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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흉터/양수창

에세이향기 2021. 5. 4. 12:25

 

 

 

흉터

 

양수창

 

 

함양에 있는 상림공원에서 고목이 된 나무들 가운데 큰 흉터를 간직한 나무를 보았다. 커다란 동굴을 연상케 하는, 그 상처가 얼마나 깊었을까. 아픔은 얼마나 극심했을까. 여러 날, 여러 밤, 역사의 한 복판에서 잠 못 이루고 신열하며 들떠 지냈던 기억이 고스란히 흉터로 남아있다. 아픔을 견디고 상처를 쓸어 덮고, 그렇게 스스로 치유한 흉터. 고목 스스로, 더욱 고풍스럽게, 더욱 우아하고 더욱 품위 있게, 자기 존재 가치를 드러낸, 그 아팠던 흔적. 이름 모를 새들은, 그 아팠던 흉터 속에 들어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고 어떤 생애生涯를 살다 떠나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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