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담 / 권혜민 쌍계사 경내를 거닐다가 나한전에서 선방까지 이어지는 담장 앞에 섰다. 서가에 책을 비스듬히 꽂아놓은 것 같은 담장의 기와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가운데는 깨진 백자찻잔 굽으로 장식하고 깨진 기와가 모여서 한 송이 꽃으로 피었다. 하잘것없이 깨어진 그릇이나 기와도 손잡고 어울리니 멋스러운 꽃이 된다. 찢어지고 부서져 버림받은 것들, 아프고 외로운 것들이 어울려 피워낸 꽃을 보니 가슴이 찡하다. 이 꽃은 세월이 가고 바람이 불어도 시들거나 지지도 않는다. 천천히 끼고 돌면서 내 삶을 되돌아본다. 어제 저녁 고등학교에 다니는 작은 아이 문제로 남편과 심하게 다투었다. 막내라고 오냐오냐했더니 버릇이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러 번 아이에게 주의를 시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