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평론 33

시적 사유가 지향하는 좌표

시적 사유가 지향하는 좌표 박철영(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을 생각한다, 시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하루 세끼에도 흔들림 없이 밥보다 문장을 상상력으로 일궈가는 사람들이 시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세상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더 확실한 것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어 무병을 앓고 숙명처럼 무속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알게 모르게 온몸으로 번진 문장 앓이로 긴 세월을 앓아누운 뒤에도 도통 보이지 않은 ‘시’라는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야 하는 고역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의 발에 수없이 사그락 대며 발굽 뒤로 밀리는 황량한 모래알들처럼 일보 전진을 위해 더 많은 모래알을 어루만지며 사막의 끝을 가늠하며 ..

평론 2023.05.06

절실한 자기애에 도달하기 위한 극기

​ 절실한 자기애에 도달하기 위한 극기 박수림 시집 《네 전부가 내 사랑이다》 중심 박철영 ​ 사람이나 사물이나 이력을 알려면 과거로 눈을 돌리게 된다. 더욱이 최근작으로 다가오는 세 번째의 시집을 이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 박수림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꽃잎 하나 터질 모양이다》와 두 번째 시집 《당신을 바라보는 거리》에 눈을 들이대 보았다. 첫 시집 속 의 “아무도 머물러 주지 않는 밤/등대 불빛에 꿈틀대는/불임의 여자 너를 안는 건 비릿한 바다/흔들릴 수 없는 맺음이여.” 에서는 사람에 대한 강한 욕망을 떨칠 수가 없다. 또한, 에서는 “오류가 잦아 금세 잊고 잊혀져가는/뜨거운 가슴을 상실한 메모리의 일부/내 삶은 날마다 수척해져 가고/뿌리 없는 그 자리에 나는/날마다 새로운 음모를 꾸민다.”며..

평론 2023.05.06

김경윤 시집 『신발의 행자』小考

김경윤 시집 『신발의 행자』小考 땅 끝에서 울려 퍼지는 맑고 따뜻한 저음의 메아리 김규성 (시인) 현대를 일컬어 문명의 지각변동이 일고 있는 신 유목시대라고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전환기적 패러다임을 강조해도, 뿌리깊은 산업사회는 오히려 더 악랄하고 교활하게 세상을 고문하며 타락시키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그 이란성 쌍둥이이다. 그런데 두 쌍둥이가 나란히 걸을 때는 건강하고 명랑한 사회를 이루지만, 한낱 수단일 뿐인 자본주의가 오히려 그 목적인 민주주의를 깔아뭉개고 수단화(일방적 독주)할 경우, 세상은 병들고 각박해진다. 현대는 가증스런 탐욕의 걸신으로 타락한 자본주의가 무기력한 들러리이자 노예로 전락한 민주주의를 핍박하며 최후발악이라도 하듯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의 패륜적 약육..

평론 2023.04.29

시적 발화에 관한 담록 속 중심어들/ 조선의/ 반대편으로 창문 열기 시집 해설

시적 발화에 관한 담록 속 중심어들/ 조선의/ 반대편으로 창문 열기 시집 해설 시적 발화에 관한 담론 속 중심어들 조선의 시집 《반대편으로 창문 열기》 중심 박철영(시인,문학평론가) 허공도 공간이다. 시인은 위태위태한 허공에서 줄타기를 하듯 자모의 결합적 텍스트를 통해 인간의 심연을 벼르고 다듬어 문장을 직조하는 사람이다. 이 땅의 모든 광물들이 보석이 될 수 없듯 혼신을 다해 생산한 문장을 버려야하는 아픔도 연연하지 않으며 때로는 독하게, 때로는 처연하게 오로지 한가지 일에 몰두한 장인처럼 문장을 다루며 언어를 도구로 필생을 겸허히 수행하는 이들이 바로 시인이다. 그렇게 초연한 의지를 갖고 시인은 주체적 삶을 향한 욕망 의지를 철저히 타자화 해야 하고 대상이라는 사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나’가 아닌..

평론 2023.04.27

현재화된 시간 속 문장들/박철영

현재화된 시간 속 문장들 _주선미, 김은우, 권선희, 김명리 박철영(시인,문학평론가) 매번 고민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한편으론 떠나보낸 계절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것도 행복한 여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계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살기 위해 오직 한 곳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사람들을 일반인이라고 하자. 그런 부류에 휩쓸리지 않고 갈 길을 가다가도 멈추며 무언가에 골똘한 사람을 시인이라 말해도 억지는 아니다. 똑같은 환경을 살아가며 주어진 삶보다 무한 사유의 늪으로 빠져들어 해찰을 일삼는 사람을 간혹 만나게 된다.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그 간극을 뛰어넘지 않고 허공의 시간 현상을 세계로 치환해 바라보려 한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풍성한 가을을 맞으며 지난 날의 ..

평론 2023.04.27

수묵처럼 번져가는 어스름의 언어들/김경윤의 시세계

수묵처럼 번져가는 어스름의 언어들 김경윤의 시세계 유성호(문학평론가·한국교원대 교수) 1. 김경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신발의 행자󰡕(문학들, 2007)는, 첫 시집 󰡔아름다운 사람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내일을 여는 책, 1996) 이후 10여 년의 시간을 온축하면서, 삶의 다양하고도 심원한 문양(文樣)을 응집력 있게 보여주는 성과이다. 첫 시집에서 “참숯 같은 희망”(「그리움」)을 뒤로 한 채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가없는 그리움을 보여주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는 자신의 삶 속에 오래도록 깃들여 있던 ‘시간’의 다양한 형식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중년에 이른 이의 깊이 있는 사유와 감각의 진경(進境)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서정시는 ‘시간’에 대한 경험과 기억의 재구성이라는 양식적 특..

평론 2023.04.27

수평선 너머 노을에 대한 경배/김경윤 평론

수평선 너머 노을에 대한 경배 -김경윤《바람의 사원》중심 박철영(시인, 문학평론가) 잔잔한 산 등허리를 소리 없이 내려오고 있다. 말소리도 잔잔하고 계곡의 물소리도 잔잔하다. 거칠 만큼 거칠어지다 보면 삶이란 게 잔잔해질 때도 있나 보다. 세상을 바라보라는 시인의 눈은 땅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노을 같기도 하고 어스름처럼 깔리는 해거름 녘 지게 바랑에 무거운 짐을 지고 집으로 들어오는 아버지의 소걸음같이 시인의 모습이 그렇게 모닥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면 오버일까. 나도 언제부턴가 그런 모습의 시인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으로 치면 벌써 세월이 흘러 십 년은 거반 되고도 남았겠다. 지리산 대성동 계곡을 올라 기억나지 않는 능선을 타고 넘어 피아골 어딘가로 내려오지 않았을까 싶은 아득한 ..

평론 2023.04.27

비평의 종류

비평의 종류 1) 전기비평 작가의 삶과 작품이 어떤 관련성을 맺는가, 한 작가의 작품이 다른 작가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작품과 작가의 세계관 인생관 정치관 문학관, 좁게는 그의 교육, 생활수준, 독서, 가족 상황, 교우 애정을 다루되 작품과 직접 관련된 부분에 주의를 기울인다. 문학작품을 지나치게 조사하면 과거성에 치우쳐 문학 가치에 소홀할 수 있다. 2) 윤리ㆍ철학적 비평 윤리적 비평은 과거의 체험을 복구하기보다는 오늘의 독자와 관련하여 현재적 가치와 윤리에 초점을 맞춘다. 문학에 반영된 도덕과 철학 문제를 중시하고 집중적으로 밝힌다. 윤리적 비평을 대표하는 담론은 공자가 『시경』에서 말한 사무사(思無邪), 불교의 탐진치, 기독교의 십계명, 권선징악, 플라톤의 현실 모방론 등이다, 작품이 요..

평론 2023.03.17

그림자 필경사 평론

그림자 필경사 - 김소연의 시 세계 이철주 1. 눈먼 자의 윤리 때론 그림자가 더 많은 말을 건넨다. 긴장 가득 훈련된 표정을 지어도, 무시당하지 않으려 허리를 꼿꼿이 세워도, 불안은 그림자에 투영돼 존재를 누설한다. 가끔 속내를 들켜도, 환멸에 사로잡혀 생이 부대껴도 그림자는 결코 존재를 떠나지 않는다. 뒤틀리면 뒤틀린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닌다. 삶과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그러곤 어디에선가 누군가를 닮은 모습을 하곤 쓸쓸히 흘러다닌다. 생을 반복하고 따라하며 생이 이곳을 떠나도 홀로 남아 존재를 증거한다. 그림자의 이 헌신엔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맹목이 있다. 한편으로 그림자는 왕성한 식욕의 소유자다. 표정도, 색깔도, 음성도, 촉각도, ..

평론 2023.03.05

암막커튼/류휘석

암막커튼 ​ ​ 류휘석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베란다에 모여있다 양파는 억울을 먹고 자란다 나는 저녁용 찌개를 위해 양파를 잡는다 도마 위에서 양파는 잘린다 잘린 단면으로 눈물이 떨어진다 그것이 양파의 최선 억울한 사람들은 문을 두드린다 문의 이름을 당기시오 간혹 과열된 이름이 베란다 밑으로 떨어진다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저녁이 부엌에서 맛있게 끓여지고 있고 냄새가 난다 죽은 양파 냄새가 나는 도무지 화목한 식탁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커튼을 쳤다 베란다에는 여전히 억울한 사람들이 죽어있고 아무도 밥을 먹을 때 어두운 곳을 쳐다보지 않는다​ 식사가 멈추고 나는 밥그릇에 붙은 몇 개의 밥알과 씹히지 않는 양파 꼬다리를 싱크대에 헹궈냈다 배수구로 흘러들어간 사람들이 또 다른 양파를 만나면 우리는 그들을 ..

평론 2023.01.18

상처를 응시하는 몸의 기억들/마경덕

상처를 응시하는 몸의 기억들 마경덕(시인) 무언극에서 관객의 시선은 배우의 손짓, 발짓에 집중된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몸동작은 대사(臺詞)와 같다. 최윤우 연극평론가는 “무대에는 소통을 위한 약속이 있다. 연극이 상황에 대한 약속이라면, 마임은 경험과 느낌에 대한 약속이다. 그 경험이 마임이스트의 몸짓과 만났을 때 무대는 한 몸으로 같은 동선을 그려간다. 마치 같은 붓을 잡고 스케치를 하듯. 마임 공연은 그렇게 관객들과의 소통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고 하였다. 시 창작에서도 ‘경험’은 시의 거름이며 ‘느낌’은 수확물이다. 시는 동작으로 말을 대신하는 팬터마임(pantomime)처럼 부호 하나도 언어로 작용한다. 짧은 문장으로도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시(詩)이기에 압축된 문장은 가..

평론 2022.03.16

고영민 시인의 시작 방법

고영민 시인의 시작 방법 1. 자기의 핵심역량을 찾아라! - 누구나 가장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찾으면 됩니다. 남을 따라하면 절대 최선을 다해도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잘 쓸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찾아야 합니다. 자기와 맞는 글쓰기를 찾으세요!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합니다. 산에서 경주를 하면 백이면 백, 토끼가 이깁니다. 거북이가 이기는 방법은 바다에서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토끼인지, 거북이인지 먼저 판단을 해야 합니다. 바다로 갈지 산으로 갈지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세요! 그걸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앵두 /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

평론 2022.02.26

신춘문예평론

1. 몸의 기억에 부여되는 리얼리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쩌면 예술이 끝자락에 도달해 있고 이제 “규정 불가능성”(하이데거)에 빠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현대는 예술 과잉의 시대이자 ‘무(無)예술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헤겔이 비유한 것처럼, 이제는 예술이 인간의 비대해진 욕망을 더는 채워 줄 수 없다는 “예술의 종언”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고 읽는 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현대성과 서정성이 미학적으로 반목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은 이분법적 폐쇄성이 낳은 관념적 산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의 속성을 탈(脫)서정성에 두려는 해체적 사유는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현대성과 서정성은 대척적 개념이 아니라..

평론 2022.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