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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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넵티누스*의 바다/구애영

에세이향기 2023. 2. 4. 14:39

 넵티누스*의 바다


  구애영




  바다를 신이 만들었다는 말은 정말일까요


  먹갈치의 표피에서 발견된 언어는 뜻밖에 은빛이었어요
  항구의 어스름 속에서
  위판장 사람들의 장화는 늘 활기찼고


  지상의 바다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다에서 제 몸의 무늬를 체득했나요 되돌아갈 수 없는 것 스스로
감지했나요 붉은 아가미만으로 뻐끔거려요 의연한 포즈를 취해야 해요
  바다로 가게 해주세요
  그런데 나의 뒤엔 도마만 있어요 아이스박스에 담기는 순간 어느 기억이 먼저 지워졌을까요


  입을 쭉 내밀고 앞만 보고 달렸던 황홀한 직진
  그 너머에 집착하여 꼬리를 내내 흔들었기에
  해찰과 관찰 사이에 미끼의 밀어가 있었어요
  어떤 선택은 당혹스러운 치명을 불러오죠
  치명 뒤엔 해무처럼 짙게 낀 후회와 그리움만 남아있는데


  누군가의 비극은 왜 누군가에겐 희극일까요 팔딱거림을 놓친 몸들이 겹이 될 때 적나라하게 드러
난 알몸의 사연들, 옆구리로 서로를 읽었어요 창자까지 빠져나간 서늘한 토막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의 발자국과 끓고 있는 냄비와 프라이팬 이런 사물 앞에서
  눈을 감고 싶은데 감기지 않아요 이곳에서 죽음은 아주 흔한 소품이겠지요


  내 몸속엔 아직 수심 120미터에서 만들어진 생생한 수초의 노래가 있어요 그러니 은빛 문양 위에 소
금을 뿌려주세요 뼛속까지 사무친 먹먹함이 지느러미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그대로 멈춘 채
  넵티누스, 당신의 마르지 않는 그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 바다의 신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