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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겨울, 눈사람/신미나

에세이향기 2024. 5. 3. 02:52

 

겨울, 눈사람



신미나



​​몇번인가 그 눈빛을 훔친 적 있었네
촛농처럼 흘러내린 얼굴, 코가 없는 얼굴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이내 눈길을 거뒀지만
나는 보았네 촛불처럼 흔들리는 눈동자
소문은 악취처럼 쉽게 뭉쳤다 흩어지곤 했지만
오늘은 벽에 귀를 대고 그녀가 우는 소릴 듣네
그 얼굴을 똑바로 보는 일이란
허기와 마주 앉아 다 식은 저녁을 말아 먹듯
서둘러 묵묵해야 하는 일
사방을 좁혀오는 빈방의 어둠속에서
반짝 물기를 감추는 그릇을 못 본 체하는 일
가늘게 새는 물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네
그녀가 문 앞에 내놓은 밥그릇
핥고 가는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조금씩만 그녀를 엿보고 가네
열린 문틈 사이로 그녀
천천히 녹고 있었네
방바닥이 온통 물집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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