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딸아이의 짐을 싸며 / 배종팔

에세이향기 2022. 7. 31. 12:23

딸아이 짐을 싸며 / 배종팔

 
 

새끼 부엉이가 쭈뼛쭈뼛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가까스로 둥지를 빠져나왔지만 아직 밖의 어둠에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둥지 안에서 본 세상과는 달리 나뭇가지에서 보는 세상은 낯설고 두렵다. 어미 부엉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만 본다. 하지만 속은 새끼보다 더 불안하고 애가 탄다. 독립, 그것은 어미가 새끼에게 짐 지우는 삶의 첫 임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제법 커진 몸뚱이, 그런데도 새끼 부엉이는 상수리나무를 세상의 전부로 아는지 이쪽저쪽 가지 사이로 폴짝대기만 한다. 들쥐의 쫄깃한 뱃살이나 통실한 개구리 다리 살을 빈 부리 속으로 넣어 주던 일도 줄이고, 어미 부엉이는 새끼의 어설픈 독립의 몸짓을 가슴으로 지켜본다. 며칠 후, 어미 부엉이는 홀연히 떠났다. 모진 비바람과 천적의 위협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지켜낸 새끼를 떠나는 어미 부엉이. 새끼를 품에서 떠나보내는 마음이야 한낱 미물인들 사람과 뭐 다를까.

아까 벤 손등의 상처가 꽤 오래 아리고 지속된다. 거실에서 딸아이에게 보낼 짐을 싸다 스카치테이프의 날카로운 부분에 베였다. 태연한 척 짐을 쌌지만 마음이 먼저 알고 허둥댔나 보다. 짐을 싸다 오래전 TV에서 본 수리부엉이 다큐멘터리가 왜 문득 생각났을까. 새끼 곁을 홀연히 떠난 어미 새의 날갯짓이 오롯이 가슴에 남아 딸아이 짐을 싸는 지금에야 불현듯 떠오른 모양이다. 새끼와의 인연의 끈을 매정하게 자르고 둥지 근처에 얼씬도 않는 야생의 섭리가 납득이 되지 않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나 보다. 19년을 살을 맞대고 산 딸아이가 새끼 부엉이처럼 이제 막 곁을 떠나려 첫 날갯짓을 시작했다. 불빛에 비친 거실 유리창을 거울삼아 음악에 맞춰 소녀시대 춤을 추던 딸아이, 밤늦게 현관문을 열 때마다 양손을 귓가에 흔들며 달려들던 딸아이의 빈자리가 클 것 같아,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대학에 진학하길 바랐지만 제 딴에는 큰 생각이 있는지 서울로 가야 한다고 고집했다.

면바지와 폭이 좁은 청바지를 상자 맨 밑바닥에 깔고 딸아이가 애지중지하던 카디건을 그 위에 포갠다. 치약과 비누를 모서리마다 끼우고 틈새를 수건 몇 장으로 누른다. 짐의 맨 위에 무엇을 얹혀 놓을까 벌써 생각이 앞서간다. 딸아이가 택배 상자를 열면 가장 먼저 보게 될 깜짝 선물이면서, 아빠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물건으로 무엇이 좋을까 슬쩍 욕심을 내어 본다. 짐을 싸는 건 그냥 물건만을 포장하는 행위가 아닌 것 같다. 그 물건에 깃든 기억과 이야기, 그 사람의 체취와 사랑마저도 함께 싸는 희한한 경험이다. 쫄바지 아랫단에서 광안리의 상큼한 모래 냄새가 난다. 백사장에서 함께 사진을 찍다 몰래 다가온 짓궂은 파도에 둘의 바지가 흠뻑 젖었다. 한 시간 동안이나 엄마와 아빠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고른 핸드백에서 딸아이의 까다로운 성정이 엿보인다. 미안하다며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엄마 아빠의 한쪽 팔에 팔짱을 끼던 딸아이. 부모에게 자식은 행복의 상징이자 근원이다. 자식의 짐을 싼다는 건 그 자식을 가슴에서 밀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택배 상자를 동여매는 내내 찍찍 테이프 소리가 칼날처럼 차갑다.

내가 결혼하여 집을 떠나올 때 어머니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머니의 짐 싸는 방식은 여느 어머니의 그것과 달랐다. 삼십여 년을 정붙이고 뒷바라지한 자식이 당신의 품을 떠나려 하는데도 짐 하나 곰살맞게 꾸리지 않았다. 유난히 자식의 분가를 서둘렀다. 이삿짐을 나르는 동안 용달차 근처에 얼씬도 않았다. 자식은 어머니 곁을 떠나기가 쉬 내키지 않은데 어머니는 어찌 그리 담담한지…. 달은 이울어야 다시 차고 샘물은 빠져야 새 물이 고이듯, 모자간의 정도 빨리 비워야 도탑게 되는 줄 생각했을까.

결혼 전까지 어머니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내 이불 홑청과 베갯잇을 손수 빨았다. 자식의 체취와 당신의 손때와 마음 때가 묻은 이불 홑청이 얼마나 살가웠을까. 자식과의 끈끈한 연결고리가 이것임에 틀림없었으리라. 마당의 도정기로 손수 찧은 멥쌀을 건넬 때 곁들려 보낼 줄 알았다. 쌀자루 끝을 조여 틀듯 이별의 아픔을 가슴 안으로 틀어막고 어미 부엉이처럼 모질게 삭였을까. 미련과 흔적을 지워 내듯, 남은 물건을 마을 끝 논두렁에서 태울 때 하늘로 솟는 연기에 끈끈한 육친의 정을 지워 냈으리라.

상자 안에 공기라도 들어가면 큰일이라도 날 듯 테이프로 빈틈없이 밀봉한다. 나는 앞으로 여러 번 또 딸아이 짐을 쌀 것이다. 세월이 흘러 제 짝을 찾아 결혼을 하면 또 나는 짐을 쌀 것이다. 누군가의 짐을 싼다는 건 그 누군가를 가슴에서 떠나보내는 연습이란 걸 알게 되면서 당시 어머니의 심중을 조금은 헤아릴 것 같다. 어미 부엉이는 둥지를 틀 때부터 다 자란 새끼가 둥지로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입구를 풀뿌리와 나뭇가지로 좁게 만든다. 그때부터 이미 어미 부엉이는 이별 연습을 한다. 어쩌면 어머니도 내 어깨가 벌어지고 수염이 났을 때부터 당신의 품에서 떠나보내는 마음의 연습을 했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살과 피를 빌어 태어났지만 자식은 애초에 떠나는 존재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담담하게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저만치 하늘로 날아가는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지었을 어머니의 마음을 읽는다.

기껏해야 서울로 보낼 짐 하나 싸는 데도 이토록 온갖 궁상을 떠는 걸 보면, 나는 어미 부엉이에게도 못 미치는 애송이 아빠인 셈이다. 앞으로 더 자주 짐을 싸다 보면 지금의 이 헛헛한 마음도 길들여져 나중에는 무뎌질 것이다. 그래서 딸아이가 진정 내 품을 떠나갈 때 어머니처럼 또 부엉이처럼 겉으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짐을 쌀 수 있으리라.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집/김만년  (0) 2022.08.04
이삭꽃 / 허문정  (0) 2022.08.01
멸치/이윤경  (0) 2022.07.30
능소화 / 김애자  (0) 2022.07.29
장마 / 심선경  (0) 2022.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