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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시인의 직업은 발굴/신형철

에세이향기 2024. 2. 4. 20:27

시인의 직업은 발굴

 
 

 

언젠가 김경주의 첫 번째 시집에 대해 쓰면서 나는 "시인 김경주는 전천후다"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더랬다. 참으로 여러 얼굴을 갖고 있는 시인이어서 종잡을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자기가 누구인지 아직 잘 모르는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좌충우돌하는 시집이었다. 두 번째 시집 <기담>(문학과지성사 펴냄)을 읽어보니 점입가경이다. 이제는 더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마음껏 놀고 있구나. 시인은 그래도 된다. 시장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놀 수 있는 세계가 시 말고 또 어디 있겠나. 이 시인의 여러 얼굴을 더듬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한편으로는 이제 두 번째 시집쯤 되고 보니 이 사내의 얼굴 중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한결 또렷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 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주저흔'(躊躇痕)에서)

이를테면 이런 시에서 김경주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발견했다. 김경주는 '발굴'할 때 가장 아름다워진다. 어디서 무엇을? 시간의 지층에서 소리를. 수백 년 전 생성된 지층이 발견됐다 치자. 다른 사람들이 화석의 연대기를 따지고 들 때 그는 화석에 묻혀 있을 울음소리를 들으려 한다. 안 그래도 첫 시집에서 그는 "멸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종의 울음소리가 사라져간다는 것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 5')라고 썼고, 이번 시집 뒤표지에는 또 "존재하는 것들은 외피뿐 아니라 울음소리가 모두 다르다"고도 적었다. 그에게 생명의 지문은 울음이다. 그러니 화석을 보면 울음소리가 들릴 수밖에, 그 상처의 화석이 바람이 자살을 시도하다 남긴 주저흔으로 보일 수밖에, 그러다가 자기가 울게 될 수밖에, 마침내 같은 울음소리를 나눠가진 혈육을 떠올릴 수밖에. 모든 몸 입은 것들의 내부를 떠돌고 있는 울음소리 같은 파문을 잡아낼 때 이 시인은 발군이다.

"저녁에 무릎, 하고/ 부르면 좋아진다/ 당신의 무릎, 나무의 무릎, 시간의 무릎,/ 무릎은 몸의 파문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살을 맴도는 자리 같은 것이어서/ 저녁에 무릎을 내려놓으면/ 천근의 희미한 소용돌이가 몸을 돌고 돌아온다// 누군가 내 무릎 위에 잠시 누워 있다가/ 해골이 된 한 마리 소를 끌어안고 잠든 적도 있다/ 누군가의 무릎 한쪽을 잊기 위해서도/ 나는 저녁의 모든 무릎을 향해 눈먼 뼈처럼 바짝 엎드려 있어야 했다"('무릎의 문양'에서)

 

왜 무릎이겠는가. 무릎은 "몸의 파문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살을 맴도는 자리"라고 그는 적었다. 그래, 무릎은 살아 있는 우리 몸에서 이미 생겨나기 시작한 화석이다. 무릎-화석을 들여다보며 이 시인은 또 "천근의 희미한 소용돌이가 몸을 돌고 돌아"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내가 한때 베고 누웠던 무릎을, 한때 내 무릎을 베고 누웠던 사람을 생각한다.

이 시 덕분에 다른 무릎들을 떠올렸다. 원로 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한국 근대문학의 이해>(1973) 서문에 쓴 문장이다. "출발이란 무릎이다. 무릎의 메타포가 출발인 것이다. K군, 군은 상처 없는 무릎을 보았는가. 우리가 미지를 향할 때, 우리가 보다 멀리 손을 뻗치려 할 때, 그리고 우리가 일어서려 할 때,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무릎이었다." 소설가 윤성희의 아름다운 단편 '무릎'(<감기>)에도 잊지 못할 무릎이 나온다. 어렸을 적 '나'를 교통사고에서 구하고 대신 죽은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죽을 당시 남자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서른이 다 된 '나'가 이제 10대 후반의 청년이 되었을 그 아이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의 따뜻한 화해는 무릎으로 이루어진다. "청년이 오른손을 그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힘내세요." "그는 청년의 오른쪽 무릎에 자신의 왼손을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손끝을 둥그렇게 말아 무릎을 감쌌다. 힘내자."

우리는 모두 무릎에 피를 흘리면서 세상의 출발선을 떠나고, 타인의 무릎에 손을 올려놓고 회한의 세월을 다스린다. 그러니 화석에서 죽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듣는 재주를 가진 시인 김경주가 무릎은 상처의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덧붙일 만하지 않은가. 언젠가 이 자리에서 나는 시인의 직업은 '문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덧붙이자. 시인의 직업은 '발굴'이다. 오늘 저녁에는 당신을 발굴해보시길. 당신의 몸속에 매장되어 있는 울음소리를, 무릎에 새겨진 상처의 문양을 들여다보시길. 어쩌면 그것들이 죄다 시일지도 모르니까.

신형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