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魴魚)
사윤수
머리에 뼈만 달린 주검이다
피 한 방울 흘린 자국 없이 살점은
이미 한 점 한 점 잘 도려내졌으니
자신의 죽음을 방어하지 못한 방어,
형식은 죽었으나 내용은 죽지 않았다는 듯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가끔 입을 뻐끔거린다
밀물로 밀려왔다가 썰물로 쓸려가는 쇠잔한 숨
입 속의 어둠이 열렸다 닫혔다 한다
기억은 주검 안에 아직 살아서
모슬포 푸른 바다를 건너는가
저 살점들을 다시 뼈에 봉합하면
방어는 살아서 수평선 끝까지 헤엄쳐 갈 수 있을까
무슨 생각이 났는지
죽은 줄도 모르고 너는 또
파르르르 지느러미를 떤다
물고기 한 마리만 떠나도 바다는 허전한 법,
파도치는 무채와 오색 데커레이션 위에
가지런히 누운 방어회
한 틀 꽃상여 같다
곡두는 없으나 먹기조차 아까운 순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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