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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꼭두/서소희

에세이향기 2023. 7. 14. 13:33

꼭두

 

서소희

 

 

 

나무 인형들이 웃고 있다. 한복 차림으로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어떤 이는 말을 타고 무기를 들고 있기도 하다. 재주 부리는 자, 시녀, 소고치는 자, 모두들 자신의 역할을 자랑하고 있다. 대부분 밝은 표정이지만 그 인상이 왠지 섬뜩하다. 어찌 보면 웃고 있는 얼굴이고 또 어찌 보면 저승사자 같다. 제각각의 형상으로 있지만 ‘사람’이라는 단어처럼 ‘꼭두’로 불린다.

꼭두는 어둠속에서 빛으로 안내하는 일을 한다. 육신을 떠난 혼백이 걸어가야 할 두려움의 길을 함께하는 동반자다. 그래서 상여의 꼭대기에 자리하여 이승을 떠나는 자의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준다. 슬픔을 위로하며 허드렛일을 해준다고 구전되어진다. 그들은 거추장스런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들의 우주적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해맑은 얼굴상을 하고 있다.

그들이 집안 모임이라도 하듯이 한자리에 모였다. 저마다의 빛을 튕겨내며, 앞에 서있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마치 움직이며 손을 내밀 것 같다. 컴컴한 저세상으로 나를 잡아당길 것 같다. 온 몸이 소슬해진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남편의 손을 잡는다.

빛과 어둠은 항상 함께한다. 어둠이 있기에 빛을 알아볼 수 있고, 빛이 있기에 어둠을 견딜 수 있을 터이다. 사람이 보금자리로 여기는 이세상은 태양이 내리쬐는 한가운데이면서 밤의 정령이 가득히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검은색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광채를 바라보는 것은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살아가는 일도 이와 매 한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삶은 또 다른 고해의 저승길이다. 그럼 꼭두도 어딘가에 있을 듯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들을 만났다. 다만 그때는 꼭두인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시립도서관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한 남학생이 청소 하는 아주머니 곁으로 가서 정중하니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이거 드시고 하세요.”

학생은 자판기에서 갓 뽑은 시원한 캔 커피를 내밀었다. 아주머니는 낮선 친절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이구”라는 말을 하며 고마움의 몸짓을 했다. 학생의 얼굴이 주위의 누구보다 더 빛나고 잘생겨 보였다.

청소를 업으로 하는 일은 많은 힘이 든다. 고난은 어둠이다. 하지만 학생이 캔 커피를 내밀었을 때 그 아주머니는 잠깐이지만 행복이라는 빛 속으로 들어갔던 모양이다. 한쪽 구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아렸다. 왜 아름다운 장면은 심장을 울컥거리게 만드는지. 그는 분명 꼭두였을 것이다.

어느 원로문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다. 육이오 동란 후 대구 향촌동 주막에 마음이 넉넉한 주모가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그곳에 모여 돈도 없이 술을 마셨다.

“다음에 꼭 갖다 주이소.”

“그러마(그러면), 갖다 주지 안 갖다 줄까 봐요.”

오히려 퉁명스레 목소리를 높이는 손님에게 주모는 아무런 증표도 없이 외상술을 내놓았다고 전해진다. 아마 자그마한 술집의 주인도 꼭두였으리라. 그녀의 이야기는 암흑 속을 걸어가는 가난한 시인과 소설가에게 술을 팔며, 빛으로 가는 길을 동행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지금 나의 손을 잡아주는 남편도 꼭두라는 느낌이 온다. 나는 세 번씩이나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세 번째의 투병생활을 하는 시간과 공간에 늘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대책 없는 고통으로 허덕이는 나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 하루 종일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하였다. 옆에서 이야기도 해주고 때로는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나를 잠시나마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아픔이라는 철창에 갇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통, 그것은 무서운 암흑이었다. 뭐든지 먹으면 구토를 일으켰다. 진통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였다. 누워있기도 힘이 들었고, 앉아있기도 힘이 들었다. 창밖에는 봄을 축복하는 새들의 지저귐이 하늘을 덮고 있었지만 나의 집에는 쉽사리 햇살이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식사 때 마다 한약과 양약을 번갈아 먹으며 나날을 견디었다.

“이 순간들을 웃으며 이야기할 때가 있을 기다. 결혼식이 있던 날처럼.”

남편은 그때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가 혼례를 올리던 날, 아침은 참으로 화창했다. 그런데 예식 시간이 다 되어 해가 행방불명되었다. 갑자기 하늘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리고 소나기가 퍼부었다. 여기저기 번개가 날아다니며 어떤 곳에는 우박도 떨어졌었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시끄럽던 하늘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다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었다. 그리고 늦은 밤 높은 산에는 첫눈이 내렸다. 짧은 시간 속에 많은 날씨가 방문한 정말 거짓말 같은 하루였었다.

이런저런 이바구 속에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순간 짧고 강열한 섬광이 눈을 찔렀다. 광휘였다. 그것은 남편의 눈동자에서 새어나왔다. 짙은 먹장의 구름 속에서 바라보는 반짝임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이 아름다웠다. 갑자기 모든 통증이 사라지는 듯했다.

사랑이 있어야만 가시밭길도 함께할 수 있다. 무조건적이며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은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빛이 존재한다는 분명한 믿음만 있으면 빛을 찾아갈 수 있듯이, 사랑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어떠한 상황도 공포스럽지 않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는 길, 그 두려움의 어둠속을 동행하는 꼭두는 사랑의 결정체이리라.

깃털 하나에도 힘이 부치는 것이 마음이고, 우주를 짊어져도 힘이 넘쳐나는 것이 또한 마음이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만족스러운가 하면 부족하고, 즐거운가 하면 불안하다. 삶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약하고 불안하며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기에 사람 사는 세상을 미망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미혹의 일상 속에서도 두렵지 않는 방법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또한 마음속에서 무서움을 만나면 도움을 청하면 된다. 그리하면 꼭두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와 더불어 환희라는 행복 속으로 이끌어 줄 사랑의 존재로 말이다.

더 이상 목우들의 눈길이 두렵지 않다. 잡고 있는 남편의 손이 따뜻하다. 천천히 자리를 옮긴다. 발길을 따라 보이지 않는 따뜻한 시선이 우리를 배웅한다. 꼭두 박물관을 나오기 위해 문을 밀어 젖힌다. 빛들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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