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키우기
마경덕
“돼지를 키워 학교에 가거라”
엄마의 한마디에 나는 돼지 세 마리의 철없는 어미가 되었다
집집마다 수챗가에 구정물통을 갖다 놓고
해거름에 거두러 다녔다
불어터진 밥알, 비린 생선대가리, 무 껍질, 시큼한 잔반냄새ⵈ
그것들이 몇 푼의 등록금이 되어주었다
동네 우물이 있던 윗집
턱수염이 거뭇한 자취생들이 우글거렸는데
내게 편지를 보내던 남학생도 끼어 있었는데
내가 그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휘파람을 불던 남학생들이 마루 끝에 앉아 키득키득
고1짜리 여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갈까
말까
수없이 망설이던 그 집
먹새 좋은 돼지를 굶길 수는 없어
침착하게, 아니 뻔뻔하게 눈빛을 갈아 끼우고
멀건 구정물을 따르고
무거운 양동이를 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섰다
그때마다 사춘기의 뒤통수가 따가웠다
뒤에서 수군거리던 그 소리
“참 맹랑한 애야”
분명, 명랑이 아닌 맹랑이었다
[출처] 돼지 키우기 / 마경덕|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