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일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덕규
모내기 끝내고 제초제 살포한 논과
식물 전멸제를 뿌린 논두렁에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풀을 집 삼아 살던 온갖 벌레와 곤충들의 밤낮으로 울려 퍼지던 합창이
한순간 뚝, 그쳤습니다
풀잎 끝에 맺혀 기생하던 수많은
어린 이슬도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눈도 못 뜬 채 죽었습니다
이제 곧 여름인데
개구리와 뱀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쟁터로 나가기 위해 도열한 병정들처럼
위풍당당 벼들만이 오와 열을 맞추고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사람을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훈육되고 양육되었습니다
용수로와 배수로 고인 물속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따가운 햇살만이 오색 빛 기름띠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살충제와 살균제를 뿌린 논밭은
그 무엇도 얼씬거리지 못하는 지뢰밭이 되었습니다
장마 끝에 다시 항공방제가 있었습니다
맹독성 농약 유제가 들판 허공에 날리며 찬란한 무지개를 띄웠습니다
(그 무지개다리 건너간 사람 몇몇 영영 돌아오지 않고)
덕분에 사람 손이 가지 않아도 들판이 깔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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