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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재봉틀 / 김영수

에세이향기 2022. 9. 4. 19:57

엄마와 재봉틀 / 김영수

 

여든의 문턱을 넘어,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접을 때마다 엄마는 서글퍼했다. 아흔 고개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지팡이를 짚고도 보행이 어려워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아무데나 걸터앉곤 했다. 주민 센터에 다니며 배우던 장구도 영어도 노래도 그만둔 지 오래였어도, 바느질만큼은 포기하기 어려운가 보았다. 재봉이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어렸을 때 딸 넷의 옷은 모두 엄마의 손끝에서 나왔다. 집안에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멈출 날 없었으니, 재봉틀은 엄마와 평생을 함께하며 속내를 털어놓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아니었을까. 내가 멀리서 걱정을 할 때면, 바느질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으니 아직은 괜찮다던 엄마였다. 재봉은 혼자 집에서도 할 수 있고 두뇌에도 좋으니 끝까지 할 수 있을 거라며 격려하던 나를, 엄마는 무턱대고 믿고 싶은 눈치였다.

문제는 나이가 드니 자꾸 잊어버린다는 거였다. 밑실이 자주 엉켜 겨우겨우 풀어놓으면 무슨 영문이지 바늘이 멈추고 실이 끊기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눈 감고도 하던 일인데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주눅 든 목소리로 기사를 불렀다. 와서 가르쳐주는 데 3분, 다시 해보라고 연습시키고 출장비 3만 원을 받아가길 여러 차례. 엄마는 그게 아깝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을 터였다. 기사를 부르는 게 그날따라 왜 그렇게 싫었는지 엄마는 재봉틀을 들고 수리점까지 가겠다고, 거기서 배워오겠노라고 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미 어둠이 내린 거리는 을씨년스러워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바깥은 영하 10도라는데 얼마나 매울지. 기사를 부르기만 하면 될 일을, 거기까지 가는 택시요금이 더 비싸다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 분별력을 잃은 나도 엄마도 오기가 났고, 엄마를 이겨먹으려는 딸이 괘씸했는지 일부러 더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았다. 콜택시를 불렀다. 밥공기 하나도 발발 떨며 들던 엄마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재봉틀을 통째로 들고 나섰다. 다 필요 없으니 혼자 다녀오겠다는 엄마 뒤를 따라갔다. 바람까지 불어 몸을 파고드는 추위는 지독했고 그럴수록 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어렵사리 찾아간 곳은 남방도 들어오지 않는 가건물 창고였다. 손바닥만 한 전기난로 하나로 얼음장 같은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하나뿐인 콘센트에 엄마가 가져간 재봉틀 코드를 꽂으니 그나마 켜졌던 난로도 꺼졌다. 설명을 들으며 계속해보는데도 엄마는 자꾸 실수를 했다. 재봉에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설명은 쉬웠고 숱하게 반복됐다. 엄마는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이기도 했지만 추위에 손이 곱아 실도 잘 끼우지 못했다. 나도 발이 얼어 연신 발가락을 꼼지락거려야 할 지경인데 엄마는 어떨는지.

엄마는 생의 끝자락에서 재봉틀을 끌어안고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엄마 나이에 이르러 내 삶의 의미라고 여기던 글조차 포기하게 되면 심정이 어떨까. 엄마의 일은 멀지 않은 내 미래의 일이고, 그게 나에게 글쓰기라면 엄마에게는 재봉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때, 울 듯하면서도 노기 띤 목소리가 얼어붙은 공기를 깨고 날아왔다. 엄마는, 그만 됐으니 설명을 종이에 적어달라고 했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등 뒤에서 무섭게 노려보고 있을 딸이 보이는 것 같아, 긴장되고 손이 떨려 못하겠다는 거였다. 나는 그만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왕복 택시비 3만 원, 수업료 1만 원. 편안하게 집에서 배워도 되는데 추운 곳까지 찾아온 걸 따질 줄 알았는지 엄마가 선수를 쳤다. 목소리에 파란 불꽃이 일었다.

“이론적으로는 네 말이 맞을지 몰라도 엄마가 그 정도로 예민해 있을 때는 일단 물러서라. 너 좋은 점이 그거였는데 오늘따라 대체 왜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 예서 한 마디라도 더 하려거든 당장에 너 사는 캐나다로 가거라.”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어쩌자고 내가 그랬을까.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지 모르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편안하게 해드리자고 다짐하고 왔건마는. 판단력도 기억력도 이해력도 모두가 예전 같지 않은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더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안전하게 돌본다는 명목으로, 엄마 뜻대로 하지 못하게 말리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는 걸 얼마 전에 들었다. 이제 와 후회하면 뭐 하나, 흐릿해져 가는 엄마의 기억에서 나는 그날의 일을 지우고만 싶었다.

“그날, 재봉틀 일은……, 엄마.”

나는 엄마를 불러만 놓고 말을 잇지 못했다. 듣고 있던 전화 목소리가 조용히 흔들렸다.

“넌 다 늙어서도 눈물이 많구나. 내가 그깟 일로 고깝고 서운해하며 살았으면, 이 나이 되도록 온전한 정신으로 살았겠냐. 가한 소리 그만하고, 거긴 밤일 텐데 어서 자거라.”

때로는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는 것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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