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억새의 노래 / 나대영

에세이향기 2022. 1. 5. 09:28

억새의 노래 / 나대영

 
 

‘여백(餘白)을 가득채운/저 숨가픈 날갯짓,/꿈꾸는 세상(世上)은/아직도 아득한데/바람이/키운 씨앗들/눈꽃으로 피어난다.//무위(無爲)로 뿌려놓은/수많은 아우성,/별빛에 씻기우다/꽃등에 맺힌 이슬은/어쩌다/서럽게 흘린/눈물인 줄 알았다.//세월(歲月)뿐인 산등성이/적막(寂寞)도 인연(因緣)이니/덩실덩실 춤추고/허공을 걷노라면/무심한/가을 노을도/너털 웃음 터뜨린다.’

한 계절 아름다운 채색(彩色)과 향기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미나 모란, 국화 등은 대부분 사람의 손으로 애지중지하며 가꾸어진다. 그에 비해 억새풀은 결코 뭇사람들의 관심을 갖고 자라나는 풀이 아니다. 물론 화려한 빛깔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짙은 향기를 품어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찌 보면 빈 공간에 무작위로 뿌려진 하찮은 잡초와 같은 것이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일 것 같은 억새풀, 하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괜히 허탈할 것만 같은 억새풀, 그런 이유에서 나는 감히 스스로 민초(民草)라 이름 짓고 그 흥취와 정감을 아끼고 좋아한다.

사실인즉, 지난겨울 폭설에 그냥 묻혀버린 줄 알았었다. 딴은 하찮은 잡풀로 생각해 눈여겨보지도 않았었다. 아무나 짓밟아도, 또 누구나 걷어차도 별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바람에도 왜 그리 깔깔대는지 그 가벼운 몸놀림에 그냥 대충 살다가 홀연히 떠나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그 척박한 산야(山野)에서 아직도 살아남아 허허로운 산등성이에서 서로서로 등을 맞대고 군락(群落)을 이루는 모습은 그 마른 가지 하나하나가 꼭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색색(色色)의 꽃이 지고 온 산에는 홍엽(紅葉)이 흩날리는 이 산마루, 허공에는 아직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송골매 한 마리가 배회(徘徊)하고 있는데 우리들의 민초(民草)인 억새는 마치 바람의 일부처럼 세월 끝 난간(欄干)에 기대어 천상(天上)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마치 날개를 펴고 하늘이라도 날을 것처럼.

넓고 넓은 여백(餘白)의 가장 밑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나를 듯, 나를 듯 한 몸짓으로 하찮은 슬픔쯤이야 옷깃으로 떨쳐버리고 아직은 마주할 수 없는 하늘을 향해 무언(無言)의 항변을 하는 모습은 가히 우리들 민초의 삶과 흡사하다. 금방이라도 밟으면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지만 서릿발 가득한 지심(地心)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칠 줄 모르는 춤사위로 온 산야(山野)를 흔들어댄다. 비록 메아리 없는 아우성일지도 모를 그들의 몸짓은 막막한 세상을 향한 끝없는 도전(挑戰)이며 응전(應戰)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금방이라도 밟혀 죽을 것만 같은 그들의 삶은 간간이 떨어뜨린 눈물방울로 목을 축이고 연명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밤이면 별빛에 그을리고 이슬에 씻기면서도 단 한 번도 바람에 맞서지 못하고 순응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어느 누가 꽃이라고 명명(命名)하지도 않았고 이름마저 불러주지도 않았다. 그냥 그럭저럭 살다가 떠날 것으로 생각했으리라. 그런데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그들을 향해 억새풀이라는 잡초로 부르는 것은 살아남았기 때문에 주어진 훈장 같은 것이리라.

내가 굳이 우리 서민(庶民)의 삶이 억새풀과 닮았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살아가는 과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데도 돌아보면 아직도 살아있고, 산불이라도 나면 모조리 태워졌을 법만도 한데 끈질기게 살아서 버티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들이 우리 서민의 삶을 흉내 내는 것만 같다.

따지고 보면 장미나 모란, 국화 등이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을 받는다면 억새풀이 최소한의 예우를 받을 때는 그들이 한꺼번에 모여 하얀 눈꽃을 피우면서 텅 빈 산을 향해 손짓을 할 때뿐이다. 그러나 봄날이 오기도 전에 다시 짓밟히고야 마는 운명이니 어찌 우리 서민의 삶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억새는 억척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꿈으로 지난 세월이야 뜬구름 같은 것일 텐데도 골 깊이 새겨진 사연들은 바람결에 휘말려 끝 간 데를 모르고 또 다른 허공을 향해 손짓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들 민초(民草)의 풀뿌리 마디마디가 농부의 손가락마디처럼 거칠고 투박하기만 한 것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한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질풍경초(疾風勁草). 이 말은 아무리 거센 질풍에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억새풀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비록 산골 아낙네처럼 투박하고 쌀쌀맞지만 내심으론 눈물도 많고 정도 많은 그녀들의 삶처럼 묵향(墨香)과도 같은 변하지 않은 향내가 함께하고 있다. 언뜻 보면 억척스러운 것 같지만 진정 소박하고, 욕심이 많은 것 같지만 아직까지 남의 것을 탐내 본 일이 없고,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항상 그랬었다. 한 계절 찬란했던 장미나 모란이 제멋을 뽐내다가 시들어질 때면 여태껏 짓밟혀 죽은 것 같았던 풀꽃들이 머리를 내밀며 눈꽃으로 살아나 덩실덩실 춤을 춘다. 단 한번이라도 손을 내밀어 구걸한 일이 없고 단 한 번도 맵시를 뽐내는 일도 없었지만 이 삭막한 겨울 산야를 흔들어대는 것은 바로 억새풀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도대체 그들이 갈구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을 그리도 구애(求愛)하는 것일까? 그야 잘 모르지만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하다.

어쩌면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 그 연약한 몸짓은 무엇을 위한 몸부림이던가? 손등으로 감겨오는 바람은 목마른 울음으로 승화(昇華)되어 빈 가슴 채우더니 그토록 몸살을 앓고도 거뜬히 되살아난 부활(復活)의 손짓은 누구를 향한 몸부림이던가? 어찌 그뿐인가? 갈꽃 내린 산등성이엔 인고(忍苦)의 뿌리가 굽은 등처럼 휘어져 있고, 무심코 산 세월 속에 발가벗고 서 있는 것은 끝끝내 꺾이지 않는 우리 민초(民草)의 표상(表象)이 아니던가?

비록 목 놓아 소리치다가 텅 빈 산(山)을 흔들어 놓을지라도, 비록 춤추는 고뇌 위에 붉은 달만 달리고 있을지라도, 비록 한 계절에 폭설이 내려 온 산야를 뒤덮을지라도, 어찌 청산의 그 푸른 뜻마저 외면할 수 있으랴.

아직도 우리들의 삶이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언어가 사랑이라고 감히 소리칠 수 있는 것은 , 아무 것도 아닌 저 억새풀마저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삶의 굴곡이 이 허허로운 산등성이에서 우리 모두의 가슴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을 달래다 / 김현숙  (0) 2022.01.14
눈과 손의 위상에 관한 형이하학적 고찰/최민자  (0) 2022.01.05
눈꽃막사발 / 류영택  (0) 2022.01.04
돌챙이/오미향  (0) 2022.01.04
쪽항아리/김희숙  (0) 202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