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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등을 켜며 / 박금아

에세이향기 2023. 7. 15. 07:32

호야등을 켜며 / 박금아

 

지금 막 새벽 어장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심지를 내리고 걸어둔 듯, 손을 대면 온기가 전해질 것 같았다. 유년의 고향 집 마루 기둥에 걸려 있던 호야등이 생각났다. 희부연 등피 속으로 남해의 푸른 바다가 출렁이고, 가물가물해진 시간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사흘이 멀다고 호야등을 손질했다. 등피를 닦고 석유를 채우고 심지를 갈아 끼우는 일 모두, 당신이 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겼다.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심스레 떼어낸 등피가 멍석에 놓이면 우리 어린것들은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다.

등피를 닦을 때의 아버지는 제사장 같았다. 문지르고 씻고 닦기를 여러 번, 맑은 물로 헹군 등피를 바람이 잘 통하는 안방 마루 위 나무 시렁에 올려두고 말릴 때면 삽시정저(揷匙正箸)* 후의 고요가 느껴졌다. 간간이 들리던 증조할아버지의 담뱃대 두드리는 소리와 집 앞 바다를 건너온 바람에 대숲이 수런거리던 소리도 적요를 더했다. 그조차 등피를 닦는 몸짓으로 들렸다. 등피가 다 마르면 아버지는 준비해 둔 마른걸레로 바람이 지우지 못한 얼룩까지 말끔히 닦아냈다.

기름통에 석유를 채우고 심지를 새것으로 간 뒤 정성스레 닦은 등피를 끼우면 호야등은 새 옷을 입었다. 말개진 등피 유리를 들어 성냥을 당기면 “확!” 하고 불꽃이 일었다. 등피에 포개진 아버지의 얼굴은 먼 데서도 환했다. 그제야 아버지는 입을 열어 우리를 불렀다. “아나, 갖다 걸어라.” 쪼르르 달려가 호야등을 하나씩 받아 들면 아래쪽 석유를 담는 통에 굵은 고딕체로 된 “희망등”이라는 글씨가 한층 더 크게 보였다.

방방의 기둥에 호야등이 내걸리면, 집 안은 연 홍시 빛이 되면서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어둠이 줄행랑쳤다. 우리는 다시 마당에서 뛰놀았고, 조금 후면 행주치마를 입은 어머니가 정지문 앞에서 큰 손짓으로 이름을 불러댔다. “금선아 금희야 명선아, 미선아, 밥 묵자아.” 정지껄을 맴돌던 그 소리에 등불은 더 밝아졌다. 그러나 그 빛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을음이 앉았다. 가장인 아버지가 모태로부터 받은 어두움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세상에 등불 하나 없이 오셨다. 태어나자마자 생모를 떠나보내야 했으니. 아버지가 첫울음을 울던 그 방은 얼마나 깜깜했을까. 태생의 어둠은 아버지의 생애 내내 이어졌던 것 같다. 아버지는 늘 외톨이였다. 열다섯 나이에 형제들과 떨어져 혼자 섬에 들어가 뱃일을 배워야 했고, 밤낮으로 어장을 돌봤다. 모두가 잠든 밤, 아직 소년이었던 아버지가 눈꺼풀에 조롱조롱 달린 잠을 떨어내며 깜깜한 바다로 나갈 때마다 의지했던 거라곤 마루 기둥에 걸려 바람에 흔들리던 호야등뿐이었다.

낮에도 아버지의 길은 자주 컴컴했다. 사업을 하자면 할아버지로부터 날벼락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어장이 안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잘될 때도 마음자리에 자주 그을음이 내려앉았다. 한 척 두 척 배가 늘수록 몸은 고되었고, 마음은 더 무거웠다. 다섯 형제를 두었어도 혼자 서자였던 탓이었을 거다.

손아래 누이와 두 남동생은 어장을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서울에서 대학엘 다녔다. 여름 방학을 맞아 동생들이 고향 집을 찾아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객지에서 돌아오는 삼촌들에게 먹일 양으로 시장을 돌며 귀한 음식을 장만했다. 중학교 공부도 마치지 못하고 어장을 돌봐야 했던 아버지는 대학생이 된 이복동생들에게 먹일 반찬감을 마련하느라 새벽 죽방을 열었다.

아버지는 등피를 닦으며 마음속 검댕을 털어냈을 거다. 닦고 나면 금세 또 생기고 마는 그을음을 지우려 닦고 또 닦기를 반복했을 테다. 등피를 닦는 일은 마음의 호야등에 석유를 채우는 일이기도 했을 터. 그 겨를에, 아무리 채워도 금세 헛헛해져 꺼져버리고 마는 마음속 심지(心志)를 당겨 스스로를 밝힐 수 있었을 테니.

어느덧 아버지가 살다 간 나이를 넘어 살고 있다. 손에 늘 불빛을 쥐고 있고,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어둠쯤이야 언제든 몰아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대명천지를 살면서도 컴컴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언젠가부터 길을 걸었다. 무릎이 뻐근해지도록 걷다 보면 새까맣게 그을린 마음에 조금씩 빛이 들어와 앉았다.

올 초부터는 남파랑길을 걷기 시작했다. 열흘째 되던 날, 완도 바닷길을 지날 때였다. 우연히 들어간 어촌민속전시관 구석진 자리에서 젊은 날의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바다가 입혀준 소금기가 가득 밴 등피 옷을 입고서 녹슨 호야등으로 나무 기둥에 걸려 있었다.

생전에 한 점 깜부기불조차 되어드리지 못했건만 아버지는 내 손에 평생을 밝힐 등불 하나 들려주셨다.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깜깜한 내 속에 호야등 하나 켜는 일임을 알겠다.

*제사를 지낼 때,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의 술을 따른 후에 메에 숟가락을 꽂고 방문을 닫고 나와 조상들이 음식을 드시도록 기다리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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