱이란 시를 접한 사람은 기원할 것이다.
사려니 숲에 가서 알았습니다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한 냄새를 이 숲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금 이곳을 다녀간 소나기도 이 흙의 냄새를 물고 날아갔습니다
흙의 체취는 오래전 내 기억 속에 살았습니다
삼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 …
길목에 펼쳐진 풍경에 감전되어 자박자박 걷습니다
길은, 아는 길은 아는 곳으로 낯선 길은 낯선 곳으로 통합니다
세상의 시비(是非)도 이곳까지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나는 오래된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넘을 수 없는 마음도 이곳에 오니 야트막한 언덕으로 보입니다
팔이 잘려나간 나무들은 송글송글 피가 묻어있습니다
이 상처를 가라앉히느라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워야할까요
나는 내 작은 상처에도 꼬박 밤을 새운 적이 있습니다
흙비의 얼룩마저 나무들의 무늬가 됩니다
상처 많은 나무들이 껴안아주겠다고 두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탁한 바람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고 다시 도시로 돌아갑니다.
- 「사려니 숲」 전문
시에서는 시인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섬세한 후각으로 흙의 체취를 맡는다는 것은 흙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흙은 모든 것의 기원이므로 기원에 대한 경외심을 보이고 있다. 사려니 숲을 절경으로 이끌고 사려니 숲의 주연인 나무에 감전되어 걷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삼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길목에 펼쳐진 풍경에 감전되어 자박자박 걷습니다’를 보면서 흙의 체취가 가득한 사려니 숲에서 사려니 숲의 향유로 호사를 누리며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오래된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넘을 수 없는 마음도 이곳에 오니 야트막한 언덕으로 보입니다’에서 결국 시인이 원하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소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통이란 자신을 터놓고 상대도 상대를 터놓고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합일에 이른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장자의 호접몽과 같이 초월적 경지에 이른다. ‘상처 많은 나무들이 껴안아주겠다고 두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탁한 바람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고 다시 도시로 돌아갑니다.’ 시는 결국 시인 자신의 반영이다. 앞서 시인의 심성이 시에 나타난다고 했는데 상처 많은 나무들이 껴안아 주는 행위, 탁한 바람이 몸을 씻고 도시로 돌아가는 행위는 시인 자신의 행위와 같고 사려니 숲에서 정화를 거쳐 도시에 돌아가 살고 싶다는 시인이 의식이 시 저변에 깔려있다. 시를 읽는 동안 나도 사려니 숲에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구체적인 것에서 사실적인 것에서 시의 이미지를 길어 올리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서툴지 않은 처음은 시작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그은 선은 정말 아무렇지 않고
나는 점과 잠이 만들어낸 색에 선명해집니다
그린 그림이 물결치면 바다는 까무룩 잔잔해집니다
그림이 그림의 무덤을 파고 덧칠할 때
나 는 어둠에 잠긴 바다로 향합니다
바다의 색깔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벼랑입니다
당신의 표정은 당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색깔이겠지요
내일은 오늘의 제자리, 붓끝이 그 끝을 감추면
그림의 모서리마다 모래알 같은 꽃이 피어납니다
풋풋한 피톨이 짙은 안개에 덮인 화폭을 지나갑니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한 채 잠의 꿈에 젖어들든
몽유의 숲에 풍경이 한창입니다만
내가 눈을 뜨면 풍경은 풍경을 모릅니다
설핏, 내 눈을 밟고 간 당신은 누구의 처음일까요
- 「선잠」 전문
시로 그림 한 점을 섬세하게 펼치는 것이다. 언어로 시에스타를 시에스타 그림보다 더 의미 있는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선 점과 잠 물결 무덤 표정 색깔 붓끝 모서리 모래알 피톨 안개 화폭 꿈 몽유 숲 풍경 눈 당신이란 단어가 동원된 선잠은 의식의 춤사위를 보여주고 있다. 개별성이 강한 시어들이 점성 강하게 결합 되어 선잠이란 시를 색채감 강한 시로 나타내고 있다. 고흐의 시에스타 즉 낮잠은 끝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파스텔풍이고 갈색 톤이 전면에 흐르는 그림을 보면 그림을 보는 사람마저 최면에 걸린 듯 잠으로 이끌려는 그림의 부드러운 힘이 있다. ‘당신의 표정은 당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색깔이겠지요/내일은 오늘의 제자리, 붓끝이 그 끝을 감추면/그림의 모서리마다 모래알 같은 꽃이 피어납니다’ 이 문장이 시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얼굴은 결국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떠올린다. 그림의 모서리마다 모래알 같은 꽃이 피어납니다. 아무리 읽어도 참 좋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시의 표현 하나하나가 섬세하다.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서정적이다. 선잠이 꿀잠이다. 라는 느낌을 만든다. 말미잘 촉수보다 더한 예민함으로 고흐의 시에스타를 보고 이렇게 심오한 시를 써 내려가다가 ‘설핏, 내 눈을 밟고 간 당신은 누구의 처음일까요’ 반문으로 시를 반전으로 이끄는 것이 절묘하다.
문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즐겁고 참 흡입력 있는 시편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읽는 내내 좋은 시의 맛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일상을 갈아엎어 구근 같은 시를 얻어내었기에 친근감이 있고 애착이 갈 수밖에 없었던 시편이었다. 이 시집 한 권이 시와 독자가 소통하는 물꼬를 터주겠다는 생각이 들고 이 시집을 도약의 발판으로 좋은 시를 우리에게 계속 선보일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문설 시인은 결국 잃어버린 서정의 세상을 복원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강하나 유려한 시의 질감으로 귀결되는 시 세계를 보여준다. 뛰어난 공감각 능력으로 우리가 놓쳐버린 이미지를 핀셋으로 집어 올리는 듯 집어 올리는 섬세함이 시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첫 시집이나 첫 시집 같은 느낌이 안 드는 것은 그가 꾸준히 시에 정진해 왔고 자신의 마음을 시로 노래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란 시를 썼듯이 그는 기타를 즐겨 치는 시인일 것이다. 하여 음을 튜닝하듯 시를 튜닝하는 아름다운 시적 능력이 있고 그의 시의 전반에 흐르는 음악성이 그의 시를 친근하게 대하고 그의 시를 읽는 사람은 그의 시에 자연스레 흡입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여 문설 시인은 시적으로 좋은 자질을 가졌으므로 좋은 시인이고 좋은 시를 쓸 수밖에 없다.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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