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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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이주송

에세이향기 2023. 2. 5. 08:05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


이주송

 

 

 

바위 속에서
나뭇잎의 잎맥인 듯 빗살무늬인 듯
오래된 뼈가 걷고 있었다
참빗을 닮은 한 벌의 뼈
초식이었던 뿔공룡은 일억 일천만 년 동안
바윗속으로 스며든 빗물이나
몇 번의 지각이 이동하는 소리로 연명했다
살점과 내장과 표피를 버리고 온전한 바위가 되어
마지막을 증언하고 싶었을 거다
천적이 없는 단 하나의 계절 속에서 그 오랜 진화의 시간
단단한 근육과 푸른 이끼의 털을 갖고 싶었을 거다
그러다 광물의 구태속에서도 부화의 시간은 다가와
화석에게도 통점이 도졌을 거다


갯벌의 어패류들이 조금씩 달을 뜯어먹는 동안
공룡은 부리주둥이가 뭉툭해지도록
태초의 서식지를 감각했을 것이다
한 겹 두 겹 더위와 추위를 껴입고
돌가루를 되새김질 하며 온 몸에 밴 울음을
초원의 저물녘에 방류할 때를 기다리며
바위 속까지 헤엄치고 있는 신경배돌기를 방치했을 것이다
부러진 골반 뼈로 백악기의 유전자를 복원하고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의 낯선 이름을
뒤집어썼을 것이다


아직도 공룡은 진화중이다
크고 넓은 바위 속에는
부화를 꿈꾸는 공룡들이 은밀하게 살고 있다

 

*2008년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에서 발견된 뿔공룡화석\

 

 

순장殉葬의 얼굴

 

남시우

 

 

 


  이 숲은 오래 전 깊은 바다 속에서 인양되었다
날것들의 비릿함이 녹슬어가는 어물전좌판 바닥을 기거나 심해를 헤엄치다 순장되어있던 갑각류 혹은, 지
느러미들


  마지막 파닥거림이 굳어 있는 진열된 어종들을 들여다보면 같은 이름으로 모여 있다 같은 종끼리 잡혀 온
순장이다


  원산지 적힌 바다의 푯말이 짭짤한 식욕을 불러오고 살아서 누비던 바다가 또렷이 기록되어 있는 눈, 마지
막으로 삼킨 파도가 목에 걸린 입은 다물지 못하고 열려있다


  생의 어느 쪽이든 살아있는 값과 죽은 값은 있기 마련이고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순례처럼 냄새나는 일별로
눈을 뜨고 있는 얼굴


  내장을 버리고 서로 밀착한 몸이 다른 한 몸을 감싸고
  살아서 닿지 못한 간격을 좌판에서 좁히는 쌀쌀한 날씨에 절여진 한 쌍이다


  비린 눈물 흘린 것들의 형태를 보고 싶다면 이 골목을 보라


  시간을 벗고 일어서는 동안 의식의 마침표는 흐려진다


  물고기 한 마리 헤엄치지 못하는 골목에 수 백 마리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다


  지금껏 나는 순장된 것들이 제 살점에 절여둔 깊은 물살을 먹고 살았다

 

 

고래의 혈통/태동철



  고래좌에서 족보로 대물림 된 혈통이다 가훈을 거역하며 먼 거리를

맹목으로 연 항해, 성년이 된 지문으로 지느러미를 펼치고 윤슬 이는
부럭을 타넘으며 청색시대의 비린내를 파도에 풀어나간다 바다에선
용골을 엮은 등뼈를 낮춰 겸손한 가슴으로 물살을 품고 심장의 마력
에서 혈기로 피를 달궈 생을 탕진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망각한다 방
탕한 방황으로 점점 거칠어지는 파랑에 좌표를 잃는다 난바다에서
표류하는 세월이다 해류가 소용돌이치는 암초에 부딪쳐 이물이 파손
되고 고물로 유서를 쓰듯 물이랑을 뻗친다 심연 아래로 침몰하는 순
간 고래가 예인선으로 떠오른다 태풍에도 끊어지지 않는 수평선으로
힘줄을 풀어 구명줄을 단단히 묶는다 고래 힘줄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파도 끝에서 아득히 추락하는 아뜩한 공포에 속죄하는 마음을 감싸듯
품는다 사랑의 징표로 등에서 분수공을 활짝 열어 비산하는 물보라로
오색무지개를 띄워 올린다 온몸에 벅찬 용서의 울림을 퍼뜨린다 생명
선을 끌어당기는 거룩한 핏줄에 이끌려 닻별이 뜬 항구에 닿는다 아버
지가 심해 속 무덤으로 돌아간 자리에 오동도가 언약의 등대불빛을 밝

혀 심장 동맥에서 동백을 피운다

 

[금상]


호미곶은 저물지 않는다


 김성배






방파제에서 잘 벼려진 손돌바람으로 깊어진
호미곶이 푸른 맨발로 나를 찾아든다
민장대에 입질한 괭이갈매기 울음이 비려질 때
곰삭은 어미의 손은
구멍 난 노을을 깁고 있다
귓불 시린 포구는
파도가 경매하는 꽁치떼 소리로 왁자하고
귀신고래가 물고 온 오호츠크 해는
저문 동백 속에서 밝아왔다
햇귀를 이고 떨어진 애기동백은
제 빛깔 속에서 밀려오는 주름진 뱃길을
마른 젖가슴에 묻는다
녹슨 해도도 없이
출렁이는 뒷산 밀고 앞산 당겨 노 저어가는
굿거리장단 시김새에 수평선을 풀어놓는다
서둘러 떠나야 어서 돌아온다던
물거품 속에 누워있는 아비를
아직도 아랫목 고봉밥으로 뎁히고 있는 어미는
선착장에 나가 불 꺼진 등대의 내장을 손질한다
입술 마른 숲길의 동박새 울음소리가
가파른 어미 등을 넘나들고
뭍으로 내달은 갯바람은
신발 끈을 조이는데
갈라 터진 한 줄기 그물 자국 손등을 벗어나지 못한다
돌아올 줄 아는 습성의
고래의 노래는 끊어지고
늘 내 뒤안에서 익어가는 장은
혼자 숨을 쉰다
어미는 억센 갯바위를 매러 나가 없는데
된장국 끓는 소리만 깊어간다
달빛에 뒤꿈치가 젖은 호미곶은
미세기로 드나드는 파도에게 가야 할 길을 묻는다








[은상] 


흘수선 


이은정




눈 내리는 포구
자박자박 졸고 있던 목선들이
말뚝에 매어 놓은 소처럼
찰박찰박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흘수선은 악기다
물의 악보를 가장 잘 이해하는 너울성 타악기다
소 울음 가득 품은 장구의 북편
소금기에 절은 궁채가 수면의 음표들을 칠 때마다
북과 워낭은 각 색의 화음을 이루며
넘실넘실 소리되새김질하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짐승의 목에
악기를 달아 놓는 것을 즐겼다
딸랑딸랑 소의 목에서 울리던 방울과
긴 밧줄에 묶인 배들의 목전에서 들리는
저 한가한 박자엔 눈발 성근 포구의 오후가 있고
파도를 삭히는
뱃사람들의 따뜻한 잠이 들어 있다


풍랑에 겨워 출항을 머뭇거리는 흘수
비스듬히 누운 돌꼇잠을 푸른 물이 뒤척거리면
출렁이는 꿈은 얽어맨 축승縮繩처럼
가닥이 여럿이다
몇 해가 지나도록
소리의 가닥을 잡지 못한 장구재비도 있다
조롱목을 조였다 풀며 해안을 거닐다가
불현듯 모래톱에 걸린 병목의 시간은
정 동쪽 끝으로 침몰해간다


포구에 눈 내리고
물은 무료한 건드림을 쉬지 않지만
밧줄은 현악기의 줄처럼 팽팽해진다
물 밖과 물 안쪽이 만나는 곳
저렇게 폭신한 자리도 없을 것이다


밧줄과 포슬포슬 내리는 눈
먼 바다 조업에서 돌아온
뱃사람들의 나른한 아랫목과
포구로 돌아가는 물살의 문우지정


고요한 듯하지만
목선엔 쉬지 않는 박자가 생물처럼 들어있다
악사의 채 끝을 타는 음표들이 팔딱거린다
삐걱거리는 물 위에서
울렁울렁 떠 있는 수평선이 보인다
 
 


[동상] 


구부러진 곡선들 


김우진






농협 앞 좌판에서 멸치 한 됫박을 샀다 비릿한 냄새가 옮겨 붙어 구불구
불한 골목을 따라온다 할머니의 등처럼 구부러진 곡선들,


저들에겐 새들의 유전자가 있어 허공이 그들의 놀이터였다 석양을 물고
물 위를 풀쩍 뛰어오르는
직선의 날렵한 몸짓이었다 은비늘 번쩍이며 파도를 물고 흐르던 빠른 속
도였다
포식자보다 더 빨라야 했으므로 속도가 목숨이었다


입속으로 거대한 바다가 드나들고 거센 파도가 스칠 때, 그들은 함께 물결

이 되어 흘렀다
떼를 이루어 거대한 몸짓으로 적과 맞선 그때, 그물은 멸치 떼가 온다고
외쳤다


너른 바다에 지느러미로 쓰고 다닌 흘림체, 생의 푸른 문장을 뱃속에 품고
멸막에서 그들은 모두 휘어졌다


곡선으로 휘어진 지느러미가 바다의 끝을 물고와 도심지에 풀어 놓았다
부력을 잃은 생명들이 좌판대 위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종로3가에 가면 구부러진 곡선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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