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바가지 쌀바가지 / 강천 "흥보가 지붕으로 올라가서 박을 톡톡 튕겨 본 즉, 팔구월 찬 이슬에 박이 꽉꽉 여물었구나. 박을 따다 놓고 흥보 내외 자식들 데리고 톱을 걸고 박을 타는듸. 시르렁 실근, 톱질이로구나, 에이 여루 당그어 주소. 이 박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 한 통만 나오너라. 평생을 밥이 포한이로구나." 흥부가 중에서 박 타는 대목이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초가집의 지붕에는 해마다 박 덩굴이 무성했다. 어둠이 찾아오고 고요한 달빛이 내리는 날, 희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박꽃은 내 어린 눈에도 신비롭게만 느껴졌다. 찬바람에 이파리가 시름시름 기운을 잃어갈 때쯤이면 똬리를 베개 삼아 편안하게 배를 내민 박 덩이가 탐스럽게 영글어 간다. 썩은 이엉이 주저 않을까 무서운 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