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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자투리/남지은

에세이향기 2022. 5. 21. 06:46

자투리/남지은

 
 
서랍 여는 소리가 뻐근하다. 너무 오랜만에 열어주니 그동안 쌓였던 먼지와 고적함이 서로 뻐걱대는 소리다.
 
여러 개의 서랍 중에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칸이 있다. 그 속에는 버리기엔 아깝고 딱히 사용처도 없는 자투리 천과 머리타래와 보자기 등이 있다. 1년에 한두 번 열까말까한 이 서랍을 열 때는 마른기침을 한 번 하고 연다. 적요에 길이 든 서랍에 오랜만에 관심 두는 것이 좀 미안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머리타래에 좀이나 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서랍을 여는 순간 고이 잠자던 먼지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켠다. 위로 아래로 너부러지는 먼지들을 모르는 체하며 이것저것 뒤적인다. 가위자국이 선명한 상처를 안고 수십 년 서랍 속에서 잠자는 자투리 천들을 위로하듯 살살 달래가며 공기도 쐐주고 나프탈렌도 교체해 준다.
 
이제는 애틋할 것도 없는 이것들과 인연의 끈을 놓아줄까 생각해 본다. 아니 어쩌면 내가 놓아주기 전에 이것들이 먼저 끈을 놓고 세상구경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프탈렌 냄새에 절어 잠만 자느니 단 한번만이라도 밝은 세상을 보고 싶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신문지에 싸둔 머리타래를 펼친다. 나도 한때는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리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다. 긴 머리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 쳐다보던 추억을 생각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는 엉덩이까지 치렁치렁했던 머리에 비녀를 찌르고 전통혼례식을 치렀다. 첫 친정을 가서 삼단 같은 머리채를 잘라내던 미용사가 "미안해서 어쩌지요?" 하면서 건네준 머리타래. 미용사의 손에서 넘겨받은 머리타래를 서랍 속에 넣어놓고 한 번씩 꺼내 선심 쓰듯 나프탈렌을 교체해 준다. '신체발부를 온전히 하는 것이 효도의 시초'라는 성인의 말 때문이 아니다. 숱한 사연을 떠올리게 하는 그것을 함부로 버리기가 뭣하여 고이 간직한 것이다. 나 자신의 존재가치도 모르면서 머리타래를 나의 일부라고 우기며 의미 없는 인연으로 묶어둘 필요가 있겠는가 싶기도 했었다.
 
자투리 천을 집어 든다. 내가 시집온 이듬해 시어머니는 손수 삼베 한 필을 짜셨다. 그 삼베를 가지고 아버님과 맏아들의 중의적삼을 지으셨다. 그리고 남은 자투리는 맏며느리인 나에게 "나중에 아이들 다 키워놓고 적삼이나 지어 입어라". 하시며 주셨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라는 뜻은 아마도 아이를 기를 적에는 삼베옷을 폼 나게 입을 수 없다고 생각하셨을 게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다 자랐는데도 아직 적삼을 지어 입지 못했다. 서랍을 열 때마다 유일하게 나프탈렌을 넣어주는 자투리 천이다. 만지작거리며 적삼 바느질을 어디에다 맡길까 고민하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해왔다.
 
남편 역시 자신을 위해 지은 중의적삼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젊은 나이에 입기가 좀 어색했던지, 검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면 입는다고 미뤄두었던 것이다. 내가 굳이 입기를 권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푸새와 다림질이 번거롭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수고와 번거로움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을 텐데 말이다.
 
남편을 떠나보내던 날 나는 서랍을 모두 열어놓고 망연히 앉아 있었다. 한참 뒤 그의 옷을 모두 꺼냈다. 중의적삼만은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며 망설였다. 시어머니의 정성이 밴 귀한 옷인데,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가버린 주인에게 딸려 보내야할지 말아야 할지. 아니면 아들에게 대물림이라도 해야 할지 고민 끝에 결국 불꽃으로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인에게 딸려 보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이 된 아들의 키가 아빠보다 십 센티나 더 크기 때문이다. 그냥 두었더라면 사이즈가 작아서 아들에게 입힐 수 없게 되었을 것이고, 나는 서랍을 열 때마다 주인에게 딸려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으리라. 이제 그도 저 세상에서 이순의 나이를 넘겼으니 함께 딸려 보낸 중의적삼을 떨쳐입고 시원한 여름을 나지 않을까.
 
반쪽짜리 인생을 살아온 세월. 돌이켜 보면 문득 내가 서랍 속에 갇혀 사는 자투리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홀로 남겨졌으니 자투리가 아닌가. 자투리로 사는 삶이 너무 고달팠기에, 힘들었기에 남겨졌다는 피해의식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자주 고개를 삐죽이 내밀곤 했다. 지인들 중에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생했다며 위로해 주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진정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랬을까. 설령 이해를 못한 채 위로했더라도 고마운 분들이다.
 
남겨졌다는 것은 어떤 무책임이 낳은 흔적이다. 가위질을 잘 했으면 남지 않아도 될 것을. 신의 장난에 따라 내 인생도 이리저리 가위질을 당하며 살아 왔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에 표정이 달라진다. 살아오면서 미모사와 같이 예민해진 자신을 발견할 때는 괜히 서글퍼지기도 했다.
 
자투리와 머리타래는 수십 년간 서랍 속에 갇혀 살았지만 답답해하거나 서글퍼 하진 않는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 점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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