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이 아버지
조수일
갯가의 지친 오후가 바람에 쓰러진 후 아버지는 이름 있는 모든 지느러미를 소금에 절여 냈다
아가미는 아가미대로
창란은 창란대로
부위별로 도려낸 자리
왕소금을 한 움큼씩 되박아
고통스러움을 향기로 추출하고 있다
상처 자리에 환한 영혼을 켜는 염장이
오늘은 풀치 떼가 가득하다
은빛 꼬리지느러미의 소란스런 비린내를
건넌방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날개를 읽어 캄캄하던 내 안이 분주하다
푸른 곰피자락이 너울거리는 홑이불을 배에 감고 문가로 기어간다
빳빳한 비닐 앞치마를 두른 채
작업을 서두르는 아버지 어깨에 잔잔한 파동이 인다
지느러미의 촉수 하나 다치지 않으려는
손놀림에 안도한 풀치 떼가
나 몰래 지난 세월을 뱉어낸다
아버지의 지문 안으로 녹아든 소금물
삶의 경계를 허물며 스러지고
풀,풀,풀잎처럼 말라 가벼워진 육신으로
하늘을 날게 될 풀치 떼
어둠만 드나들던 내 겨드랑이에
어느새 푸른 지느러미가 돋는다
기장항 입구,
한 많은 목숨처럼 바람에게 세월을 주고
소금으로 웃음을 절여내는 아버지
그물망처럼 촘촘히 시간을 엮고 있다
조수일
갯가의 지친 오후가 바람에 쓰러진 후 아버지는 이름 있는 모든 지느러미를 소금에 절여 냈다
아가미는 아가미대로
창란은 창란대로
부위별로 도려낸 자리
왕소금을 한 움큼씩 되박아
고통스러움을 향기로 추출하고 있다
상처 자리에 환한 영혼을 켜는 염장이
오늘은 풀치 떼가 가득하다
은빛 꼬리지느러미의 소란스런 비린내를
건넌방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날개를 읽어 캄캄하던 내 안이 분주하다
푸른 곰피자락이 너울거리는 홑이불을 배에 감고 문가로 기어간다
빳빳한 비닐 앞치마를 두른 채
작업을 서두르는 아버지 어깨에 잔잔한 파동이 인다
지느러미의 촉수 하나 다치지 않으려는
손놀림에 안도한 풀치 떼가
나 몰래 지난 세월을 뱉어낸다
아버지의 지문 안으로 녹아든 소금물
삶의 경계를 허물며 스러지고
풀,풀,풀잎처럼 말라 가벼워진 육신으로
하늘을 날게 될 풀치 떼
어둠만 드나들던 내 겨드랑이에
어느새 푸른 지느러미가 돋는다
기장항 입구,
한 많은 목숨처럼 바람에게 세월을 주고
소금으로 웃음을 절여내는 아버지
그물망처럼 촘촘히 시간을 엮고 있다
<본상>
홍어 삼합 이용호 맨 처음부터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지요 오랜 시간 속에 울창한 미래가 숨어 있을 것이라곤, 썩어 빠진 육체에서 아름다운 겸손이 피어나요 깊은 바다 속에서 원시의 생명력을 갖고 태어날 때도 몰랐던 사실, 찬란한 것은 결국 내 안에 있음을, 육지와의 궁합이 이렇게 잘 맞을 줄 알기나 했을까요 사랑도 오래 가면 새롭게 발효될 것인데 톡톡 튀는 숨결의 울림이 온화하게 해져가는 흑산도 벼랑 그 파도에 부서져 가요. 백정의 칼을 온몸으로 받을 때였어요 아득하게 삶겨지고 토막 났을 때 이 상처는 누가 감싸줄 수 있을까 고민했지요 순간순간 패전을 향해 나아가는 장수의 칼끝은 어떤 모습일까 헤아리기도 전에 제 꿈은 솥단지에 걸렸어요 활 모양 휘어드는 시간의 결들이 서둘러 꿈을 꿀 때 절망은 그 어느 곳에서도 산화되지 않았어요 뜨거운 불길이 올라오는 그때마다 열기는 매번 사랑으로 변해가고, 혼자서는 꿈을 잉태할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비릿한 미각도 어울릴 때 서로를 감싸 줄 수 있음을, 세상은 감싸야 살 수 있음을. 시장의 모퉁이에서 속절없이 시간이 둥글어질 때. 아직 실현되지 못한 꿈들이 항아리에 담겨 울고 있어요 공존할 수 없었던 바다와 땅의 장엄함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려면, 입 안에 꿈이 들어오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있었을지 생각해 봐요 하루하루 익숙함의 기운이 새벽마다 은빛 테를 두른 채 빛나고 있어요, 그런 계절이었어요. 우리는 깊은 사원처럼 익어가요. 북극칠성이 깜박이는 곳에 집어등으로 수놓은 아슬한 공존, 사람들은 그 경계에 와서야 옷깃을 여밉니다 바다와 땅과 짐승들을 순하게 만들어 한층 아름답게 배열한 접시 위. 그 위에서 누군가 우리들을 모을 때였어요 바다의 꿈이, 땅에서의 소망이 이곳에 와서 비로소 힘차게 용틀임하고 있었어요. <남도작가상> 징하네 김율관 살구나무 물오른 가지에 설렁 올 풀린 따사로움이 걸렸네 설중에도 매화라 입춘이 언제드라 노루귀 쫑긋한 청명에 춘풍화기 남실대는 남녘, 미황사쯤 달마산 자락이 꿈틀댄다 산집 홑집에사 돌담에 얹힌 볕이 병아리 발등 어르고 아장걸음 어리광이 흙마당 우물가에 자꾸 발자국 꾹꾹 심는다 애기 산버들 눈을 뜰 듯 말 듯 속눈 꿈틀꿈틀 설레보고 얇은 분홍이사 번져서 슬몃슬몃 산밑을 번져서 개울물 흐르며 민들레 들꽃과 질갱이 풀, 새와 구름 개구리 눈과 바람, 돌과 뱀과 산제비와 산 너머 바람 어디쯤을 댕기 댕기댕기 숨소리 뛰며 누이가 오것다 누이야, 누이야 봐 봐 두견새 목쉬도록 산이 산이 온 산이 봄흥으로 진달래 분홍으로 징하게 번진다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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