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푼 예찬 / 이은희
가스 불에 찻물을 올립니다. 그의 온몸은 금세 열로 펄펄 끓어 오릅니다. 주위에서 무어라 저지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파란 불빛 하나에도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떱니다. 파편이 여기저기에 투명한 자국을 남깁니다. 붉은 깃발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가는 성난 투우 같습니다. 머지않아 파란 불 빛과 함께 싸늘히 식어갈 체온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우직한 바보인가 봅니다. 그런 그의 무모한 열정이 꼭 나를 닮은 듯하여 이따금 두려워집니다.
그의 집엔 늘 손님으로 북적거립니다. 차 한 잔을 대접하기 위해 그를 찾아 빠르게 찾아 나섭니다. 국그릇 두 배 크기, 겉과 속은 한 가지 빛깔인 황금색입니다. 그러나 연륜은 못 속이나 봅니다. 가장 평평한 자리인 배가 얼룩덜룩 검은 회색빛이 감돌아 목리문처럼 빗금이 수없이 그어졌습니다. 빛이 바랜 양푼입니다.
온데 상처투성이가 난 누런 그릇을 의식 없이 손으로 낚아챕니다. 이젠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수십 년 전, 철모르던 어린 새댁이 아닙니다. 살림에 묘를 부릴 줄 아는 아줌마로 세월 속에 서 있습니다. 이젠 그와 썩 잘 어울립니다.
스테인리스 주전자가 찬장 턱에 올라앉아 울상입니다. 날렵하고 윤이 나는 삼각스테인리스 주전자 위로 먼지가 뽀얗게 앉았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더욱 외롭답니다. ‘차라리 날 식구로 만들지나 말든지.’ 그의 볼멘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우리 집에서 양푼은 다른 소품들의 질투의 화신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해서 시골로 들어가 시어머니와 함께 살 때의 꼭 내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 퉁퉁 부은 볼멘소리로 안달을 했습니다. 하늘하늘 꽃무늬가 들어간 하얀 도자기 그릇은 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일 땔감을 베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을음으로 혼수로 가져 간 폼이 나는 그릇은 자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궁이 불씨가 사윈 뒤에는 검게 그을린 부엌과 그릇을 닦느라 쪼그리고 앉아 한나절은 소비하였습니다. 도시의 젊은 새댁은 허리와 손목이 쿡쿡 쑤셔와 남몰래 눈물을 흘린 적도 많답니다.
시어머니는 작은 양푼에 보글보글 라면을 맛나게 끓이기도 하고, 찻물을 올리기도 합니다. 나물을 살짝 데쳐 감칠맛나게 무치는 용기로 두루두루 애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용도로 쓰이는 양푼을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어린 새댁은 무시로 깔끔을 떠는 성격이랍니다. 찌그러지고 볼썽사나운 양푼에 마구잡이로 끓이고, 볶고 청결하지 못하다 느꼈습니다. 새댁은 볼멘소리로 하루빨리 깨끗한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며 투정을 부렸답니다. 그리고 수없이 마음속으로 혼자 기와집을 그렸지요. 깨끗한 입식 부엌에 하얀 도자기 그릇을 내놓고 아기자기하게 생활하는 행복한 주부의 모습을 말입니다.
일 년 후, 학수고대하던 아파트로 둥지를 옮겼습니다. 가족들과 일방적인 상의 끝에 양푼을 모두 버렸는데,한 녀석이 시어머니를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던가요? 그 습관을 제가 버리질 못했습니다.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한두 번 사용하다가 원 상태로 돌아가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느덧 양푼에게 길들여졌나 봅니다. 옛것이 무조건 나쁘고 불편한 것만이 아닌 듯합니다. 요즘은 실용성을 고려하지 아니한 겉포장을 중시하는 풍조가 대단합니다. 그렇습니다. 속 빈 강정처럼 겉모습만 호화스러운 것들이 많은 시대랍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내실이 없는 사람이 겉으로 드러내길 좋아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어느 한 시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돌(石)보다 옥(玉)이 더 많은 시대랍니다. 사실 올바른 나를 지키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시시때때로 주변의 것들이, 다채롭게 다가옵니다. 제가 사는 이 시대는, 유혹이 참으로 많습니다. 허욕과 물욕을 찾아 불나방처럼 날아듭니다. 화려한 불빛을 좇다 자신의 일부분이 타들어가는 줄 모른 채 말입니다. 결국, 날개를 잃고 바닥에 고꾸라져 안간힘을 씁니다. 비로소 후회의 눈물을 흘려도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똑 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충실히 내면을 가꾸어야겠습니다. 겉과 속이 같은 양푼처럼 말입니다.
얼마 전, 백화점 쇼핑을 하다가 양은냄비를 보았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 간식 값만도 못하는 가격을 달고 있었습니다. 높게 쌓여 있는 것이 그의 진가를 알 수 없게 합니다. 젊은 새댁들이 알 리가 만무합니다. 아마도 그의 진가를 몰라도 이건 알 것입니다. 쉬이 식어버리는 짧은 사랑을 말할 때, 양은 냄비 같은 사랑이라 빗대어 놀립니다. 그래서 은근히 양은 냄비가 푸대접을 받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인간에게 주는 실용성을 논한다면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닙니다. 늙은 새댁은 뚜껑 없는 양푼이 아쉬워 욕심을 부립니다. 단돈 이천오백 원으로 남모르는 주부의 행복을 삽니다.
한여름 별미인 시원한 콩국수를 말기 위해, 국수가 불지 않도록 후루룩 삶아냅니다. 꼬들꼬들하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도 끓여줍니다. 지인들과 양푼에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한 숟갈 넣어 비빔밥을 만들어 정을 나눈 후, 입가에 고추장이 묻어도 흉보지 않는 허물없는 사이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단순하며 어렵지 않은 글, 모든 것을 요리할 수 있는 가슴 큰 양푼처럼 편안한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설거지를 마친 후, 구수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한 시간입니다. 식구들이, 특히 시어머니가 양푼에 찻물을 올리는 무던한 늙은 새댁을 보고 미소 짓고 있습니다. 괜스레 지난 일이 그려져 얼굴이 늦가을 홍옥처럼 붉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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