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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양파/이삼현

에세이향기 2022. 5. 21. 06:29

양파 / 이삼현

 
 
 

아내의 부엌에 까다 만 눈물 한 바가지 담겨있다

나이를 과속할수록 소음이 심한 남편이지만

늘 웃으며 동승해주는 것이 고마워

모처럼 까다만 눈물을 대신 깐다

거친 흙 속에 걸음을 뻗고 쑥쑥 자라 오른 흔적

이순으로 접어드는 우리 부부도 이제

뿌리와 줄기는 말라붙고 주먹만 한 결실로 남았다

툭, 던진 한마디에도 쉬 부스러지는 겉껍질

앞만 보며 참고 쌓아온 모래알 같은 기억 때문이다

식구들을 보듬었던

단단히 엉긴 흉터 딱지를 벗겨내니

웅크린 아내의 속살이 비치고 울컥, 눈이 아려온다

제 안으로 깊숙이 남편과 자식들을 껴안은

한 겹 또 한 겹 벗겨낼수록 작아만 가는

오늘 저녁 아내는

한 끼 행복을 위해 무슨 밥상을 준비하려 했을까

다 드러내지 못한 속내를 까며 어떤 그늘에 잠겨 흔들렸을까

손톱을 세워 껍질을 벗겨내야

겨우 맑아지는 하루

말없이 고개 숙인 저를 까며 흘렀을 아내 대신

오늘은 내가, 한바가지 눈물로 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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