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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마스카라/김희자

에세이향기 2023. 7. 15. 07:21

마스카라/김희자
 
 
여자의 하루는 마스카라가 연다. 둥근 우주 속의 저나 나나 자존심은 매한가지건만 K는 오늘도 속눈썹을 바짝 치켜세운다. 처진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칠하여 쓱쓱 말아 올린다. 검은색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밋밋한 속눈썹과 마주 닿자 빳빳하게 굳어진다. 두세 번의 덧칠이 이어지니 마법을 부리듯 눈맵시가 풍성하게 살아난다. 그마저 성에 차지 않는지 그녀는 라이터로 성냥개비를 벌겋게 달군다. 달구어진 성냥개비로 속눈썹을 아찔하게 세울 때 여자는 가장 도도하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는 눈이 지배한다. 눈 화장을 어찌하느냐에 따라 면면이 달라진다. 눈 화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단연 마스카라가 아닐까. 마스카라를 바를 때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를 내리깐다. 다리를 꼬고 앉아 거울을 응시하는 포즈 또한 관능적이다. 날카롭게 세운 속눈썹은 여자의 자존이며 세상과 맞서는 병기다. 하여 여자들은 옷에 어울리는 마스카라 색을 바르고 분주한 시간을 쪼갠다. 몇 번이나 덧칠하고 수정을 하면서도 번거롭다 여기지 않는다.
얼렁뚱땅 화장을 하고 출근하는 나와 달리 k는 출근 후에 화장을 한다. 미美에 호기심이 남다른 그녀는 나보다 일곱 살 아래다. 외롭고 가난한 삶을 헤쳐오던 내 안에 시답잖은 열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눈치 챘던 시절, 목젖까지 차오르는 서러움을 꾸역꾸역 삼켜야 했던 그때의 나이다. 그녀의 미모는 연예인처럼 꽃답거나 동안童顔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 아니라 말 할 수도 없다. “입만 돌출되지 않았으면 자신 있다.”는 말을 그녀는 입술에 달고 산다. 쭉쭉 빠진 긴 다리와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도드라져 옷태가 난다. 치장이 요란스럽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는 까닭은 자신을 위해 깨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때문이다.
목숨 가진 것들 중에 곡절 없는 생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가슴 밑바닥에 타다가 남은 숯 동강 같은 슬픈 사연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녀 또한 별반 다를 바 없어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아들과 둘이서 기거한다. 일개미처럼 쉴 틈 없이 몸을 굴러 비어 있는 가장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비상구나 즐거움은 자신을 가꾸는 일이다. 허한 구석을 자기 모양내는 것으로 채우고 또 채운다. 안개비 내리듯 울적하거나 심사가 뒤틀린 날이면 마스카라를 바르는 횟수가 유난히 잦다.
그녀의 화장은 단장이 아니라 변장이다. 틈만 주어지면 마스카라를 덧칠 한다. 그녀의 변장은 오전 내내 이어진다. 달인처럼 속눈썹을 꼿꼿하게 세워 쓰러진 자신을 우뚝 세운다. 어떤 날은 너무 세워서 거부감이 생기기도 하고 어느 날은 화장발이 돋보여 내 눈이 황소 만해진다. 본디의 모습이 사라진 그녀를 보고 있자면 마스카라는 역시 마술사나 진배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십 고개를 바라보는 나 또한 그녀처럼 꿈을 꾼다. 무언가 특별해지고 싶은 날이거나 삶에 허기가 느껴질 때는 은근히 마스카라의 힘에 나를 맡긴다.
마스카라에 내 자존심을 걸기 시작한 건 꽃 몸살을 앓던 지난 봄부터였다. 평상시 관심을 보이던 환자가 출근하는 나에게 뜬금없이 울었느냐고 물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눈시울도 젖지 않았는데 어찌 울었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예부터 사람의 마음까지 담는 것이 눈이라고 하였건만 시력이 나빠지면서 초롱초롱하던 눈이 흐려져 매사에 자신을 잃은 탓이다. 마스카라에 의지한다고 소심해진 내다 당당하게 설 리 만무하겠지만 지명知命을 코앞에 두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고개 숙인 나를 구원하는 일이기도 하여 근사한 것으로 장만해 속눈썹을 세우고 있다.
속눈썹을 돋보이게 하는 마스카라의 어원은 스페인어로 변장을 뜻한다. 칼날 같은 눈빛, 오싹한 눈빛이라는 표현들은 흉안兇眼과 관련된다. 흉안이란 사악한 시선이나 저주스런 시선을 말하며 여러 문화에서도 드러났다. 고대 로마에서는 적에게 마술을 걸기 위해 융안을 가진 직업적 마술사를 고용했다. 이는 인도 전역과 어아시아에 널리 퍼지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이 마술에 걸릴까 두려워 눈이 유난히 빛나는 사람들을 화형 시킨 적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흉안에 대비할 수 있는 방어수단으로 눈 둘레에 둥글게 또는 타원으로 검은 색을 칠했다. 그것이 바오 콜koal이라고 불리는 최초의 마스카라였다. 사막의 강렬한 햇빛에 노출되었던 그들은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고 눈 가장자리에 검게 동그라미를 칠하는 마스카라를 탄생시켰다. 눈 주위에 검게 원을 그리면 햇빛을 흡수하게 되고 눈에 비치는 반사광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야구 선수들이 눈 밑에 검은 그리스를 칠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가 아니던가. 눈빛을 죽이기 위해 사용되었던 마스카라가 지금은 눈을 돋보이게 하여 자존심을 살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스카라만 칠하면 잃어가는 자존심을 지킬 것 같았지만 나의 변장술은 여전히 어설프다. 속눈썹을 맘껏 세우지도 못하고 세웠다 해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제는 자존심을 바짝 세우지도 모두 내려놓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나이, 자존마저 시드는 나이가 된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조금 손해 보는 듯 살고 지는 것이 승자라는 생각이 똬리를 틀었다. 서 푼 어치도 한 되는 미천한 자존심으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세웠던 꼬리마저 내리는 판국이다.
한두 살씩 나이를 먹으면서 눈에 머물던 긴장감도 풀어지고 잔주름까지 잡혀 생기를 잃었다. 탄력 있던 눈두덩마저 말라 저녁때만 되면 눈이 쑥 기어들어간다. 꾸미지 않아도 눈이 살아있다는 말을 들어왔건만 이제는 돋보기에 의존해야 하는 서글픈 나이다. 이 모든 변화는 자신감마저 무너뜨려 굳을 대로 굳은 몸과 나사 풀린 마음이 따로따로 논다. 사그라지는 나를 위해 외모에도 신경 쓰고 속을 태우지만 헛수고다. 유유히 흐르는 세월 앞에서 묵묵부답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점점 몰락하는 나 자신을 곧추세우기엔 나태하지 않으리라.
누구 할 것 없이 자존심은 매양 한가지다. 꽃잎은 꽃잎의 무게로 밤송이는 밤송이의 무게로 세상에 존재한다. 존재는 다 제각각의 무게처럼 자존심도 매일반이다. 여자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길고 꼿꼿한 속눈썹의 연출은 마스카라가 도맡아서 한다. 마스카라로 인해 높아진 속눈썹은 눈매를 매력적이고 강렬하게 꾸밀 뿐 아니라 위풍당당하다. K는 마지막 마스카라를 덧칠하며 입술을 터트린다. “여자의 자존심은 마스카라!” 라며 나를 보고 씩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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