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전파사
정영효
노인은 형광등의 멍처럼 쓸쓸한 눈으로 안경을 벗는다
음각이 색겨진 얼굴과 뒤틀린 다리
중심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듯
몸은 앞으로 껴안으며 휘어졌다
불룩한 천장아래 놓인 라디오들에서
금성과 삼성이 이따금 반짝거리고
블랙홀에 빠져들 듯 화면이 멈춘 텔레비전은
희미하게 교차하는 신호를 잡지 못한 채
시간과 공간을 잃어버렸다 세월도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빨려가고 있다
멀리 타전된 암호처럼
한 시절이 지나면 노인도 아득한 곳으로 전송될 것인데
잡히지 않는 채널이 켜진 듯 부스스한 유리문 밖
불빛에 갈라진 거리를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의 눈은 월식처럼 어둡다
수리를 끝낸 텔레비전을 맨손으로 닦자
허공의 무늬를 따라 유영하는 먼지들
밤사이 어둠이 이 모두를 정리할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수신하기 위해 안테나를 세우고
노인은 접속을 기다리듯 코드를 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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