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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물고기의 독백/김영수

에세이향기 2024. 4. 3. 15:32

어느 물고기의 독백

(김영수)

 

 

나는 물고기였다. 어부의 그물에 걸려 횟집으로 팔려와 도마에 눕는 순간 나의 이름은 물고기에서 생선회로 바뀌었다. 머리부터 잘린 후 몸에 칼이 들어오는 게 물고기가 횟감으로 되는 평범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나는 두꺼운 나무 도마에 몸을 눕히자마자 눈동자 한번 돌릴 겨를도 없이 정신을 잃었다. 의식을 회복했을 때 내 몸의 껍질은 이미 벗겨져 있었고, 하얗게 드러난 알몸이 횟감으로 저며지고 있었다.

더는 생명이 없는 하얀 살덩이가 된 내 몸을 바라보았다. 한때 나는 저 살과 뼈로 대양을 가르며 부러움 없이 헤엄쳤지. 때로 수면 위 공중으로 뛰어올라 세상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심연의 바닥에 닿을 만큼 깊이 은신하기도 했다. 터질 듯 부레를 부풀려 보란 듯이 우쭐거린 적도 있고, 한없이 작아져 위축되기도 했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다른 물고기보다 더 빨리 더 멀리 헤엄쳐 먼 바다까지 나아가 터를 잡고 지내는 동안에는, 뭍에서 가까운 바다를 벗어나지 못하는 고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어렴풋이 사람들 말소리가 들렸다. 아직 살아있어. 살 속 깊이 파고들던 벼린 칼날의 섬뜩함이 나의 살점을 한 점 한 점 도려내는 장면을 눈 뜬 채 지켜보던 시간. 눈을 감을 수도 깜빡거릴 수도 없는 물고기의 숙명에 나는 저항할 도리가 없었다. 육신을 잃은 빈 몸으로도 정신을 오롯이 지킬 수 있을지 겁이 나면서도, 정신만 차리면 괜찮다고 들은 기억이 나며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한때 배고픈 자의 내일이 되기를 꿈꾸기도 했고, 누군가의 생명을 부르는 힘이 되리라며 삶의 의미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내 머리가 잘리지 않고 몸통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게, 내 삶의 끝에서 마주친 현실이었다.

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말간 살점이 등뼈 위로 나란히 배열되었다. 나는 그게 나의 몸이라는 것도 잠시 잊고 바라보았다. 내 몸은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무 그릇 위에 올라 말쑥한 정장 차림의 손님들 앞에 놓이자 정신이 가물거렸다. 나는 내 몸이 다 사라질 때까지 머리가 살아있어야 하는 물고기였다, 오로지 인간의 식욕을 위하여.

누군가 차가운 물을 내 머리에 끼얹는 동시에 불이 확, 붙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진저리를 쳤다. 그들이 마시던 술이라는 액체였다. 저 차가운 것을 마시면 몸은 불같이 뜨거워지고 정신이 휘청거린다는, 그래서 시간을 잊고 세상을 잊는다는 마법의 물. 나는 왜 저들처럼 잊을 수 없는 걸까. 차가운 액체가 머리에 쏟아지자 오히려 정신이 깨어나며 잃어버린 시간이 생각났고 잠시 잊고 있던 낯익은 과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치어 시절, 엄마 곁에서 헤엄칠 때 세상은 온통 신기한 놀이터였고 모든 게 재미있는 놀이였다. 하지만 엄마 곁을 떠난 후, 큰 물고기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노는 법을 잊어야 했다. 그때부터 삶은 의무였고 세상은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였다. 놀이를 잃은 삶은 맵고도 짰다. 거친 세상을 경험하며 어른이 되었고 어느 날 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알을 낳으려는 산통으로 몸부림치던 시간도 견디다 보면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았고, 부화하여 새끼가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사랑하는 법과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다 자란 새끼들을 떠나보내고 맥없이 지내다가 그물에 걸리기는 했어도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추억이, 지나간 내 삶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추억하는 사이에 내 살점들은 하나씩 손님들 입으로 들어갔고, 젓가락이 지나간 자리마다 듬성듬성 빈 자국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비어 가는 내 몸을 지켜보며 허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술을 끼얹으면 머리를 부르르 떠는 것을 보고 싱싱하다며 키득거리는, 저들의 냉소적인 웃음을 참아내는 것으로 허무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목이 말랐다. 고향의 물 한 방울만 있어도 생의 마지막이 이토록 외롭지는 않으리. 나는 목이 마르고 또 말랐다. 갈증이 외로움을 불러오고 외로움은 갈증을 불렀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탐하는 몸을 부질없이 뒤척여보며, 영롱한 정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비록 몸은 허물어졌어도 의식이 살아있으니 이대로 떠나도 좋을 만한 삶이었다고 위로할 수는 없는 걸까. 지금 내 앞에서 먹고 마시며 흥청거리는 저들의 마지막 순간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 육신은 멀쩡해도 정신이 흐려지거나, 정신은 살아있어도 병들어 망가진 몸으로 죽음을 맞을 터. 생명 가진 것들의 숙명이 다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내가 죽음 앞에서 이토록 목말라하며 외로움을 느끼듯 인간 삶의 끝자락도 결국 외로움이 아닐까.

  식사가 끝나가도록 그녀는 생선회에 젓가락 한번 대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자세를 곧추세워 흐트러짐 없이 앉아있어도 몸 안에 담긴 그녀의 정신은 연신 휘청거렸다. 몸통을 잃고도 정신이 살아있는 생선회를 보며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생각한 것일까. 육체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고 살아온 그녀의 젊지 않은 영혼이 나만큼이나 혼란스러울 수 있으리. 내면을 가꾸다 보면 겉으로도 풍겨나는 법, 그러나 겉을 잃고 속만 남은 삶도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한창 달아오른 불그레한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밖에는 어둠을 재촉하는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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