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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속의 빈집/ 김신용

에세이향기 2023. 9. 18. 03:28

 

빈집 속의 빈집/ 김신용

 
땅끝을 지나, 빈집에 들어서야
내가 빈집 속의 빈집이었음을
알겠네. 땅끝에 매달려
저기, 수척한 바다처럼 누워있는
사람, 그 바다에
나는 얼마나 많은 섬들을 띄워놓았던가
말의 섬들,
햇살 속에 온갖 어족의 비늘로도 반짝이던
그 다도해, 그러나 그 섬들은
이제 마당가에 뒹구는 빈 장독들처럼
불룩해진 배로
상상임신의 헛구역질만 하고 있음을 보네,
말의 뼈를 뽑아
삭아버린 서까래 하나 얹지 못한
덜컹이는 바람벽의 못 하나 되지 못한
빗방울 스미는
저 녹슨 함석지붕 하나 떠받치지 못한
말의 무수한 발자국만 남긴
몸, 이제 이 땅의 끝까지 지나왔지만
저기, 赤湖에 잠겨
잡풀 우거진 빈집으로 누워있는 사람,
그 빈집에 들어서야
내가 빈집 속의 빈집이었음을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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