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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손택수의 ‘방심’/ 시인 문태준

에세이향기 2024. 2. 4. 11:09
손택수의 ‘방심’/ 시인 문태준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 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 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 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손택수, 「방심」 전문


‘마음을 놓다’라는 말 참 오랜만이다. 마음을 풀어 놓아버린 일 얼마나 오래 되었나. 마음 졸이며 염려하고 살아왔을 뿐. 시인은 대청마루에 큰 대 자로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최대한 마음과 몸을 느슨하게 하고서. 바다처럼 편편하고 넓게 퍼져서. 그런데 스윽, 칼날이 지나가듯 제비가 공중을 한 층 횡으로 서늘하게 자르면서 지나간 모양이다. 손가락을 퉁기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기습처럼.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 민첩한 한 줄기 바람으로. 집과 나의 중심부를 뚫고 지나갔으니 급소(명자리)를 맞은 듯 어이없고 어리둥절해서 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은 얼마나 시원한 것인가. 체증이 가신 듯했을 것이다. 마음을 꼭 붙들어 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마음을 사방으로 허술하게 경계 없이 풀어 놓는 것으로써 우리는 마음의 열림을 얻기도 한다. 그것이 무방비의 미덕이다. 좀 게으르게 혹은 별 준비 없이 멍청하게 있다가 한번쯤 당해 보기도 해 보라. 그런 당함에는 오히려 소득이 있다. 마음의 앞뒤 문을 다 열어 놓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을 볼 수 있었겠는가. 마음을 조급하게 각박하게 쓰느니 차라리 이처럼 마음에 장애를 아예 만들지 않음이 오히려 ‘심심(深心)’이요, ‘정(定)’에 가깝다. 


손택수 시인은 긍정심이 아주 많은 시인이다. 다른 존재들의 ‘빛나는 통증’을 그의 시는 받아 안는다. 그의 시는 그가 어렸을 때 자랐다는 전남 담양 강쟁리 마을을 배경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곳 마을 사람들의 천문(天文)적인 상상력은 그의 시에 들어와 크게 빛을 발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서정을 만들어 낸다. “별이 달을 뽀짝 따라가는 걸 보면은 내일 눈이 올랑갑다”(「가새각시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와, 매달 스무여드렛날은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흙들이 마구 부풀어 오르는 날”(「달과 토성의 파종법」)이자 “땅심이 제일 좋은 날”이라며 밭에 씨를 뿌리러 가던 할머니의 상통천문(上通天文)이 자주 등장한다. 
이시영 시인은 그를 “송곳니로 삶을 꽉 물고 놓지 않는, ‘고향의 기억’을 잊지 않는 오랜만의 생동하는 민중 서사적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역린(逆鱗)’을 생각한다. “물고기 비늘 중엔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씩은 꼭 있다고”(「거꾸로 박힌 비늘 하나」) 하는데, “유영의 반대쪽을 향하여 날을 세우는 비늘”인 역린을 생각한다. 그의 시에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생을 펄떡이게 하는, ‘뽈끈 들어 올려 주는’ 힘이 있다. 시에 있어서 가장 든든한 원군(援軍)은 역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 준다. <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문태준, 민음사, 2018.)’에서 옮겨 적음. (2023. 3.18.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