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比鄰구멍 / 허숙영
도시의 뒷골목을 걷는다. 누군가 마주치면 몸을 옆으로 돌려 게처럼 걸어야 할 것 같은 이 길이 낯설지 않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접든지 높이를 달리해야 비켜갈 수 있다. 퀴퀴한 하수구 냄새 진동하는 골목에는 허드렛물이 홈통을 타고 길바닥으로 쏟아지는 일도 예사다.
조무래기들이 흘린 '자유시간'이란 과자 봉지는 뜯겨 자유는 하수구를 따라 흘러가 버리고 시간이란 글자만 뎅그러니 맨홀 뚜껑에 걸려 있다. 이 골목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게 남아도는 것은 시간일 테니까.
하루 종일 해도 들지 않고 낮고 음습한 지대, 부엌 하나 방 하나가 대부분인 이곳에는 질병에 익숙해진 노인들이 참으며 살아간다. 대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아이들도 학원에 가지 않고 딱지치기나 술래잡기를 하고 논다. 이곳 사람들은 폐지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주워 모으는 버릇이 있다. 버린 신문지나 철 지난 광고지를 가져다 벽을 도배하고 종이박스와 플라스틱 조각들은 동네의 한 중앙, 배꼽 같은 우물 곁에 첩첩이 쌓아두고 있다.
뙤창을 열면 숨소리마저 닿을 듯한 거리이건만 문이 열린 집은 없다. 누구도 탐낼 만한 물건을 가졌을 것 같지는 않은데 시멘트 담장 위로 깨진 유리조각들을 촘촘히 박아 접근조차 못하게 으름장을 보내고 있다. 가슴에 금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골목을 걷고 있으니 스무 살 언저리의 내가 말을 걸어온다. 생각하는 것만큼 삭막한 풍경은 아니라고. 벽돌 한 장만큼의 비린구멍은 얼마든지 있을 거라며 다독인다.
사십여 년 전 살림집들의 풍경이 대부분 이랬다. 주인은 안방 하나만 남기고 방 한 칸만 있어도 처마 밑에 부엌 한 칸 덧대어 세를 놓았다. 그 속에 우리의 자취방도 있었다.
두어 사람이 누울 만한 공간과 슬레이트 한 장 처마에 덧붙인 것이 전부였다. 부엌이라 이름 붙였지만 대낮에도 알전구를 켜야만 하는 시커먼 연탄아궁이가 이웃집 부엌과 맞닿아 있었다. 그 사이에 가로 막고 있는 벽은 얇았지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역이었다. 한 발짝 내디디면 닿을 수 있는 이웃이었는데도 출입문이 반대 방향이어서 한참 돌아가야 했다. 음식 냄새가 먼저 건너오고 나면 소리로써 그 집의 동태를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던 고단한 자취생들은 남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담을 넘어 심심찮은 신음이 들려올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살려주세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숨넘어가는 소리의 향방을 찾아 귀를 기울이고 상황을 알기 위해 급한 대로 밥상으로 디딤돌을 만들었다. 한쪽 발을 올리려는데 "저기 봐"라는 친구의 외침이 들렸다. 연탄 창고 한쪽 옆으로 벽돌 한 장이 빠져나간 듯한 틈을 발견한 것이다. 그곳에 실눈을 갖다 대던 친구의 얼굴이 굳어갔다. 우리는 컴컴한 부엌 바닥에 엎어져 있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칼날 같은 바람을 뚫고 내달렸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부엌묵을 열어젖히고 찬장을 뒤져 김칫국물을 떠 넣으며 난리법석을 피우자 그녀는 부스스 눈을 떴다. 우리 또래였던 그녀는 야간 일을 마치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목마름을 느끼며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쓰러졌다고 했다. 가까스로 부엌까지는 기어 나왔지만 다시 엎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 후로 구멍은 우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전화가 없던 시절, "언니"라고 외치는 소리 들리면 부침개 두어 장이 접시에 담겨 건너왔다. 빈 접시를 돌려보내지 못해 사과 몇 알이 붉어진 얼굴을 디밀었고 "놀러와""놀러 와"라는 말이 수시로 넘나들었다. 나는 그 구멍을 비린구멍이라 여긴다.
옛 흙담은 기왓장을 얹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수키와 암키와를 맞붙이면 손이 들락거릴 만큼의 구멍이 만들어진다. 그곳을 통해 별식이 오가고 편지도 드나들었다. 이웃 간 정이 넘나들기를 바라는 통로로 만들어진 그것을 비린구멍이라 불렀다.
마음에 담을 쌓고 살던 우리에게는 소통의 창이었다. 꽉 막힌 현실을 탈출하게 하는 비상구였다. 내일을 즐겁게 여는 공간이었다. 내 젊은 날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풀어주는 해결사였다. 객지에서 피붙이처럼 안부를 물어주고 걱정해 주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것도 없다. 시멘트 얇은 틈바구니가 생명을 키우듯 그것은 푸근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틈이었고 여유였다.
벽돌을 한 장 들어내어 비린구멍을 낸 사람도 사람이 그리웠을까. 무심코 지나치면 모를 듯한 심장 높이에다 틈을 만든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던 컴컴한 부엌에서 관심 가지고 바라보면 찾을 수 있는 행운의 부적 같은 것이었다고 믿는다. 볕뉘 한 줄금 들어와 쉬었다 가듯 우리에게는 서로가 빛으로 다가선 것이다.
자신을 통때로 내어주지 않아도 좋다. 햇살 잠시 머물 수 있는 만큼의 틈이라면 족하다. 조금만 곁을 내어 준다면 따습고 다정한 이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바람 한 점 드나들 수 없도록 두터운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하는 견고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소통의 마지막 보루인 대문마저 철커덕 닫고 돌아서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정을 담뿍 담아 들이밀던 소박한 접시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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