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세탁소 / 송향란
그 작은 간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서동에서 범내골 넘어가는 골목어귀
오랜 세월 멈춰 선 시곗바늘처럼 늘 그자리에 서 있는
한낮에도 반쯤 꺾인 햇살 고여 있는 창 너머
때 절은 시간이 거미줄처럼 걸려 있다
낮은 담벼락 둘러친 찢겨져 나간 벽보
덧난 상처처럼 번져 간다
나뭇잎 배처럼 떠돌던 사람들
휘어진 골목 안으로 흘러든다
끝없는 폐허의 숲을 지나온,
살아가면서 구겨지고 뭉개진 것들
날마다 찾아들어 끈질기게 붙어있는 먼지
떨쳐내기 위해 몸살 앓는다
통증 털어낸 솔기마다 달아오른 다리미
뜨거운 입김을 뿜어낸다
반듯하게 다려진 옷들
서둘러 길 떠날 때까지
순한 양처럼 길가에 내걸려
허공을 끌어당긴다
페인트칠 떨어져 나간 간판 아래
무언가 말하려다 입 다문 유리창 붉은 글씨들
쓸쓸한 골목 끝 오래도록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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