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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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슬픔의 바깥/신철규

에세이향기 2023. 2. 4. 06:05

슬픔의 바깥
- 낮달

신철규




   보라색 보자기를 든 여인이 사거리에 서 있다 꼼꼼히 싸맨 보자기 안에는 쟁반에 담긴 커피포트와 찻잔 두 개가

있을 것이다 보자기 매듭이 토끼 귀처럼 쫑긋 솟아 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다 정면을 바라보는 것도
바닥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생각하는 것인지 자신을 힐끔거리며 지나치는 행인들을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흘러내리는 귀밑머리를 가만히 쓸어 올려 귀 뒤로 넘긴다 오래전 소중한 사람을 배웅하고 난
뒤 한참을 돌아서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쪽 뺨이 파인 낮달이 허공에 떠 있다 그녀 앞 횡단
보도가 한없이 펼쳐진 계단처럼 누워 있다 멀리서 불법 유턴을 하고 쏜살같이 달려온 파란색 소형 승합차가 멈춘다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차에 올라탄다 그녀가 떠나고 다방 안 낡은 어항속의 금붕어는 숨이 가쁜지 수면 밖으
로 입을 내밀고 있다 흐린 유리창에 붙은, 다방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셀로판지의 좌우가 뒤집져 있다 반쯤 남은
커피는 식었고 가라앉아 있던 프림이 떠올라 달무리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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