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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저승꽃/김원순

에세이향기 2021. 11. 11. 09:22

저승꽃 / 김원순

 

하늘색 철 샛문에 저승꽃이 만발했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 육신 곳곳에 핀 저승꽃처럼, 살짝 손만 대도 부스스 떨어진다.

생전에 피우지 못한 꽃송이 피워보고 싶었던 것일까. 저승의 문턱에 닿아서야 흐드러지게 피운다. 여류하는 세월의 물살에 떠밀려 갈라지고, 찢기고, 벗겨진 육신의 진집마다 핀 붉어서 서러운 꽃, 서러워서 진정 애달픈 꽃.

굴곡진 삶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흘린 피눈물로 피운 꽃이며,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 흔전만전 뿌리는 꽃이다. 이승을 떠나는 날 담담히 즈려밟고 갈 저승꽃에서 샛문의 지난했던 삶의 지문과, 당당하고 지엄한 자존과, 어기차게 살아온 시간의 지층을 읽는다. 사는 날까지 뜨겁게 살다가 떠날 때는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속절없이 지는 차갑고 따가운 꽃이다.

육신에 남은 한 방울의 물기마저 끌어올려 저승꽃을 피우는 샛문을 드나들 때마다, 서둘러 귀천하신 어머니 육신에 핀 저승꽃이 환영처럼 스친다. 꺾어도 꺾이지 않고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저승꽃을 마저 헤아리기도 전에 저승꽃에 둘러싸여 먼 하늘길로 떠나셨다. 생전에 보지 못한 강밭은 걸음으로 돌아선 어머니.

어머니 뒷모습 닮은 샛문의 등줄기를 타고 붉은 녹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 위로 상여꽃 같은 저승꽃이 둥둥 떠다닌다. 파란한 생을 건너온 어머니 당신의 비애인 듯 내 앙가슴도 붉게 물든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어머니의 마지막 온기가 못내 그리워 저승꽃을 쓰다듬으면, 굴피 같았던 어머니의 일생이 손끝마다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참으로 야속하고 박절한 꽃이다.

어머니의 한생은 굴곡지고 옹이 박힌 삶으로 펄펄 끓던 용광로였다. 깊고 높은 고로 속에서 부딪치고 짓이겨져 마침내 형체도 없이 녹아내린 삶을 두드리고, 늘이고, 다듬던 모루였다고 할까. 뭉크러진 삶을 애옥살이란 거푸집 속에서 끄집어내 부단히 담금질해온 어머니의 한생이 철의 인생과 닮아서 먹먹해진다. 세상살이에서 가장 쓰임이 많은 철의 본성을 가진 사람일수록 삶이 팍팍하고 곤고해지는 것일까.

황혼으로 물든 육신 곳곳에 핀 저승꽃을 보고 있으면, 내 몸속이 철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전율이 인다. 남은 생 오롯이 녹여서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라는 계시일까. 내 속에 묻혀 있을 의지, 인내, 끈기, 열정 등의 철광석을 찾아 철심(鐵心)을 뽑아올려서 생의 마지막 출발선에 우뚝 선다. 휜 두 다리에 힘이 벋는다. 살면서 주저앉거나 휘청거릴 때마다 잡아주던 철심이 낡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하다.

삶이 곤고할수록 저승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아무나 겪지 못할 삶을 세상이란 용광로 속에서 부수고, 갈고, 녹이고, 태워서 피워낸 어기차고 당찬 꽃이기 때문이다. 세 번이나 바뀐 강산을 바라보며 비바람과 햇살의 등쌀을 받아내느라 안간힘을 쓰며 진췌했을 샛문의 저승꽃이, 난공불락인 전쟁에서 승리한 노장의 가슴에서 빛나는 훈장 같다. 첩첩으로 둘러싼 애옥살이를 견뎌낸 어머니도 검붉은 훈장을 주저리 달고서 서둘러 귀천하셨다. 아직도 따뜻할 어머니 품속 같은 샛문에 기대어 어머니의 마지막 온기를 읽는다.

저승꽃은 이별을 예감하는 눈물꽃도, 삶의 막장에 피는 절망의 꽃도 아니다. 물과 거름을 주지 않아도, 꽃숭어리만 걷어내고 분단장을 해주어도 다시 환생해서 한생을 곱다시 살아가는 마력을 지닌, 철심으로 피운 꽃이다. 水心, 花心, 木心에서 마음을 비우고 덜어내는 법, 닦고 다듬는 법,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면, 철심은 시시때때 흔들리고 변하는 마음자리를 다지고, 세우고, 바꾸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예까지 꿋꿋이 살아온 것도 철심의 지조와 절개, 강견함 때문이지 싶다. 저승꽃 핀 샛문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망치를 든다. 겹겹이 핀 저승꽃 떨어지는 갱연한 소리가 벌써부터 골목을 뒤흔든다.

깡, 깡, 깡.

망치를 갈마쥐고 녹슨 샛문을 힘차게 두드린다. 저승꽃이 투두둑, 숭어리째 떨어진다. 샛문의 발치가 온통 핏빛이다. 기울어진 어깨에 얹힌 총총한 붉은 이슬이 떨어져 산산조각 흩어진다. 그제사 기죽어 있던 샛문이 가슴을 활짝 편다. 한때 사업 실패로 낙담상혼 하셨던 아버지 모습이 샛문에 얼비친다.

어느 해 봄날이었던가. 불길처럼 번지던 가난을 베고, 육신에 침범한 병마를 몰아내려고 든 낫과 칼자루를 쥐고 숫돌 앞으로 성큼 다가가셨다. 치받는 한소끔의 숨을 고르신 뒤 조상에게 예를 올리 듯, 경건하게 의식을 치르 듯 청숫돌과 한몸이 되어 갈고 또 갈으셨다.

이윽고 번뜩이는 낫과 칼을 손끝으로 가늠하더니 흠흠,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나셨다. 그때 아버지의 눈빛은 영락없는 용광로였다. 가난과 병마 따윈 단숨에 녹여버릴 기세였다. 염염한 내 삶을 부수고 녹여서 거푸집에 부어 굳힌 뒤, 거친 세상 바닥에 떡하니 세워 주셨다. 나의 유일한 용광로였던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인생의 고난과 시련을 견디느라 부단히 담금질하는 세상 아버지들이 생각나 목이 멘다.

아버지 몸속에는 나보다 훨씬 많은 철이 묻혀 있을 듯싶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신 걸 보면. 우리 몸속에도, 삶을 일찍 맛본 이도, 지구의 핵 속에도 녹아 있는 철. 철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 존재다. 전쟁과 평화도, 나라마다 핀 문화의 꽃도 철심에 달려 있다. 기울어진 지구의 기둥이 되어주는 철이 있어 세상은 더욱 빠르고, 편리하고, 견고하게 돌아간다.

붉은 녹은 더 이상 저승꽃이 아니다. 섧고, 애달프고, 차갑고, 따가운 꽃도 아니며, 시도 때도 없이 피고 지는 꽃은 더욱 아니다. 문지르고, 닦고, 긁어내면 또다시 부활하는 천상의 꽃이며, 생을 찬란하게 마무리 짓는 매듭꽃이다.

투두둑 떨어지는 매듭꽃은 영도 ‘깡깡이 마을’과 ‘깡깡이 아지매’들을 불러다 준다. 원양어업이 한창이던 1970~80년대 역사를 깊은 주름살과 굳은살에 새겨놓은 산증인들이다. 험난한 항해를 마치고 부두에 정박한 배의 표면과 바닥 모습은 깡깡이 아지매들의 삶이자 인생여정이 아닐까. 역경의 세월을 지우듯 악착같이 달라붙은 따개비, 조개껍데기 등의 이물질과 붉은 녹을 떼느라 절벽 같은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억척 아지매’며 수리조선업을 발전시킨 산업역군이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깡으로 버티고 살아온 아지매들이다. 소금처럼 세상의 낮은 곳에 엎드려 살다 세파에 떠밀려 영도 깡깡이 마을에 뿌리내렸으리라. 정박해 있는 녹슨 배만 봐도 배가 부를 것 같은 아지매들이 없었다면 수많은 배들이 마음 놓고 바다를 누볐을까. 밤바다를 찬란하게 수놓은 배들의 불빛이 아지매들이 뿌린 혈루 같아서 먹먹하다. 밤이면 뼈마디에서 깡깡이 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는 아지매들을 위해 오늘밤은 귀잠 들게 해달라고 두 손을 모은다.

하늘색 페인트로 단장한 샛문이 대각선으로 보이는 스테인리스 큰대문에게 생긋 눈인사를 건넨다. 태풍에 찌그러진 옆구리를 움켜쥔 큰대문이 엉거주춤 화답한다. 옆구리를 펴 주지도, 샛문처럼 칠 단장을 해줄 수도 없어 용서를 구하지만 언제나 도도하고 차가운 표정이다.

대문이든 사람이든 살림살이든 붉은 녹이 스는 것들에 더 정이 간다. 붉은 녹을 걷어내면 여린 속살이 은밀히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하늘색 샛문을 여니 가을산이 온통 붉은 녹을 뒤집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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