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 김귀선
조심스럽게 옷을 벗긴다. 두툼한 스웨터와 꽃무늬 고무 치마, 양말을 차례로 걷어낸다. 앞트임 없는 윗옷은 뒤집듯 위로 올리고 돈주머니가 매달린 분홍색 속바지는 아래로 끌어내린다. 이어 겹쳐 입은 두 개의 내의를 분리하려다 한꺼번에 벗겨낸다. 마지막으로 펑퍼짐한 속옷을 방바닥에 내려놓자 찰기 빠지고 늘어진 나신만 남는다. 저수지의 물이 줄고 나서야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듯이 물기 마른 구순 노인의 몸에서 삶의 근원을 본다.
욕조 물에 때가 불릴 동안 얼굴부터 씻긴다. 이마의 주름이 고른 밭고랑 같다. 묵정밭에 듬성듬성 거름 무더기를 널어놓은 듯 버짐이 얼룩얼룩하다. 한 여자의 세월이 무서리 맞은 수숫대로 고스러져 있다. 저 얼룩도 때처럼 씻어 없앨 수 있다면……
얼굴을 문지를수록 어머니는 아이처럼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점점 뒤로 젖힌다. 어릴 적 내가 어머니께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는 그만하라며 나를 보챈다. '잠깐만' 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문질러 보지만, 어두컴컴한 피부는 어디로 갔을까.
목으로 내려온다. 씻기기 어려운 부분이다. 늘어진 피부는 때 미는 사람에게 힘이 빠지게 한다. 손이 가는 방향대로 피부도 같이 밀려나가서 마찰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손으로 피부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그 부위만 밀고 또 옮기면서 그러기를 반복해야 한다. 어머니의 목이 특별히 굵었던 것도 아닌데 피부는 겹겹이 골 지어 늘어져 있다. 세월은 가끔 이야기를 남기는 것 같다. 어머니의 목에 멋진 금목걸이 한 번 걸어드리지 못한 내가 지금 무엇을 탓하고 있는가.
몸을 좀 더 바로 세워 가슴을 씻긴다. 살이 없으니 쇄골 주위는 움푹하게 들어가고 새가슴은 더 불룩하다. 바람 빠진 가죽 주머니 같은 젖무덤은 펑퍼짐하게 늘어졌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는 젖꼭지가 애처롭다. 두툼한 젖무덤의 단 젖으로 칭얼대는 자식들을 잠재웠을 그 파란 젊은 날들은 이제 마른 세월로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 내 손에 닿는 울퉁불퉁한 갈비뼈, 그래도 골고루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양이 너무나도 고맙다.
마른 연못 같은 움푹한 배를 씻기고 다시 위로 올라온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팔을 밀 차례다. 손마디의 굵기가 선명하게 내 손에 전해온다.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현장 같은 손이다. 힘든 농사일도 마술처럼 해내시던 어머니의 손에는 실반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꺼슬한 손바닥으로 내 등을 쓱쓱 긁어주고 가끔은 매를 들어 혼내시면서 현실의 물살에 휩쓸리지 않도록 든든하게 내손을 잡아주시던 지난날을 생각한다. 자식들 배 굶기지 않으려고 평생 땅과 씨름한 팔은 밤마다 시리고 저리다 하셨다. 뜨뜻한 물에 담근 오늘만이라도 아프지 않으셨으면.
몸을 돌려 어머니와 마주한다. 세월 더디 가는 곳이 등일까. 주름살이 가슴보다 덜하다. 활처럼 굽은 허리는 이제 더는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곧게 세워 받혀 주던 상체는 고사하고 자신의 무게도 감당 못해 구부러졌다. 이제는 지팡이의 고마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굽은 허리, 어머니의 등이 굽어지도록 주렁주렁 매달렸을 우리 육남매…. 멀리 도망가 버리고 싶은 힘든 날에도 자식들에게 등을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시다. 그 고마운 등을 위해 이제 와서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다만 정성을 다해 때를 밀어 드릴뿐.
허벅지를 씻긴다. 요즘 부쩍 아프시다는 오른쪽 허벅지를 살펴본다. 겉으로는 아무 표시도 없다. 내 손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힘없이 밀려가는 피부, 그럴 때마다 비탈 밭 고른 이랑으로 주름이 인다. 박꽃같이 희고 포동포동하던 모습 대신 시든 피부에서는 지친 삶이 흐느적거린다. 그것은 출렁이는 가을 들판을 온몸으로 지켜준 뒤 찬 서리 맞으며 외로이 서 있는 허수아비의 모습이다. 자꾸만 마른 강가의 서걱거리는 물 갈대 소리가 들린다.
장딴지를 지나 몸의 가장 아랫부분, 발을 씻긴다. 어머니는 새끼발가락과 약지 발가락의 길이가 같다. "엄마 발이 병신이네."라는 나의 농에 어머니가 빙긋이 웃는다. 꺼슬꺼슬한 발바닥도 뜨뜻한 물속이 좋았던지 허옇게 웃는다. 등에 업은 자식이 축 처지면 한 손으로 받쳐가며 하루에도 몇 십 리를 걸었을 발바닥, 마음이 사는 곳이라면 가까이 함께 하였을 평생의 동반자이다. 예까지 한 발 한 발 디뎌온 그 거리가 얼마나 될까. 구순의 나이인 지금도 아직 밟아야 할 거리가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욕조 물을 반쯤 뺀다. 수건을 두툼하게 말아 어머니의 몸 아래쪽에 고이고 비스듬히 바로 눕힌다. 내 손이 닿자 어머니는 움찔한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자꾸만 몸을 오그리시는 어머니. 조물주는 고맙게도 감정만큼은 늙지 않도록 만드셨나 보다. 빽빽했을 검은 숲은 어머니의 시력처럼 그저 희멀건하다. 세상이 열리던 곳, 나도 오십여 년 전 힘겹게 통과했던 문이다. 세상의 그 어느 문보다 성스러운 곳이다. 문득 먼 태고가 생각난 것일까. 쓰러진 고향집 사립문을 대하듯 진한 향수를 느낀다.
머리를 감긴다. 아기를 씻기듯 나는 왼팔로 어머니의 목을 감싸고 오른손으로 샴푸를 한다. 머리 밑이 훤히 보이는 엉성한 머리카락, 샴푸 묻은 내 손이 어머니의 머리에서 겉돌아간다. 흘러내리듯 쉽게 빠지는 머리카락, 벌써 몇 십 가닥이 등과 물속에 떨어져 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하시던 말씀을 어머니는 오늘도 잊지 않으신다. "내 머리숱이 참말로 많았는데…."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머리에 인 어머니, 그 많은 무게를 머리 밑인들 배겨낼 수 있었을까. 쓰다듬듯 은빛의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놓고 샤워기로 부드럽게 물을 내린다.
마른 수건으로 어머니의 머리를 닦아드리며 목욕을 마친다. 주름투성이인 어머니의 알몸, 구부러지지 않으면 늘어지고, 또 시리지 않으면 저리다 하시는, 어느 곳 하나 고장 나지 않은 곳이 없는 몸이다. 볼품없는 어머니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준비해 두었던 옷을 입혀드린다. 머리도 단정하게 빗질한다. 따뜻한 옥장판에 누우시라 권하니 금방 잠이 드신다.
약간 벌어진 입에서 나는 숨소리가 깊다. 끙끙 앓는 노쇠한 소리도 이때만은 잠시 쉰다. 편안한 모습이다. 그 옛날 갓난아기인 나를 씻기신 후 따뜻한 아랫목에 뉘어 놓고 알뜰살뜰 들여다봤을 어머니. 지금은 내가 어머니의 몸을 그렇게 들여다본다. 그냥 어머니가 아닌 한 여성의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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