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붕어에게 쓰는 편지/윤영
각시붕어에게 쓰는 편지장맛비가 사나흘 내리더니 무논에 미꾸라지가 살이 제법 올랐더라.
나는 이 편지를 쓰면서도 네가 읽을 수 있을까? 몇 번 생각했지만 결국 내 넋두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버렸어.
사실은 그날 내가 많이 힘들었어. 정사각형이 되고 싶었지만 꼭짓점 하나 떨어져 나가 버리고 삼각형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날엔 그 강가로 훌쩍 떠나 물속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는 거 너도 알고 있었을 거야. 다층의 집을 짓고 아웅다웅 눈에 불을 켜듯 살아가는 물 위의 세상과는 다르게 수면 아래 풍경은 고요 그 자체더라. 이끼를 덮어쓴 채 바위에 붙어 있는 다슬기, 자갈 더미를 쿡쿡 쪼다가 이방인의 숨결을 느꼈는지 바위틈으로 쏜살같이 숨어버리는 꺽지,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헤엄쳐 나가던 팔뚝만 한 붕어도, 흐느적거리는 청태도 서로의 길을 인정해주더라.
하긴 아무리 유순해 보이는 곳이라도 어디엔들 남모를 속사정도 있을 테고 법칙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수면 아래 세상은 정제된 느낌이랄까. 하나같이 참하게 자기의 삶을 살아가더구나. 그러니 농축된 고요가 아닐까 싶더라.
내가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지 뭐. 그렇게 얼마나 물속에서 놀았는지 모를 만큼 온몸이 추웠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흥건하게 젖은 몸을 말리려고 햇빛을 찾아 나왔지. 강의 양쪽으로 쪽빛 지천인 풀숲을 지나는 중 꿈을 꾼 듯 금빛가루가 눈이 부시더라.
바로 너희들이 떼로 몰려 나왔지 뭐니.
나는 재빠르게 돌로 성을 쌓았던 거야. 성문을 넘거나 틈새로 빠져나가는 무리 속에서 차마 빠져나가지 못한 너희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기 인간세상까지 데려왔구나. 넌들 반짝이는 강물 위로 튀어 오르던 대가천의 고향이 그립지 않겠니. 조만간 고향으로 돌려보내 줄게. 보름 전만 해도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몸으로 왔는데 그사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더니 몸매가 제법 물고기다워졌네. 당분간만 어설픈 어느 아낙의 잔소리와 한탄 섞인 푸념이 잦더라도 인간 세상에 대한 보시라고 생각하게.
오늘 조간신문을 읽다가 시답잖은 소식만 도배된 것 같아 확 집어 던져버리고 너희 곁에 앉아 있어. 세간이 떠들썩한 s 작가의 표절문제로 난리도 그런 난리는 없네. 입안이 얼얼하도록 그녀에게 욕을 퍼붓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문학에만 표절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이 조금씩 표절에 물들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남의 인생을 빌려오거나 이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짜증이 확 밀려오더라. 영혼은 다른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달라붙고 탈의 된 내 허울은 허방을 향하여 목표도 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종종 들더라. 쓸쓸하군.
휴가 나온 아들 녀석이 메르스와 상관없이 돌아다니건만 잔소리를 참고 있거나, 고3인 딸아이의 정신상태를 보면서 한방 쥐어박고 싶지만 자상한 척한 나는 표절 엄마였다. 그저께 막창 구이집 대로변에 술 먹고 구역질하며 누워있는 한 여자를 일으켜 온갖 고민 다 들어주거나, 어느 카페에서 천정이 무너져라 울어대는 아기를 달랠 생각은커녕 친구들과 수다에 빠진 아기엄마에게 한 소리 퍼붓고 싶었지만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며 착한 척하는 나는 표절로 점철된 사람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음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늘 평가 속에서 살아가면서 표면만 추구하고 견제만 바라보고 있었나 싶기도 해. 도대체 내 인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어제는 어느 지인이 올린 대한민국 중산층의 기준을 보다가 깜짝 놀랐지 뭐냐. 결혼한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도 안 되고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도 아니 되며, 해외여행을 수시로 가지도 못하니 나는 대한민국에서 하류층인 게 틀림없었던 거야. 내게 해당되는 게 왜 그리도 없는지 갑자기 욕이 나오더군. 딴에는 돈이 주가 되어서는 아니 되며 마음엔 몇만 평의 자연을 정원으로 들여앉혀 가며 자존감 높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살짝 속이 뒤틀리는 꼴이라는 게 우스웠다. 물론 며칠 지나면 또 잊고 살 테지만 말이다.
외려 다른 나라의 중산층 기준을 보면서 내가 기댈 곳이 차라리 미국이나 영국의 중산층에 근접하더라. 영국에서는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며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때 중산층에 들 수 있다고 하더라. 미국에선 말이야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이며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 있으며 중산층에 들 수 있다고 하더라. 잠시 이민이라도 가고 싶어진 이유는 뭘까. 이곳에서의 잠시 뒤틀린 기분을 저곳에서 힐링한 기분이랄까.
내가 왜 한국의 중산층에 포함되지 못함을 자책하고 있는지 그런 내가 역겨워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는 내내 기분이 쓴맛이었어. 그렇다면 굳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면 그렇게 살아오면 되지 왜 한국의 중산층 기준에 미달치 못했다고 우울할 필요가 없을진대 말이야. 나는 분명 나를 위한 나는 없었고 남을 위한 삶과 남의 눈을 위한 평가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 그렇다고 마음에서 솟아나는 거룩한 희생정신도 아니고 애민도 아니고 태초부터 우러나온 사랑의 본능도 아니니 더 가관인 게지.
어쩌면 나의 삶, 내가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나마 남의 인생을 사는 준비 단계이니 그리 오래된 고질의 표절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지만 이렇게 가다보면 인생이 백 년이라 치자 난 절반을 살았는데 내 인생은 언제 살아볼까 걱정도 되고 그렇다네.
각시붕어야! 아무래도 이렇게 내 넋두리는 7월이 저물 때까지 계속될 거야. 왜냐면 너는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징크스 같은 게 있더라. 지금껏 7월만 되면 이육사 시인의 싯구절처럼 청포도가 익는 게 아니라 한 여자의 넋두리가 제법 익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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