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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를 스캔하다/최지안

에세이향기 2022. 9. 18. 09:02

선글라스를 스캔하다

최지안





안경이 아니다. ​
  안경의 사촌쯤 되는 모양새. 안경이 시력을 보정해주는 역할이라면 선글라스는 눈을 보호한다. 안경과 비슷하지만 쓰임새와 속성이 달라 호환과 대체가 불가능하다. 눈부시다고 안경을 쓸 수는 없는 일. 보이지 않는다고 선글라스를 쓰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
패션이다.
  안경은 쓰고 선글라스는 입는다. 캐주얼 차림도, 정장차림에도 잘 어울린다. 여름 해변이 아니어도, 햇빛이 찬란한 거리가 아니더라도 선글라스는 당당하다. 실내나 전철 어디에서도 자연스럽다. 모자처럼 신발처럼 패션의 일부다. 기능보다 개성이 우선인 시대.
세상으로부터의 차단.
  본래의 기능은 자외선 차단. 부가적 기능은 심리적 차단. 1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유리 막 하나는 1미터보다 더 두꺼운 마음의 거리를 느끼게 한다. 눈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상대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 눈을 보아야 비로소 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니까. 그렇기에 선글라스를 쓰고 상대를 본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 의지가 전혀 없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딴 짓 하기.
  정면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모른다. 선글라스 안에서 딴 곳을 바라볼지. 수업 시간에 꼭 ‘딴 짓’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책을 세워 놓고 엎드려 만화책을 보기도 했고 거울을 꺼내 놓고 보기도 했다. 들키면 반성문을 쓰거나 담임선생님께 불려가지만 들키지 않으면 거듭되는 놀이.
주목받고 싶을 때.
  ‘드러내기’는 선글라스의 또 다른 매력이다. 차단하고 감추는 기능도 있지만 동시에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는 용도가 다양한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즐겨 쓴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기능으로 자리매김했다.
내부 수리 중.
  얼굴의 유지, 보수, 재건 후에 햇빛 차단하는 기특한 물건이다. 얼굴 공사가 유행이다. 나이가 많아도 젊어 보이는 연예인들이 많다. 이들을 볼 때 드는 생각은 시간을 거스른 미모보다는 놀라운 의학의 발전이다. 의학은 병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팔자도 고친다. ‘다 뜯어 고친’ 얼굴로 인생 2막을 사는 사람도 있다. 단, 공사를 하기 전 약간의 고민은 필수다. 전체를 갈아엎든, 부분 리모델링을 하든 공사에는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니 투자대비 수익률을 반드시 따져 볼 것.
일탈.
  일상에서 한 발자국 걸어 나올 때 선글라스를 준비한다. 드라이브나 산책과 같은 잠깐의 외출에도, 여행을 할 때에도 꼭 챙긴다. 선글라스를 쓴다는 것은 일상을 깨뜨리는 행위다. 무엇을 깨뜨릴 때 쾌감이 따라온다. 오랜 망설임과 고민을 거듭하다 떠나게 되면 뒷일보다는 해방감이 앞선다. 선글라스를 끼고 이국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혹은 해안 도로를 드라이브할 때 일탈은 더욱 짜릿하다. 작은 도발을 위해 선글라스 하나쯤은 필수품.
권력.
  ‘ray ban'은 알아도 ’라이방‘은 모른다. 라이방을 아는가 모르는가는 보릿고개를 아는 세대와 모르는 세대로 나누는 것처럼 확실한 기준점이다. 라이방을 보면 뭔지 모르게 주눅이 드는 세대가 있었다. 라이방과 군복.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아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단어. 빛나는 검은 색 유리알은 상대방의 가슴까지도 뚫을 수 있을 만큼 눈부셨다. 이 선글라스 앞에서는 누구도 대들지 못했다는데 군복과 매치된 선글라스만 봐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증후군을 가진 세대도 존재했다는 후문. 유사한 것으로는 방망이와 군화만 봐도 숨이 막히는 증후군이 있었다.
상전.
  선글라스가 나를 썼다. 나를 쓰고 앉아 사물을 보고 사람을 재본다. 어둡게 보거나 밝고 환하게 보거나 내키는 대로 사고하고 맘대로 단정한다. 나는 때때로 선글라스에게 휘둘린다. 본질 너머를 보지 못하고 허방을 짚을 때도 있다. 어떤 선글라스는 안경보다 더 비싸다고 알아달라고 하거나 자동차만큼 거만하기도 하고 가방만큼 사치스럽게 굴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지 못한다. 오히려 흠집이 생길까 헝겊으로 감싸주고 먼지가 쌓일까 닦아주고 편하게 쉬라고 화려한 케이스 안에 고이 모신다. 상전이다. 오늘도 선글라스는 내 콧대를 깔고 앉아 세상을 본다. 세상이 코 아래다.
왕년.
  인생의 화려한 시기는 선글라스를 썼던 시간이다.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관계망이 단순해지기 시작한다. 사회생활이 하나 둘 끊기면서 행동반경이 줄어드는 노년은 외출할 일도 드물다. 젊었을 때는 선글라스를 쓰고 여러 곳으로 다니지만 노년에는 선글라스를 쓸 일보다 돋보기를 쓸 일이 더 늘어난다.
  아버지의 왕년은 빛바랜 사진 속에 존재한다. 젊은 아버지는 선글라스를 쓰고 찍은 사진이 유난히 많다. 사진 속 젊은이는 영화배우 같다. 영원히 늙지 않는 배우. 사진은 변색되어도 아버지는 늙지 않는다. 다만 늙은 아버지는 이제 선글라스를 쓰지 않을 뿐이다. 먼 훗날, 나의 아이도 선글라스를 쓴 사진을 보며 엄마도 젊었을 때가 있었던가를 더듬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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