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것들의 존재론, 남겨진 것들의 시학
- 에세이문예 봄호를 읽고
권대근
문학박사, 중)하북미술대학 객좌교수
Ⅰ.
이번에 묶인 신춘문예 출신 작가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형식, 자유시, 시조, 동시를 취하면서도 공통적으로 폐기 소멸 잔존의 문제를 시적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플라스틱 쓰레기, 도시 재개발의 흔적, 폐기물, 먼지, 껌딱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버려진 것들’이지만, 시 속에서는 오히려 가장 강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핵심 주체로 전환된다. 이는 동시대 시가 물질문명과 인간 조건을 함께 성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계간평의 대상으로 선정된 이 작품군은 단순한 현실 고발을 넘어, 언어의 윤리와 존재의 방식을 탐문한다는 점에서 미학적 깊이를 확보한다. ‘함부로’라는 반복, ‘썩지 못하는 절망’, ‘붙는다는 것의 존재론’ 등은 모두 현대적 감각의 균열을 포착하는 핵심 장치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시편들은 각각 개별적이면서도 하나의 문제의식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된 비평적 독해를 요구한다. 더 나아가 언어와 존재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사유를 제공한다.
Ⅱ.
이제 이러한 문제의식은 개별 작품 속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다층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각 시편은 서로 다른 형식과 시적 전략을 통해 ‘버려짐’과 ‘남겨짐’의 의미를 변주하면서, 존재의 조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특히 사물의 재발견과 언어의 재배치를 통해 주변부의 대상들이 어떻게 중심적 사유의 계기로 전환되는지를 살피는 일은, 이번 시편들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독해의 관점이 된다. 따라서 이번 계간평에서는 개별 작품에 나타난 이러한 미학적 성취와 존재론적 사유를 중심으로 그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죽지 못하는
늙은 슬픔이 있듯이
여기
썩지 못하는
낡은 절망이 있네.
함부로, 그러니 함부로
- 허영자 「노년의 뜰 – 플라스틱 쓰레기」
허영자의 이 시는 노년의 정서를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비유로 치환함으로써 강렬한 대비를 형성한다. “죽지 못하는 늙은 슬픔”과 “썩지 못하는 낡은 절망”은 생물성과 비생물성의 경계를 교차시키며, 자연적 소멸이 불가능한 현대 문명의 비극을 노년의 감정에 투사한다. 특히 ‘썩지 못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부패의 지연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정서의 고착 상태를 의미한다.
형식적으로도 이 시는 절제된 행 구성과 여백을 통해 의미의 밀도를 극대화한다. “여기”라는 단일어의 독립 행은 공간적 현재성을 강조하며, 독자를 시적 현장으로 호출한다. 이 작품은 노년의 감정을 개인적 차원을 넘어, 문명적 폐기물과 결합된 존재론적 문제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적 완성도와 사유의 확장은 시적 긴장과 울림을 동시에 확보한 뛰어난 성취로 평가할 수 있다.
함부로 내뱉는 헛소리
함부로 삿대질하는 정쟁
함부로 긁어대는 가짜뉴스
그러니
함부로 쓸 수 없는 시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는 침묵
함부로 유예할 수 없는 시간
함부로 단죄하는 돌멩이
함부로 남용하는 권력
함부로 불끈 쥐는 주먹
그러니
함부로 의지할 수 없는 믿음
함부로 마주 볼 수 없는 얼굴
함부로 기도할 수 없는 십자가.
- 허형만 「함부로, 그러니 함부로」
허형만의 이 시는 ‘함부로’라는 반복을 중심으로 언어와 권력, 그리고 사회적 경직 구조를 비판한다. “함부로 내뱉는 헛소리”, “함부로 삿대질하는 정쟁”, “함부로 긁어대는 가짜뉴스” 등은 현대 사회의 언어 환경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부정적 열거 뒤에 “함부로 쓸 수 없는 시”,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는 침묵”이 대비되면서, 시는 언어 윤리에 대한 역설적 선언으로 전환된다.
허형만의 시는 후반부로 가면서 ‘권력’과 ‘돌멩이’, ‘주먹’ 등의 이미지가 등장하며 폭력의 양상이 구체화된다. 그러나 시는 단순한 비판에 머물지 않고, “함부로 기도할 수 없는 십자가”라는 구절을 통해 윤리적 종교적 차원까지 문제를 확장한다. 이 작품은 반복 구조를 통해 리듬을 형성하면서도, 언어의 남용이 곧 존재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점을 집요하게 환기하는 사회시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 밤 일기예보는 바람이라 했으니
철길보다 낮은 지붕 폐타이어 서너 개
바람을 눌려두었다 날아가는 잠을 누르고
바람 잦은 나를 태우고 머리 위 달리는 기차
바람벽 붙잡는 건 기둥보다 검은 폐기물
풍속風速을 가늠하고 있다 저 검정의 늠름으로
- 김소해 「시조」
이 시조는 전통 형식 속에 현대적 소재를 결합한 점에서 주목된다. 바람과 폐타이어, 철길과 지붕이 결합된 이미지들은 산업화된 공간 속에서 자연과 인공이 뒤섞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바람을 눌려두었다 날아가는 잠을 누르고”라는 구절은 시적 상상력의 밀도가 높은 대목으로, 보이지 않는 힘을 억누르려는 인간의 불안을 드러낸다. 이러한 이미지의 결합과 상상력의 응축은 현대적 감각을 생동감 있게 구현한 뛰어난 시적 성취로 평가된다.
종장에서는 “풍속을 가늠하고 있다 저 검정의 늠름으로”라는 표현을 통해 폐기물이 오히려 기준이 되는 역전이 발생한다. 이는 버려진 것이 세계를 해석하는 척도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전통 시조의 정형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성공적으로 수용한 이 작품은, 시조의 현재성을 확장하는 모범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전의 미학은 사유의 깊이와 형식적 절제미를 동시에 확보하며, 이 시조를 한층 고양시키는 성취로 평가된다.
젊어서는 큰 나무로
온 산을 파랗게 품기도 했고
늙어서는
난로에 들어가 환하게 웃으며
세상을 따뜻하게 하였고
이제는 보드라운 먼지로
씨감자 상처 어루만지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
꿈꾸는 작은 씨앗 다독일 테지.
- 구옥순 「재」
1981년 부산MBC 신인문예상으로 등단한 구옥순의 이 동시는 생애의 순환을 나무의 변화를 통해 따뜻하게 형상화한다. “큰 나무 - 난로 - 먼지 - 씨앗”으로 이어지는 변환 구조는 죽음을 소멸이 아니라 다음 생명을 위한 이행 과정으로 이해하게 한다. 특히 “씨감자 상처 어루만지다가”라는 구절은 동시 특유의 부드러운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생명의 치유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형식적으로도 단순하고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깊은 울림을 확보한다. 이는 동시가 지향해야 할 미덕, 명료성과 정서적 진정성을 충실히 구현한 결과이다. 이 작품은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삶과 죽음의 순환을 사유하게 하는 보편적 서정성을 지닌다. 이처럼 간결한 언어 속에 깊은 사유를 담아내는 힘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며,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을 이끌어내는 뛰어난 성취로 평가된다.
아스팔트의 낮은 온도 속에
나는 눌려 있다
누군가의 구두 밑창이
내 이름을 지워버릴 때마다
나는 더 깊이,
지면의 어둠으로 스며든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지 않는다
햇빛은 나를 피해간다
나는 단지 남겨진 스팟,
거리의 잔여물,
지워지지 않는 흔적일 뿐
그러나 나는 안다
세상의 무게가 나를 밟고서야
균형을 잡는다는 것을
오늘도 또 한 번,
그들의 발밑에서 들리지 않게 붙는다
붙는다는 것은,
존재의 마지막 방식이기 때문이다
- 권대근 「껌딱지」
이 시는 ‘껌딱지’라는 비천한 사물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나는 눌려 있다”와 같은 구절은 존재가 타자의 폭력 속에서 어떻게 소거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화자는 단순히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세상의 무게가 나를 밟고서야 / 균형을 잡는다”는 인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역설적으로 재정의한다. 이러한 인식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재구성해 나가는 주체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타자의식의 성숙한 성취를 보여준다.
결말의 “붙는다는 것은, / 존재의 마지막 방식”이라는 선언은 이 시의 핵심이다. 이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취하는 최소한의 방식, 즉 잔존의 존재론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사물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소외와 존재의 조건을 깊이 있게 사유한 철학적 서정시로 평가된다. 이러한 결말은 존재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며, 사물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깊은 철학적 울림을 완성하는 탁월한 성취로 평가된다.
서울은 잃어버리기를 시작했다
늙은 간판이 뜯기고
오래된 이름들은 버려졌다
건물은 외투를 갈아입었고
그림자가 지워진 골목에선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말없이 천천히
철거촌 버점 낀 아이의 얼굴은 잊혀졌고
도시는 연극처럼 조용해졌다
누구도 울지 않았고
토닥여 주는 손길도 없었다
그 여름 흙먼지 속에 눈 감던 사람들
담장 너머로 피어난 불빛들은
말을 잃었다
그해 서울은 무대였고
무대는 누군가의 집을 가린다
- 남현설 「1988년 서울」
이 시는 재개발과 철거의 기억을 통해 도시의 폭력을 고발한다. “늙은 간판이 뜯기고 / 오래된 이름들은 버려졌다”는 구절은 단순한 공간 변화가 아니라, 기억과 정체성의 삭제 과정을 상징한다. 특히 “도시는 / 연극처럼 조용해졌다”는 표현은 현실이 비현실처럼 연출되는 상황, 즉 도시의 폭력이 은폐되는 방식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도시의 변화 이면에 감춰진 기억의 소멸과 존재의 상실을 예리하게 드러낸, 비판적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의 후반부는 더욱 강한 정서적 밀도를 지닌다. “그 여름 / 흙먼지 속에 눈 감던 사람들”이라는 구절은 구체적 사건을 암시하면서도, 직접적 서술을 피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비극성을 불러일으킨다. “무대는 / 누군가의 집을 가린다”는 말은 도시 개발의 이면에 가려진 삶을 은유하며, 이 시를 도시 근대화에 대한 윤리적 성찰의 기록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러한 결말은 절제된 언어 속에서 깊은 윤리적 울림을 형성하며,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Ⅲ.
이번 에세이문예 봄호 시편들은 버려진 것들, 사라지는 것들, 그리고 남겨진 것들을 통해 인간 존재를 재사유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미학적 지향을 보여준다. 플라스틱, 폐기물, 철거촌, 먼지, 껌딱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주변부에 놓인 대상이지만 시 속에서는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는 동시대 시가 더 이상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주변의 사물과 흔적을 통해 세계를 읽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이 작품군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며,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 속에서 시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사유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번 시편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 현대시의 의미 있는 한 단면을 형성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시적 성취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깊은 반성의 계기를 제공한다.
- 에세이문예 봄호를 읽고
권대근
문학박사, 중)하북미술대학 객좌교수
Ⅰ.
이번에 묶인 신춘문예 출신 작가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형식, 자유시, 시조, 동시를 취하면서도 공통적으로 폐기 소멸 잔존의 문제를 시적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플라스틱 쓰레기, 도시 재개발의 흔적, 폐기물, 먼지, 껌딱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버려진 것들’이지만, 시 속에서는 오히려 가장 강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핵심 주체로 전환된다. 이는 동시대 시가 물질문명과 인간 조건을 함께 성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계간평의 대상으로 선정된 이 작품군은 단순한 현실 고발을 넘어, 언어의 윤리와 존재의 방식을 탐문한다는 점에서 미학적 깊이를 확보한다. ‘함부로’라는 반복, ‘썩지 못하는 절망’, ‘붙는다는 것의 존재론’ 등은 모두 현대적 감각의 균열을 포착하는 핵심 장치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시편들은 각각 개별적이면서도 하나의 문제의식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된 비평적 독해를 요구한다. 더 나아가 언어와 존재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사유를 제공한다.
Ⅱ.
이제 이러한 문제의식은 개별 작품 속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다층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각 시편은 서로 다른 형식과 시적 전략을 통해 ‘버려짐’과 ‘남겨짐’의 의미를 변주하면서, 존재의 조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특히 사물의 재발견과 언어의 재배치를 통해 주변부의 대상들이 어떻게 중심적 사유의 계기로 전환되는지를 살피는 일은, 이번 시편들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독해의 관점이 된다. 따라서 이번 계간평에서는 개별 작품에 나타난 이러한 미학적 성취와 존재론적 사유를 중심으로 그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죽지 못하는
늙은 슬픔이 있듯이
여기
썩지 못하는
낡은 절망이 있네.
함부로, 그러니 함부로
- 허영자 「노년의 뜰 – 플라스틱 쓰레기」
허영자의 이 시는 노년의 정서를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비유로 치환함으로써 강렬한 대비를 형성한다. “죽지 못하는 늙은 슬픔”과 “썩지 못하는 낡은 절망”은 생물성과 비생물성의 경계를 교차시키며, 자연적 소멸이 불가능한 현대 문명의 비극을 노년의 감정에 투사한다. 특히 ‘썩지 못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부패의 지연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정서의 고착 상태를 의미한다.
형식적으로도 이 시는 절제된 행 구성과 여백을 통해 의미의 밀도를 극대화한다. “여기”라는 단일어의 독립 행은 공간적 현재성을 강조하며, 독자를 시적 현장으로 호출한다. 이 작품은 노년의 감정을 개인적 차원을 넘어, 문명적 폐기물과 결합된 존재론적 문제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적 완성도와 사유의 확장은 시적 긴장과 울림을 동시에 확보한 뛰어난 성취로 평가할 수 있다.
함부로 내뱉는 헛소리
함부로 삿대질하는 정쟁
함부로 긁어대는 가짜뉴스
그러니
함부로 쓸 수 없는 시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는 침묵
함부로 유예할 수 없는 시간
함부로 단죄하는 돌멩이
함부로 남용하는 권력
함부로 불끈 쥐는 주먹
그러니
함부로 의지할 수 없는 믿음
함부로 마주 볼 수 없는 얼굴
함부로 기도할 수 없는 십자가.
- 허형만 「함부로, 그러니 함부로」
허형만의 이 시는 ‘함부로’라는 반복을 중심으로 언어와 권력, 그리고 사회적 경직 구조를 비판한다. “함부로 내뱉는 헛소리”, “함부로 삿대질하는 정쟁”, “함부로 긁어대는 가짜뉴스” 등은 현대 사회의 언어 환경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부정적 열거 뒤에 “함부로 쓸 수 없는 시”,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는 침묵”이 대비되면서, 시는 언어 윤리에 대한 역설적 선언으로 전환된다.
허형만의 시는 후반부로 가면서 ‘권력’과 ‘돌멩이’, ‘주먹’ 등의 이미지가 등장하며 폭력의 양상이 구체화된다. 그러나 시는 단순한 비판에 머물지 않고, “함부로 기도할 수 없는 십자가”라는 구절을 통해 윤리적 종교적 차원까지 문제를 확장한다. 이 작품은 반복 구조를 통해 리듬을 형성하면서도, 언어의 남용이 곧 존재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점을 집요하게 환기하는 사회시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 밤 일기예보는 바람이라 했으니
철길보다 낮은 지붕 폐타이어 서너 개
바람을 눌려두었다 날아가는 잠을 누르고
바람 잦은 나를 태우고 머리 위 달리는 기차
바람벽 붙잡는 건 기둥보다 검은 폐기물
풍속風速을 가늠하고 있다 저 검정의 늠름으로
- 김소해 「시조」
이 시조는 전통 형식 속에 현대적 소재를 결합한 점에서 주목된다. 바람과 폐타이어, 철길과 지붕이 결합된 이미지들은 산업화된 공간 속에서 자연과 인공이 뒤섞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바람을 눌려두었다 날아가는 잠을 누르고”라는 구절은 시적 상상력의 밀도가 높은 대목으로, 보이지 않는 힘을 억누르려는 인간의 불안을 드러낸다. 이러한 이미지의 결합과 상상력의 응축은 현대적 감각을 생동감 있게 구현한 뛰어난 시적 성취로 평가된다.
종장에서는 “풍속을 가늠하고 있다 저 검정의 늠름으로”라는 표현을 통해 폐기물이 오히려 기준이 되는 역전이 발생한다. 이는 버려진 것이 세계를 해석하는 척도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전통 시조의 정형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성공적으로 수용한 이 작품은, 시조의 현재성을 확장하는 모범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전의 미학은 사유의 깊이와 형식적 절제미를 동시에 확보하며, 이 시조를 한층 고양시키는 성취로 평가된다.
젊어서는 큰 나무로
온 산을 파랗게 품기도 했고
늙어서는
난로에 들어가 환하게 웃으며
세상을 따뜻하게 하였고
이제는 보드라운 먼지로
씨감자 상처 어루만지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
꿈꾸는 작은 씨앗 다독일 테지.
- 구옥순 「재」
1981년 부산MBC 신인문예상으로 등단한 구옥순의 이 동시는 생애의 순환을 나무의 변화를 통해 따뜻하게 형상화한다. “큰 나무 - 난로 - 먼지 - 씨앗”으로 이어지는 변환 구조는 죽음을 소멸이 아니라 다음 생명을 위한 이행 과정으로 이해하게 한다. 특히 “씨감자 상처 어루만지다가”라는 구절은 동시 특유의 부드러운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생명의 치유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형식적으로도 단순하고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깊은 울림을 확보한다. 이는 동시가 지향해야 할 미덕, 명료성과 정서적 진정성을 충실히 구현한 결과이다. 이 작품은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삶과 죽음의 순환을 사유하게 하는 보편적 서정성을 지닌다. 이처럼 간결한 언어 속에 깊은 사유를 담아내는 힘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며,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을 이끌어내는 뛰어난 성취로 평가된다.
아스팔트의 낮은 온도 속에
나는 눌려 있다
누군가의 구두 밑창이
내 이름을 지워버릴 때마다
나는 더 깊이,
지면의 어둠으로 스며든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지 않는다
햇빛은 나를 피해간다
나는 단지 남겨진 스팟,
거리의 잔여물,
지워지지 않는 흔적일 뿐
그러나 나는 안다
세상의 무게가 나를 밟고서야
균형을 잡는다는 것을
오늘도 또 한 번,
그들의 발밑에서 들리지 않게 붙는다
붙는다는 것은,
존재의 마지막 방식이기 때문이다
- 권대근 「껌딱지」
이 시는 ‘껌딱지’라는 비천한 사물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나는 눌려 있다”와 같은 구절은 존재가 타자의 폭력 속에서 어떻게 소거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화자는 단순히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세상의 무게가 나를 밟고서야 / 균형을 잡는다”는 인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역설적으로 재정의한다. 이러한 인식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재구성해 나가는 주체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타자의식의 성숙한 성취를 보여준다.
결말의 “붙는다는 것은, / 존재의 마지막 방식”이라는 선언은 이 시의 핵심이다. 이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취하는 최소한의 방식, 즉 잔존의 존재론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사물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소외와 존재의 조건을 깊이 있게 사유한 철학적 서정시로 평가된다. 이러한 결말은 존재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며, 사물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깊은 철학적 울림을 완성하는 탁월한 성취로 평가된다.
서울은 잃어버리기를 시작했다
늙은 간판이 뜯기고
오래된 이름들은 버려졌다
건물은 외투를 갈아입었고
그림자가 지워진 골목에선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말없이 천천히
철거촌 버점 낀 아이의 얼굴은 잊혀졌고
도시는 연극처럼 조용해졌다
누구도 울지 않았고
토닥여 주는 손길도 없었다
그 여름 흙먼지 속에 눈 감던 사람들
담장 너머로 피어난 불빛들은
말을 잃었다
그해 서울은 무대였고
무대는 누군가의 집을 가린다
- 남현설 「1988년 서울」
이 시는 재개발과 철거의 기억을 통해 도시의 폭력을 고발한다. “늙은 간판이 뜯기고 / 오래된 이름들은 버려졌다”는 구절은 단순한 공간 변화가 아니라, 기억과 정체성의 삭제 과정을 상징한다. 특히 “도시는 / 연극처럼 조용해졌다”는 표현은 현실이 비현실처럼 연출되는 상황, 즉 도시의 폭력이 은폐되는 방식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도시의 변화 이면에 감춰진 기억의 소멸과 존재의 상실을 예리하게 드러낸, 비판적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의 후반부는 더욱 강한 정서적 밀도를 지닌다. “그 여름 / 흙먼지 속에 눈 감던 사람들”이라는 구절은 구체적 사건을 암시하면서도, 직접적 서술을 피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비극성을 불러일으킨다. “무대는 / 누군가의 집을 가린다”는 말은 도시 개발의 이면에 가려진 삶을 은유하며, 이 시를 도시 근대화에 대한 윤리적 성찰의 기록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러한 결말은 절제된 언어 속에서 깊은 윤리적 울림을 형성하며,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Ⅲ.
이번 에세이문예 봄호 시편들은 버려진 것들, 사라지는 것들, 그리고 남겨진 것들을 통해 인간 존재를 재사유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미학적 지향을 보여준다. 플라스틱, 폐기물, 철거촌, 먼지, 껌딱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주변부에 놓인 대상이지만 시 속에서는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는 동시대 시가 더 이상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주변의 사물과 흔적을 통해 세계를 읽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이 작품군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며,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 속에서 시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사유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번 시편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 현대시의 의미 있는 한 단면을 형성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시적 성취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깊은 반성의 계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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