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 고경서
허공 / 고경서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탁 트인 수평선에 침침한 눈을 씻고 뒤돌아본다. 거대한 빌딩 숲 사이로 타워크레인 몇 대가 허공을 마구 찌르는 현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땅거죽을 쿵쿵, 쾅쾅 내리치는 굴착기의 굉음에 귓바퀴가 얼얼해도, 땅속 깊이 철골을 박는 통증에서 눈썹 하나 끄떡하지 않는다. 새로 짓는 건물로 체적이 줄어들어도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허공이다.허공은 광대무변하다. 어떤 이는 텅텅 비어 막막하다 이르고, 공空이나 무無를 들먹이며 허무의 공간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럴 때마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제 품안에서 천지만물이 생을 일궈 나가기 때문이다 새들이 날아다니고, 배배 꼬인 넝쿨을 지지대 삼아 뻗는 나팔꽃들, 도둑고양이 울음이 자라는 으슥한 골목도 허공의 영역이다. 왕거미 한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