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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펫을 깔며 /김순희

에세이향기 2021. 5. 10. 09:16

카펫을 깔며

 

김순희



카펫을 깔았다. 아이들 호흡기에 좋지 않다고 해서 한동안 수납장 속에 넣어 두었었다. 정해진 공간에 넣기 바빠 카펫의 형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구석진 곳에 넣기 위해 여러 번 겹접었다. 오랜만에 펼쳐 놓으니 판판하지 않다. 접혔던 선이 선명하다. 자근자근 눌러서 가라앉히려 해도 조금 지나면 등허리가 불룩 튀어나온다.
울룩불룩한 카펫 위를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그 등쌀에 이리저리 밀릴까 봐 소파 발을 빌어 한 귀퉁이씩 눌러 놓았다. 식구들이 번갈아 가며 등도 대주고 엉덩이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할까 보다. 며칠은 그렇게 달래야지.

 

달래야 할 것은 카펫만이 아니다. 요즘 내 마음이 마음이 아니다.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오래 접혔던 카펫을 펼친 것처럼, 아무리 혼자 삭히려 해도 쉽지 않다.

 

올해로 결혼 십이 년째인 나는 그동안 부부싸움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편의 성격이 느긋하고 참을성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싸움을 피하고 싶은 내 마음도 물론 한 몫 했다. 내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말다툼을 했다. 늘 작고 사소한 것들로 누가 옳으니 그르니 티격태격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결혼하면 절대 싸우지 않으리라, 특히 자식 앞에선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 다짐이 조금씩 무너지더니 며칠 전엔 새벽이 될 때까지 목소리 높여가며 싸움을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둘째 아이가 아직도 한글을 깨치지 못한 것이 꼬투리가 되었다. 남편은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했다. 급기야 시어머니는 자신을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잘 가르쳤다면서, 나와 비교하기까지 했다. 언성이 높아질 만하자 남편은 아이들 잘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아이들이 잠들자 남편은, 요즘의 내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다시 말을 꺼냈다. 결혼 전의 다소곳하던 모습은 다 어디 갔냐고 했다. 자신이 상상하고 기대했던 현모양처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어 실망스럽다며 한숨을 토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다. 난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멀다. 남편이 원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려고 했을 뿐이다. 수납장에 맞춰 카펫을 접어 넣듯이.

 

십 년이 한계였나 보다. 나는 참아 왔던 말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자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늦게 들어오면서, 어쩌다 내가 약속이 있어 나가면 왜 빨리 들어오라고 시간을 정해 주느냐, 그러지 마라. 내가 시댁에 하는 만큼 당신은 처가에 했느냐, 똑같이 해라. 내 하는 것의 반만 해도 사위 잘 봤다고 동네 소문이 날 것이다. 둘째가 한글 모르는 것도 내 탓만 하지 마라, 아이들 교육을 엄마 혼자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아빠도 참여해서 같이 키우자….’ 카펫이 등허리를 곧추세우며 수납장 속에서의 시간을 성토하듯이 나는 남편에게 가슴속에 접어두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꼬깃꼬깃해진 채 쏟아져 나온 말들은 남편 앞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남편은 얼버무리듯 그만 자자며 자릴 피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크기를 재는 자기만의 자가 한 개씩 있지 않을까? 남편을 만나면서 나는 재단사가 되었다. 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을 대보곤 했다. 썩 훌륭한 재단사가 아니었던지 자를 잘 사용할 줄을 몰랐다. 늘 내 마음은 그 사람 마음 크기와 맞지 않아 서로 생채기를 냈다. 하지만 모양이 맞지 않아도 가위질은 차마 못 해 이리저리 내 마음을 겹접었다.

 

‘접었다’라는 표현이 맞다. 내 생각은 접어서 마음속 수납장에 넣어 두었다. 색종이는 접어서 푸른색으론 비행기접어 하늘로 날리고, 울긋불긋한 색은 예쁜 꽃을 피워 빛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은 접으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마음 접었다함은 거의 포기했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재채기를 자주 하는 큰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라면서 확대경으로 아이의 코 안을 보여주었다. 살이 자라 콧속의 반을 차지했다. 거의 막힐 지경이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비염을 앓아서 상처가 생기고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고 한다. 비염이 반복되면서 흉터의 키가 자란 것이다. 어른이 되면 숨쉬기가 곤란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가슴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무심하고 서투른 엄마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을 겪는 것 같아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들은 겁먹은 얼굴이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내게 눈길로 말을 했다. 의사는 나이가 어려 수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며칠간의 약을 처방해 줄 뿐이었다. 그저 흉터가 더 자라지 않길 빌어야 했다. 제때에 치료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제 때 제 때 풀어야 한다. 작은 생채기라 해서 돌보지 않고 접어두었더니 나도 모르는 새 가슴 한켠에 쌓였나 보다. 그런 상처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아질 거라 여겼다. 내색하지 않으니 남편 또한 내가 어떤 불만을 갖고 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싸우지 않겠다는 애초의 내 다짐이 오히려 문제를 만든 셈이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한 이불 덮는 남편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 순 없는 것이다. 그건 욕심이다. 억지를 쓰다 많은 걸 잃을 수도 있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나는 주로 말을 해서 푼다. 상대는 남편이 아닌 친구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냐는 내 하소연에 친구는 그저 ‘음 음’ 하며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남편과 말다툼하고 잠 못 이룰 때, 전화를 걸어 한 시간쯤 수다 떨고 나면 내 속은 한결 가벼워진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아침 일찍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혼에 할 싸움을 이제 하느냐고 친구가 나무랐다. ‘너희 부부도 싸움을 하는구나.’ 하며 깔깔거리기까지 했다. 남편에게 퍼부었던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되풀이해서 늘어놓으며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냥 말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해졌다.

 

카펫에 누워 남편과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싸움이 아닌 대화를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카펫의 구겨진 자리가 펴지듯 내 마음도 편안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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