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落傷
보기 좋게 벌러덩 나자빠지지도 못한 채
비탈길을 헛딛는 순간, 아이쿠 소리를
들었는데, 누구의 음성인지
나도 몰랐다
여태껏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 몸에 깃든 사람 하나
벼랑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외마디소리
부지불식간의 아이쿠
까마득히 잊고 지낸 아이쿠
감감무소식의 아이쿠가
생면부지의 사람 하나를 들춰냈던 것이니
비로소 내 면상이 화끈거리고
그토록 그에게 빚진 일이 많았던가
이토록 기막힌 아이쿠
무시무시한 아이쿠
순식간의 아이쿠
분명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잡목림 덩굴이거나
허공의 어디선가 울려온 것 같았는데
# “아이쿠”. 잠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소리였다. 발 한쪽을 깁스했을 뿐인데, 누웠다 일어나려는 데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살아오면서 누웠다 일어나는 것이 그리 쉬웠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려니 깁스한 발이 부딪쳐 “부지불식간의 아이쿠/까마득히 잊고 지낸 아이쿠” 소리가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다시 왼쪽으로 몸을 돌려 팔꿈치로 베개를 고이고 간신히 반쯤 기대어 앉는데도 식은땀이 흘렀다. 혼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자전거에서 내렸어야 했다. 그리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야자매트 덮개가 덮인 도로 위를 살피며 천천히 걸어서 지나갔어야 했다. 나는 자만했다. 오 년 넘게 탄 자전거 실력이면 넘어가리라 생각했다. 우기의 폭우가 걷힌 천변 옆 자전거 길은 냇물이 넘쳐 휘도는 곳에 도로가 파이고 무너져 보수 공사 중이었다. 길 한쪽으로 물에 젖은 흙이 쌓여있었고 금가고 파인 도로 위로는 야자매트 덮개가 길게 덮여 있었다. 앞서가는 젊은 바이커들이 젖은 야자매트 덮개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젊은이들이 무난히 지나가는 것을 보고, 젖은 야자매트 위로 페달을 밟는 순간, “아이쿠 소리를/들었는데, 누구의 음성인지/나도 몰랐다”. “여태껏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내 몸에 깃든 사람 하나/벼랑으로 떨어지기 직전의/외마디소리”. “아이쿠”.
“낙상”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의사가 가리키는 엑스레이 사진 속에는 오른쪽 발가락 2번과 3번이 갈라지기 전 부위의 부러진 뼈가 선연했다. 그뿐 아니라 검은 뼈 속에 하얀 점들이 점점이 떠 있었다. 골다공이 진행된 뼈가 발 뼈 속에서 별들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오른쪽 발을 깁스했다. 휠체어에 의지하면서 석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정상적인 사람이면 수행해야 할 8가지의 일상 활동인 밥 먹기, 옷 입기, 목욕하기, 화장실 가기, 머리 손질하기, 몸 단장하기, 침대에서 일어나기, 의자에서 일어나기, 걷기 중에서 반 정도의 행동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며 요리하기, 가사일, 쇼핑, 외출 등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걷지 못하게 되니까, 소화 불량과 역류성 식도염도 찾아왔다. “그토록 그에게 빚진 일이 많았던가/이토록 기막힌 아이쿠/무시무시한 아이쿠/순식간의 아이쿠”.
일반적으로 “낙상”의 원인은 신체적인 요인과 환경 요인과 행동요인과 그 외의 원인이 있다. 신체적인 원인은 운동장애나 심장질환, 빈혈, 시력 저하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고, 환경 요인은 바닥이 미끄럽거나 지면이 고르지 못한 곳에서 발생 되기도 한다. 행동요인은 하체의 근력이나 평형 유지기능이 약해져서 조정 능력이 줄어들며 발생한다. 특히 다리의 힘이 약해져 걸음걸이가 불안정하고 다리를 끌고 걷는 경우, 운동신경 감각이 저하 되어 있는 경우, 반응 반사 속도가 느린 경우, 근육과 뼈의 약화로 균형 유지기능이 약화 되어 있는 경우 낙상의 위험성은 높아진다. 그 외 낙상의 원인은 파킨슨병이나 시각장애, 류머티스나 퇴행성관절염 등에 의하기도 한다. 낙상은 야외 뿐 아니라 욕실, 침실, 계단 등 가정에서도 잘 발생한다. 날씨가 따스해지고 꽃들이 피고, 나들이가 늘어나는 계절이다. 자신의 신체적상태를 잘 파악하여야 낙상 사고를 줄일 수 있고, 주변 환경 변화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뿐이랴, 나처럼 자전거나 다른 탈것을 이용하는 경우, 자만심이 “부지불식간의 아이쿠”를 불러올 수도 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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