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내력 / 서은영 그늘에 들어선다. 산책로를 덮고 펼쳐진 산그늘을 걷는다. 별스러울 것도 없지만 산이 생겨난 이래로 만들어진 깊이이니 태곳적 그늘이라 할 만하다. 등 뒤에서 언제나 나를 따르던 평생의 그림자도 어느새 산그늘이 품은 태고의 것이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얼마나 더 걸어 들어가면 나도 저 거대한 원시의 깊이에 가닿을 수 있을까. 내게 흘러들어 나를 이룬 것 가운데 태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산기슭을 따라 둘레길이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 그늘을 품고 숲 사이로 길게 이어진다. 지난 계절도 그 이전의 세월도 쌓였는지 숲길이 짙다. 햇볕을 땅속까지 끌고 들어간 나무들이 빛을 삼킨 뒤 그 나머지를 다시 땅 위로 밀어낸 자국, 날마다 달아나는 햇살과 움켜쥐려 안달인 어둠의 중립지대, 하늘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