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김혜영 산천댁이 사라졌다 사흘 전까지도 웃으며 고기도 드시고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고 하지만 십수 년 전 영감이 사라지고 나서 아니 그 이전 고물고물한 아이들의 젊은 엄마일 때 설거지 물을 텃밭에 뿌리러 나올 떄면 가끔씩 검은 머리와 눈썹이 흐릿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과 그 친구들이 대청마루에 북적일 때면 담박에 선명한 색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간격이 너무 멀어 처음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새 날을 헐어낼수록 새 밤을 흘러보낼수록 온 몸의 빛깔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홀로 빈 집에서 벽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마당 들어서며 부르면 느릿느릿 걸어나오곤 했다 옷감의 물이 빠지듯 짙은 색에서 옅은 색으로 형체가 사라지고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날이 늘어갔다 명절이나 휴가철 자식들이 들르는 날엔 온전한 모습으로 돌어와 지내다가 시간이 흐르면 온몸의 색이 바랬다 벽 속으로 사라지는 날이 잦아지고 옅은 회색빛을 띠다가 허공에서 불쑥 한 필이 솟아나곤 했다 일 년 전 작은 딸이 부산으로 모셔갔을 때 실루엣만 따라갔다가 한참 후 겨우겨우 뒤따라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와 한 달 후 산천댁 벽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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