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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덩굴의 독법 / 나혜경

에세이향기 2022. 5. 31. 20:43

담쟁이덩굴의 독법 / 나혜경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이 저랬던가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고
 지문이 닳도록 아픈 독법으로 기어오른다
 한번에 다 읽지는 못하고
 지난해 읽다만 곳이 어디였더라
 매번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다 보면 여러 번 손닿는 곳은
 달달 외우기도 하겠다
 세상을 등지고 읽기에 집중하는 동안
 내가 그랬듯이 등 뒤 세상은 점점 멀어져
 올려다보기에도 아찔한 거리다
 푸른 손끝에 피멍이 들고 시들어버릴 때쯤엔
 다음 구절이 궁금하여도
 그쯤에선 책을 덮어야겠지
 아픔도 씻는 듯 가시는 새봄이 오면
 지붕까지는 독파해 볼 양으로
 맨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읽기 시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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