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뚜껑전/김지영
나하고 같은 교무실을 쓰는 종익이 형은 별명이 왕뚜껑이다. 그는 키가 160센티를 겨우 넘고, 머리는 반쯤 벗겨졌는데, 그나마 남은 머리털마저도 희끗희끗하다. 배는 볼록 튀어나오고, 눈은 왕방울처럼 크고 부리부리하다. 나한테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자기의 얼굴을 내 얼굴에 맞닿을 듯 대고 심각한 말이라도 하듯 한다. 그럴 때마다 내 얼굴에 침이 튀어 죽을 맛이다. 말을 할 때마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쳐다보며 침까지 튀겨,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듣는데도 그는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할말을 다한다.
그가 왕뚜껑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느닷없이 화를 잘 내기 때문인데 한 번 화를 내면 아무도 못 말린다. 언젠간 수업을 하다가 문이 부서져라. 열고, 복도로 달려 나와 씩씩거렸다. 마침 나는 옆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었기에 웬일인가 싶어 복도로 나갔다. 그는 수업할 때 큰소리를 지르면서 교단 앞에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이렇게 수업을 하다 보니 앞에 앉은 아이들은 그의 침 세례를 받는데 한 아이의 얼굴에 그의 침이 과도하게 튀자 그 아이가 인상을 썼다. 그 모습을 본 왕뚜껑은 수업을 하다말고 양동이와 사물함을 걷어차고 발정 난 황소가 울부짖듯 소리를 질러댔고, 아이들은 새파랗게 질려 어쩔 줄을 모르고, 인상을 쓴 아이는 무서워서 엉엉 울었다. 그러자 왕뚜껑이 문을 박차고 달려 나온 것이었다. 나는 그의 뚜껑이 열리는 것을 자주 보아온 터라 솥에서 김이 빠지기를 기다리듯 가만히 참고 기다렸다. 그는 씩씩거리며 복도에서 서성이더니 한 십 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본래 상태로 돌아왔다. 그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교실에 들어가서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는 잘못을 빌었다.
명색이 문학박사인 그가 불의에 대한 분노나 불합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저항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그런 것엔 관심이 없고, 가만히 보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일에 뚜껑이 열리곤 한다. 가령 분식집에서 김밥을 샀는데 김밥에 단무지가 빠져있다거나 편의점 종업원이 거스름돈을 주면서 공손하게 주지 않았다거나 할 때 뚜껑이 열린다.
며칠 전에 나와 같이 퇴근을 하던 길이었다. 길을 걸어가는데 경찰관이 우리에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러자 왕뚜껑이 다짜고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경찰관한테 ‘신분증!’ 하는 것이다. 그러자 그 경찰관이 화들짝 놀라며 신분증을 보여주자 그가 경찰관임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자신의 신분증을 내보이는 것이다. 옆에 있던 나는 뜻하지 않은 그의 행동에 당황이 되기도 하고, 어찌나 소리가 큰지 행인들에게 창피한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의 행동이 궁금해서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씩 웃으면서 원래 경찰관이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을 할 때면 자신의 신분을 확인시켜준 다음에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왕뚜껑은 동료들 사이에서 역술선생으로 통한다. 그는 동료 교사들에 점을 쳐준다. 동료들이 자신의 점괘를 부탁하면 그때만큼은 차분해져서 안경을 살짝 내리고,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점잖게 물어본 다음, 점괘를 말하는데 그럴 때는 표정이 제법 근엄하다. 그는 수업을 마치고 퇴근을 하면 집으로 가지 않고, 황학동에서 산 새마을 모자를 뒤집어쓰고는 탑골공원에 가서 서성거리다가 집에 들어가곤 하는데, 퇴직하면 탑골공원 주변에 텐트를 치고, 점치는 일을 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나보고는 호객행위를 잘하겠다며 동업을 하자고 꼬드긴다. 그가 점을 치면 늘 좋은 괘만 나오니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닐 것 같긴 하지만 내가 과연 그 일에 적합한지 요즘 고민 중이다.
그는 오랫동안 부장을 했는데도 교감승진을 하지 못하였다. 한때 대학교 겸임교수로 학생들에게 ‘문학과 인생’이라는 강의를 했다. 그때는 인기강사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러다가 원하던 교감승진을 하지 못하자 그것이 창피하다고 교직원 식당에도 가지 않고 점심시간이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사람들을 피하더니 남들이 들어가기 싫어하는 지하 교무실을 쓰겠다고 자청했다. 그 교무실은 온갖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쥐가 들락거려 여선생님들이 그곳으로 자리가 배정되면 울면서 근무를 못 하겠다고 하는 곳이다. 왕뚜껑이 교장 선생한테 그 교무실을 쓰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와 같이 근무하고 싶은 생각에서 그 교무실로 보내 달라고 했다. 그곳에 있으면서 나는 토스터와 가스레인지를 갖다 놓고 아이들에게 빵을 구워주고 달걀을 삶아주었다. 내가 달걀을 삶는 동안 뚜껑이 형은 손금을 봐주다 보니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교무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그 구석진 교무실이 언제나 북적거렸다.
얼마 전 동료 장학시간이라 그의 수업을 참관했다. 국어과 부장인 나와 교장, 교감선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업이 진행되었다. ‘문학의 정서적인 언어’라는 단원이었다. 그는 정서적 언어는 교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더니 특유의 광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얘들아! 내가 죽으면 땅에 묻히게 될 거야. 그러면 내 몸 위에서 나무가 자라겠지. 내 몸이 썩으면 그 자양분으로 나무는 자라고, 그 나무로 책걸상을 만들겠지. 이처럼 생명은 목숨이 다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야. 그것은 땅에 묻혀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는 거야. 그러니 지금 너희가 앉아 있는 책걸상에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거야. 바로 너희가 쓰고 있는 책걸상이 우리들의 할아버지이고 할머니야.”
그러다가 갑자기 “할아버지!” 하면서 교실 앞 책상을 끌어안더니, “이게 바로 교감이야. 문학은 우주와의 교감이야!” 라고 사뭇 비장하게 문학을 정의하였다. 아이들도 그때까지는 그런대로 그의 열강에 감동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그때 그가 뒤쪽에 앉아 있던 교감 선생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소리쳤다.
“교감, 교감!”
순간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뒤에 서 있는 교감 선생에게 쏠리며 폭소가 터졌다. 나도 배꼽을 잡고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데, 교감 선생은 이 상황에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왕뚜껑은 아랑곳하지 않고 침을 튀기며 수업에 열중했고, 교감 선생도 어느 정도 난감한 심정이 수습되었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쪽 저쪽에서 쉬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며 킥킥댔다. 참 별난 수업이었다.
그는 지하 교무실로 온 이후로 왕따가 되기를 작정하기라도 한 듯 동료들과는 마주치려고도 않고, 역술 책이나 들여다보며 책상 앞에 어항을 놓고는 날마다 금붕어와 알에서 갓 깨어난 열대어를 커다란 돋보기로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너무 작아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대어에 애정을 많이 쏟아 그중 한 마리가 죽기라도 하면 온종일 중얼거리다가는 그가 늘 가는 황학동에 가서 기어이 한 마리를 사오고야 만다. 며칠 전에는 교무실 옆 건물에 집을 짓고 살던 비둘기가 늙고 병들어 떨어진 것을 가져왔다. 비둘기를 신문지로 감싸 교무실 한 귀퉁이에 뉘어 놓고는 물을 주고 먹을 것을 주며 정성을 다했지만, 이틀을 못 넘기고 죽고 말았다. 그는 몹시 슬퍼하며 비둘기를 화단에 묻고 향불을 피워 장사를 지내더니 요즘 아침저녁으로 그곳에 가서 기도하고 있다.
하지만 혈기왕성하던 왕뚜껑도 요즘 들어서는 뚜껑이 열릴 듯 말 듯 덜컹덜컹하다가는 그만 김이 새는 듯하다. 마누라와의 잠자리가 두려워 거실에서 혼자 잔다는데 꼭 아들 방문을 열어놓고는 아내가 문을 열고 거실에 나올 때마다 아들에게 헛기침해달라고 돈을 주면서까지 부탁을 한다고 하니, 이제 왕뚜껑 인생도 다 저물었고, 혹 뚜껑이 열린다 해도 김이 다 새버린다. 그런 뚜껑이 형이 불쌍해서 더욱 친하게 지내다 보니 나까지 동료들과 거리가 멀어졌지만, 아이들과는 더 가까워졌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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