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의 뒤끝/김정아
목이 지독히도 말랐던 걸까
품었던 허공을 놓고 싶었던 걸까
날벌레 한 마리 발 디딘 곳이
하필이면 책상 위 물컵 속이라니!
거울같이 잔잔하던 물이 덜컥
바동거리는 동심원에 놀라는 거였다
둥글게 둥글게 흔들리다 멈추고
멈추었다 다시 흔들리는 물살
지금 내가 선 이 자리도 어쩌면
젖은 날개 퍼덕이는 자리?
이런 나를 저 높은 곳에서 누군가
가만히 전구처럼 내려다볼 걸 생각하니
이미 첨벙 빠진 발, 빼는 것 또한
아늑한 숨결이어야 하리
새벽 물안개 속에서 슬그머니
첫 어리연꽃 피는 것처럼
◇김정아= 경북 상주 출생, 계간 ‘문장’ 신인상 ,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문장작가회 회원,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시집 ‘채널의 입술’.
<해설> 현재의 행복이나 불행이 늘 그대로 인 채 변하지 않을 같지만, 시인은 안다. 날마다 눈을 뜨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건들이 찾아오고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나와도 상관성을 갖게 된다는 것을, 책상이라는 평평한 상관물 위에 얹힌 컵 그리고 그 속의 물에 날벌레 한 마리 빠져서 허우적대면서 시인의 상상력은 자신의 현재의 자리에서 어떻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 현명한 지를 생각한다. 올라갈 때의 모습보다는 내려올 때, 즉 물러날 때의 아름다웠던 여러 모습들을 통해 시인은 새벽 물안개를 헤치고 피는 어리연꽃을 닮아야겠다고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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