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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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바깥양반/김영득

에세이향기 2024. 3. 31. 11:40

바깥양반

 

                                                                                                                               김 영 득

 

“회사 다녀올게요.”

남편이 마스크를 쓰고 현관에 서서 시어머니께 인사를 했다.

소파에 앉아 계시던 시어머니께서는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네, 잘 다녀오세요.” 라고 공손하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셨다.

그 장면이 너무 우스워서 내가 깔깔 웃자 남편도 히죽 웃는다. 시어머니도 큰소리로 따라 웃으셨다. 강아지는 영문도 모르고 신이 나서 남편에게 뛰어 올랐다. 시어머니 때문에 하루가 또 재밌게 시작되었다.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시어머니께서 주간보호센터에 가셔야할 시간이 되었다.

“어머님, 학교가실 준비 하세요.” 재촉하고 나서 입고 가실 옷으로 옅은 분홍색 스웨터를 골라드렸다. 어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느낌이었다.

화장을 하고 방을 나오시는 시어머니께서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옷매무새나 화장이 괜찮은지를 물으셨다.

“어머님, 아주 이뻐요. 학교에서 어머님이 제일 고와요”

엄지를 치켜세우며 칭찬을 하자 부끄러워하면서 활짝 웃으셨다. 아침 내내 바쁘게 뛰어다니던 내 머리는 까치집이었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게 된 지 9개월이 되었다.

올해 89세이신 시어머니께서는 7년 전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시골에서 혼자 살고 계셨다. 자식들이 걱정을 하면 모처럼 혼자 지내니 외롭기는커녕 오히려 즐겁다며 큰소리를 치셨다. 노인정에 가면 친구도 많고 매일 체육관에 가서 운동도 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들집에 가서 같이 살자고 하면 자식들 눈치 보며 지내기 싫고 고향을 떠나서는 더더욱 살 수가 없다고 매번 손사래를 치셨다.

치매약을 복용 중이신 어머님을 혼자 계시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경증이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핑계를 대면서 나는 어머님 모시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때가 되면모셔야겠다고 미리부터 맘을 단단히 먹었지만 쉽게 실행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노인정도 체육관도 모두 폐쇄되었다. 어머님 모시기를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아들네로 가자고 하니 이번에는 어머님께서 두말없이 선뜻 따라 나섰다.

 

어머님을 모시고 온 날 밤은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자꾸 걱정이 되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불안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맏며느리로서 시어머님을 모시는 일은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이며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마음을 여러 번 다독였다.

 

다음날 테레사 수녀의 사진을 싱크대 위에 붙였다. 오드리 햅번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도 그 옆에 나란히 붙였다. 싱크대 앞에 설 때마다 테레사 수녀의 고요하고 진심어린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기로 했다. 오드리 햅번을 따라 입꼬리를 힘껏 끌어 올리니 거룩함이 입꼬리에 걸린 듯 했다. 어머님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일부러 크게 미소 지었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자네 바깥양반이 당최 어려워”

소파에 앉을 때도 남편과는 멀리 떨어져 앉으시고 잠깐 내가 시장에라도 다녀올 때면 남편과 둘이서만 있는 게 불편하여 방에 들어가 누우셨다. 바깥양반이 아니고 큰아드님이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혼란스러워 하셨다. 생각해보니 어느 날부터인지 나에게도 ‘자네’라고 불렀고 하대하지 않으셨다. 나는 존중받는 느낌이었고 그 호칭이 싫지 않았다. 나도 나중에 며느리가 나이들면 자네라고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알고 보니 어머님께서는 아들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하신 것이었다. 며느리에게 전화를 하셨는데 옆에 앉아있던 내가 받자 ‘우리 큰 며느리가 핸드폰을 자네에게 맡겼느냐’고 묻기도 하셨다.

 

그 날부터 남편의 호칭은 ‘바깥양반’이 되었다. 나도 장난스레 ‘바깥양반 식사하세요.“ ”바깥양반은 어떻게 생각 해?“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남편도 어머님도 소리 내어 깔깔 웃었다.

바깥양반은 이제 실내에서 속옷차림으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바깥양반이 속옷만 입고 왔다 갔다하는 건 어머님께 실례라고 하더니 결혼 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꿨다. 바깥양반이 어머님 밥숟갈 위에 고기 한 점을 올려 드리면 어색해하면서 살짝 얼굴을 붉히기도 하셨다. 바깥양반은 그런 어머님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바깥양반은 거실 바닥에서 구겨진 종이를 주워 펼치더니 난데없이 노래를 불렀다. 어머님께서 떨어뜨린 노래 가사가 적힌 종이였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 어머니, 학교에서 오늘 이 노래 배우셨어요?”

바깥양반이 종이를 건네며 어머님께 노래를 신청했다. 나도 옆에서 부추기며 손뼉을 치자 어머님께서는 노래를 2절까지 부르셨다. 음정과 박자가 틀리고 목소리도 떨리셨다. 그날 나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유쾌한 저녁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테레사 수녀님과 오드리 햅번 사진이 없어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다. 사진은 과감히 떼어냈다. 어머님께서 보호센터에서 돌아와 소파에 앉자마자 주섬주섬 호주머니를 뒤져 간식으로 받은 떡이나 건빵, 바나나 등을 먹지 않고 가지고 와 꺼내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안아드리고 싶어진다. 이제 시어머니는 더 이상 서슬 퍼렇던 호랑이가 아니고 다정다감했던 내 친정 할머니를 느끼게 한다. 할머니도 잔칫집에 다녀오면 맛있는 음식을 싸오시곤 했었다.

 

어머님을 끝까지 잘 모시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 나오려는지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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