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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유혹/김광규

에세이향기 2022. 5. 29. 10:31

  대장간의 유혹

 

                        김광규

 

 

제 손으로 만들지 않아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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