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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키우기/마경덕

에세이향기 2022. 5. 13. 14:37

돼지 키우기

 

마경덕

 

 

“돼지를 키워 학교에 가거라”

 

엄마의 한마디에 나는 돼지 세 마리의 철없는 어미가 되었다

 

집집마다 수챗가에 구정물통을 갖다 놓고

해거름에 거두러 다녔다

불어터진 밥알, 비린 생선대가리, 무 껍질, 시큼한 잔반냄새ⵈ

 

그것들이 몇 푼의 등록금이 되어주었다

 

동네 우물이 있던 윗집

턱수염이 거뭇한 자취생들이 우글거렸는데

내게 편지를 보내던 남학생도 끼어 있었는데

 

내가 그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휘파람을 불던 남학생들이 마루 끝에 앉아 키득키득

고1짜리 여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갈까

말까

수없이 망설이던 그 집

 

먹새 좋은 돼지를 굶길 수는 없어

침착하게, 아니 뻔뻔하게 눈빛을 갈아 끼우고

멀건 구정물을 따르고

무거운 양동이를 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섰다

 

그때마다 사춘기의 뒤통수가 따가웠다

 

뒤에서 수군거리던 그 소리

“참 맹랑한 애야”

 

분명, 명랑이 아닌 맹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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